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난중일기 필사

난중일기 필사 31~35차

청풍헌 2017. 3. 12. 21:52

31일차(3/5)

12일 임신, 식후 배 위에 나가서 강경선을 점검했다. 배를 타고 소포로 나가는데 때마침 돌풍이 세게불고 격군도 없어 다시 돌아왔다. 곧바로 동헌에 앉아 공무를 보았다. 활 10순을 쏘았다. 

13일 계유, 아침에 흐림. 순찰사에게 편지가 왔다. 

14일 갑술, 종일 큰 비기 내렸다. 이른 아침에 순찰사를 만날 일로 순천으로 가는데 비가 크게와서 갈 길을 분간할 수 없었다. 간신히 선생원에 가서 말을 먹이고 해평농창에 이르니 길가에 물 깊이가 거의 석자나 괴어 갖은 고생을 겪으며 순천부에 다다랐다. 저녁에 순찰사와 그간 쌓였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32일차(3/6)

15일 을해. 흐리다가 가랑비가 왔다가 저녁에 갰다. 다락위에 앉아서 활을 쏘았다. 군관들과 편을 갈라서 활을 쏘았다. 

16일 병자, 맑음. 순천부사가 환선정에서 술자리를 베풀어 겸하여 화살도 쏘았다.


33일차(3/7)

17일 정축, 맑음. 새벽에 순찰사에게 돌아갈 것을 고하고 선생원에 이르러 말의 꼴을 먹이고 본영으로 돌아왔다. 

18일 무신, 맑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19일 기묘, 맑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20일 경진, 비가 크게 내렸다. 늦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각 방의 회계를 살폈다. 순천부사가 탐색할 일을 기한내 하지 못했기에 대장, 색리, 도훈도 등을 추궁해 따졌다. 사도첨사에게도 만남을 약속할 일로 공문을 보냈는데 혼자서 탐색 했다고 하며 또 반나절 만에 내나로도, 외나로도, 대평도, 소평도를 모두 탐색 하여 돌아왔다고 하니 이 일은 너무도 거짓된 것이다. 이를 조사할 일로 흥양현감과 사도첨사에게 공문을 보냈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일찍 들어왔다.


34일차(3/8)

21일 신사, 맑음. 몸이 불편하여 아침 내내 누워 앓다가 늦게야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22일 임오, 맑음. 성 북쪽 봉우리 아래 도랑을 파내는 일로 우후및 군관 10명을 보냈다. 식후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23일 계미, 아침에 흐리다가 저녁에 맑았다. 식후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보성에서 보내올 널판지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기에 색리에게 다시 공문을 보내 담당자를 수색하여 잡아들이게 했다. 순천에서 사환으로 온 소국진에게 곤장 80대를 쳤다. "발포권관은 군사를 거느릴만한 재목이 못되므로 조치하겠다."고 하므로 아직 갈지말고 그대로 유임하여 방비하도록 하라고 답장을 보냈다.


35일차(3/9)

24일 갑신, 나라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전라우후가 무사히 탐색하고 돌아왔다. 송희립이 순찰사와 도사의 답장을 함께 가져왔다. 순찰사의 편지 가운데 "영남 관찰사의 편지는 쓰시마 도주의 문서에<일찍 배 한 척을 내보냈는데 만약 귀국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바랍에 부서진 것이다.> 라고 했다." 는 것이다. 그 말이 매우 거짓되고 음흉하고도 거짓된다. 동래에서 빤히 바라보이는 바다인데 그럴리가 만무하다. 말을 그와같이 꾸며대니 그 간사함을 헤아리기 여렵다." 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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