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수군재건로9(낙안읍성-조양창터) 이 모두가 이배사라는 끈끈한 동지애가 아닌가

청풍헌 2016. 11. 25. 23:06

봄에 시작된 수군재건로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육로 마지막이 군영구미인지 회령포인지 의문이 들지만 일단 

전남도에서 고증한 군영구미까지 가기로 마음먹고 동선을 확인했다


군영구미까지 세 번 남았다

올해에는 개인적으로 월 네 번의 장거리 도보를 한다는 것이 부담도 되고 힘도 들었다

내년 계획에 참조할 것이다


지난 8차 답사 때 무척 고생 했었다

저물녘에 낙안읍성에 도착하여 귀가하기에 바빠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

항상 아쉬움이 남는 마지막이다


시간을 조절하여 낙안읍성을 둘러보고 10시경 출발계획을 세웠다

총 11명이 참여 한다고 연락왔다.

전날 밤 비가 왔다. 가을비다. 예보에는 아침에 갠다고 했는데 계속 내린다

우의와 우산을 준비했다


낙안읍성에 도착하여 입장권을 사서 들어갔다

이곳에서 봐야할 곳은 두 군데다. 이순신 나무라는 푸조나무와 은행나무다

푸조나무는 1598년 왜교성 전투를 앞두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 나무라고 하며

은행나무는 장군이 의병과 군량미를 모아서 좌수영으로 가려고 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마차 바퀴가 고장 나 수리를 하고 길을 떠났는데 순천으로 가는 길목의 다리가 굉음을 내며 무너져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뻔 했다 한다

낙안의 은행나무신이 장군을 돌봤다고 전해지는 나무다


마치 오늘이 낙안 읍민의 날이라 전통혼례와 각종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쉽지만 함께하지 못했다

동네 주민들이 함께 축제를 준비하고 즐기는 것 같아 차후 한산대첩 축제에도 참고할 만 하였다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가 되어야할 것이다


서문으로 가서 성벽을 따라 동문으로 나왔다

가을비에 젖은 낙엽이 운치 있었다

촉촉한 땅위로 뒹구는 낙엽을 보는 마음이 센치해지는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어쩌랴? 플래카드를 펼치고 힘차게 출발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가을비에 젖은 추수가 끝난 논에는 보리 이삭이 파릇이 돋아나고 감나무의 까치밥은 온몸을 내어주고 있었다

마을안길로 돌아갔다

들 가운데는 가을꽃이 마지막 향기를 내뿜고 유혹을 한다


목이 마르고 갈증이 났다

담뱃가게로 무작정 들어갔다

장군님도 이쯤에서 목이 말랐으리라

한적한 시골 주막에 열한명이 들어서니 비좁았다

노부부가 계셔 막걸리를 시켜 먹었다

상추와 쑥갓을 젓갈에 찍어 먹으니 꿀맛이다

이구동성으로 맛있다고 했다

기억 속에 상추와 쑥갓 막걸리가 입력되었다


그러나 24km는 예사 먼 거리가 아니다

점심은 벌교에서 먹기로 했다

제법 큰 고개를 넘어 벌교읍으로 진입했다

벌교에 가면 홍교를 꼭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쪽으로 코스를 잡았다

벌교천은 벌물이었다

물이 혼탁했다


드디어 홍교에 왔다

정교하게 돌로 쌓아 수백 년 세월에도 끄떡없이 의연하게 서 있다

입구에는 중수비가 여럿 있다

아래로 내려갔다

홍교 중앙에는 용을 세긴 가운데 돌이 내려와 있었다

웅장하고 경이로웠다

이 다리가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각종 공덕비와 중수비가 즐비하게 서 있는 듯 했다


벌교에 왔으니 꼬막을 먹어봐야 한다

꼬막 정식을 먹고 다시 출발했다

태백산맥을 쓴 조정래 문학관이 있으며 주제거리를 만들어 놓았다

수탈의 현장인 은행금고와 오래된 일제 강점기 건물을 재현해 놓았다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식당에서 조성면 고내마을에 간다 하니 금곡마을에 독립운동가 나철 기념관을 보고 가라 하시며 추천했다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근사하게 지어놓았다

지치고 힘들고 시간이 부족하여 입구에서 인증 샷만 찍고 이동했다


열가재를 넘으니 조성면이 나왔다

면사무소에 주차를 했기 때문에 고내마을 까지는 얼마 아닌 줄 알았다

"500여 미터만 가면 고내마을 입니다." 하고 독려했다(실제 거리는 1.6km임)

모두 지쳤다. 24km 이상 걸어왔으니 지칠 만하다

대열이 길어지고 절뚝이는 사람이 많다



드디어 횡단보도를 건너 다섯 시가 넘어 고내(庫內)마을로 진입했다

열선루님이 버선발로 마중 나왔다

드디어 조양창터에 도착했다

고내정 아래에서 자료집과 함께 고내현, 조양창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열선루님이 세 시간이나 기다려주시고 자료집까지 인쇄하여 정성을 다해 주셨다

고양현은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초기까지 있었던 곳으로 동국여지승람에 두 우물과 창고가 있었다.

이 창고가 조양창고이며 수군의 전략적인 창고로 사용했다

이후 성돌은 부셔서 담장으로, 간척사업으로, 제방으로 회철 되었다


우물 두 곳은 지금도 맑은 물이 나오며 한곳에는 을축년 이라는 명문이 있

이곳에서 장군은 조양창고를 확인하니 봉인된 식량이 가득한 것을 확인하고 

군관 4명을 시켜 지키게 하고 김안도의 집에 유숙했다

몹시 피곤하여 이틀 밤을 보냈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이배사의 전국 네트워크에서 응원을 받았다

오늘도 멀리 경기도에서 새벽같이 달려 왔으며 

무려 세 시간이나 긴 시간을 기다려 우리를 반겨주신 열선루님도 계신다

경상우수사님은 스카프를 제작하여 기증하여 힘을 보탰다

이 모두가 이배사라는 끈끈한 동지애가 아닌가

서로 배려하고 공유하고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아름다운 것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능력껏 장군을 느끼고 숭모하고 공부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내일이 또 기대된다





2016.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