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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소반이 끌려 나가는 것을 차마 내 눈으로…”

청풍헌 2016. 6. 4. 09:41
"아버지 소반이 끌려 나가는 것을 차마 내 눈으로…”소반장 추용호 장인의 집, 강제수용 집 철거 절차 착수
지난달 30일, 법원과 통영시 강제수용 강행
집 못 떠나는 장인 이불도 없이 집 앞 강제 노숙
법원 집행관과 증인으로 참석한 통영시청 공무원들.

국가 지정의 인간문화재 추용호 소반장 장인의 소반과 연장 등 모든 것이 지난달 30일 오전 결국 끌려나오고야 말았다.

'집행'이라는 빨간 조끼를 입은 이사 용역업체 사람들은 "물건이 많기도 많다. 특히 목재는 어디다 쓰길래 이리도 많노"하면서 물건을 트럭으로 날랐다.

짐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물건 개수를 헤아리는 번호는 늘어갔고, 법원에서 온 집행관은 증인으로 통영시청 공무원을 찾아 서명하게 했다.

아버지 추웅동 장인의 대를 이어 120년 째 이 집을 지켜온 집 주인 추용호 소반장은 눈을 씻고 봐도 안보였다.

집 주인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 추용호 선생은 어디로 갔을까?

"제가 차마 제 집에서 아버지 손때 묻은 소반과 연장, 그리고 저의 모든 것이 끌려 나오는 것을 어찌 제 눈으로 보겠습니까. 피가 거꾸로 솟고 아버지께 죄송합니다. 너무 합니다. 너무해∼ 제 인생은 이제 끝났습니다. 문화1번지라는 통영이 저에게 이렇게 가혹할 수가…."
장인은 수화기 너머로 울고 있었다.

유네스코 음악 창의도시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꿈꾸는 도시 통영. 하지만 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 추용호 장인의 집은 철거되고,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1917-1995) 생가 터는 이제 도로에 묻히게 됐다.

장인의 집은 추웅동 통영소반장과 추용호 인간문화재를 배출한 산실이자 옛 통영12공방 터에 자리를 잡고 있어 근대문화재적 가치도 아주 높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과 통영시는 30일 통영시 도천동 소재 추용호 장인의 집에 대한 강제 수용 절차에 들어갔다.


집행관들은 이날 집 안에 있는 물품을 모조리 밖으로 끄집어냈다. 이어서 통영시는 용남면 이삿짐 보관 센터에 짐을 보관하고, 조만간 집 철거를 위한 절차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왜 시는 굳이 인간문화재 집을 뜯어야만 할까.

통영시는 현재 '도천테마공원 뒤편 도시계획도로'개설 공사를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도로 도로공사 예정부지 안에 추용호 장인의 집과 윤이상 선생의 생가터가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추용호 장인이 집 철거를 받아들이지 않자, 시는 지난 2014년부터 법적 절차를 밟았다.

시가 추 장인을 상대로 법원에 명도소송을 냈고,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통영시가 승소했다.
시 관계자는 "적법한 법적 소송 절차를 거쳤고, 계속해서 방문해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했지만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며, "하는 수 없이 집행관이 집을 찾아가 물품을 일단 밖으로 들어낸다"고 말했다.

그는 "물품을 밖으로 들어냈지만 곧바로 집 철거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절차를 밟는데 한 90일 정도 소요될 예정이다. 집 조사 과정과 지금 진행 중인 소송이 전부 마무리 되면 집은 철거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 윤이상 선생의 생가터 관련해서도 시 관계자는 "생가터 표식을 어떻게든 할 계획이고, 가까운 주변에 표지석을 세울지 아니면 바닥에 표시할지 등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 유족들과 협의를 해서 진행할 것"이라 설명했다.


문화 전문가들과 지역 주민들은 "국가의 전통을 잇기 위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분의 집이 강제 철거되면 통영 소반의 맥이 끊길 수 있는 상황이다. 몹시 안타깝다. 우리도 마음이 이리 아픈데 장인이 이 꼴을 차마 보겠노. 우리도 눈뜨고 못 보것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추용호 장인은 물건 한 점 없는 '출입금지'가 붙은 그 집을 차마 떠나지 못해 이불도 없이 차디찬 밤이슬을 그대로 맞으며 노숙의 첫 밤을 보냈다.

"전 이 집을 못 떠납니다. 갈 데도 없고, 여기가 내 집인데 어디를 갑니까. 저에게 통영시가 대체 왜 이런 짓을 합니까. 제가 한 일이라곤 국가가 전통을 지키라고 해서 지키는 것 뿐인데…." 장인의 충혈된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김영화 기자  hannews@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