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세계 속의 이순신(A global perception on Admiral Yi Sun-Sin)

청풍헌 2017. 4. 26. 10:24


충무공 이순신 탄신 제472주년 기념

제19회 이순신국제학술세미나

세계 속의 이순신(A global perception on Admiral Yi Sun-Sin)


순천향 대학교에 있는 이순신 연구소의 소장 임원빈 교수는 이배사의 주축 멤버다. 매년 진행되는 이순신 세미나에 수차례 참석을 했다. 특별히 올해에는 세계 속의 이순신이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 알아보는 기회가 된 세미나에 참석했다. 서울 시청에서 열리는 세미나는 사천, 창원, 부산지부의 인원과 합류하여 버스로 이동했다. 서울 시청에 들어선 소감은 지하철 개찰구처럼 출입증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다양한 민원이 있어 그런다지만 처음 대하는 광경이라 생소했다. 서울시 행정을 담당하는 시청의 출입이 이렇게 까다로운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양한 주장도 좋지만 책임 있는 주장도 필요할 것이다. 서울시청 대 회의실에 우여곡절 끝에 입장했다. 이배사 식구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일인 시위용 피켓을 들고 약포정탁이 나타났다. 뭐지? 이곳에서 일인 시위를? 나중에 알고 보니 이순신 장군 동상 친수식 때 일인시위를 했다고 한다. 회의실 한쪽 벽면에 수조도가 걸려 있었다. 자세히 살피니 영인본이 아니라 직접 그린 것이었다. 황치석 교수가 여러 수조도를 보고 2년 반 걸려서 직접 그린 재현품 이었다. 옻칠 한지에 석채로 정교하게 그려진 작품이다. 또 한쪽에는 수원화성 야조도를 재현했다. 서울시장은 다른 행사 때문에 잠깐 인사만 하고 갔으며 여수시장 아산 시장의 축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세미나에 들어갔다. 


제1주제 영국인과 유럽인들이 알고 있는 이순신 제독 

                                        이안 바우어스(노르웨이 국방대학교 교수)

벽안의 이방인이 어떻게 이순신을 알게 되었는지 토론시간에 질문이 있었다. 2001년 석사과정을 공부하면서 한국 전쟁을 알게 되었고 영국과 호주에 파견 근무 시 그곳 박물관에서 거북선을 접하고 이순신을 연구하게 되었다.  

영국의 유명한 장군인 몽고메리가 쓴 명저 ‘전쟁의 역사“에 ”한국인들에게는 전략. 전술이 뛰어난 능력 뿐 아니라 기술 혁신에 대해 탁월한 재능을 가진 훌륭한 이순신 제독이 있었다... 이순신 제독은 어떠한 공격에도 대항할 수 있는 공세적인 능력을 가진 전선을 발명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영국은 해양국가로서 여러 유럽의 국가로부터 위협을 받아 왔으므로 절대 열세인 수군으로 연전연승을 한 이순신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다. 첫째 영국과 유럽의 역사가와 해군사 전문가들은 이순신 제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둘째, 이순신 제독의 공학적 혁신 기술이 어떻게 전술적으로 사용 되었는지? 셋째, 영국과 유럽의 학자들은 유럽의 유명한 제독들과 어떻게 비교 평가하고 있는지? 마지막 결론은 영국과 유럽인들의 이순신 제독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지 요약하고자 한다. 첫째 영국 해군 발라드 제독, 군인이며 성직자이고 역사가인 테넌트, 그란트, 영국의 과학자 역사학자 사학자인 니트함, 턴불, 바이워터, 글리테, 브린클리, 아스톤, 머르도취, 롱포드, 등의 말을 인용했다. 유성룡의 천거에서부터 거북선 건조, 옥포해전, 한산해전, 백의종군, 명량해전, 마지막 노량해전까지 언급 되었으며 발라드 제독은 노량해전을 영국의 트라팔가 해전으로 묘사했다. 둘째 이순신 제독의 공학적인 마인드와 혁신기술에 대한 언급이다. 여러 문헌에서 거북선 발명이 해전승리의 원동력으로 보았다. 또한 거함거포의 혁신은 무기체계의 혁신을 가져왔다. 턴불은 그의 저서에서 ”거북선은 어떤 날씨에도 빠르게 수 백 척의 적 함대 중간으로 들어가 적 함정을 포와 화염방사기로 공격했다. “ 라고 기술했다. 셋째 영국과 유럽의 학자들은 유럽의 유명한 제독들과 어떻게 비교 평가하고 있는지 이다. 발라드 제독은 ”영국인들은 항상 넬슨의 업적을 다른 인물과 비교하는 것을 꺼려했지만 해전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고 적의 흉탄에 맞아 전사한 아시아의 위대한 영웅인 이순신은 넬슨과 비교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고 강조했다. 마지막 결론은 이순신은 뛰어난 제독이다. 전략가이며 전술가이고 걸출한 능력을 가진 리더였다. 몽고메리 장군은 ”그는 전술적인 천재이며 지리와 조류를 활용한 혁신가이며 해양의 전략적 중요성은 알고 방어체계, 무기체계를 개발하여 보급로를 차단하는 효율적인 전술로 대단한 결과를 얻었다. “ 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아시아는 해양력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해군력이 떨어졌다. 이순신 제독과 해전을 살펴보면 연전연승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으며 해양력이 육상의 보급로로서 중요함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미국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이순신 제독

조덕현 충남대 군사학부 교수  

미국인들이 집필한 이순신에 대한 저서와 자료는 조선 말기에는 선교사가, 일제 강점기에는 군사 학자와 군인이, 광복 후는 학자들이 집필했다. 그 대표적인 내용은 언더우드 선교사의 1933년 기록이다. 평가내용을 요약하면 ‘해전의 승리는 거북선 덕분이며 살라미스, 레판토, 유틀란트 해전과 비교되며 천재성과 앞선 전술, 자력으로 행동한 세계적인 위인 중 한명이며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인물이다. 히데요시의 중국 정복의 야욕과 꿈을 좌절시켰으며 오늘날의 잠수함과 같은 해군 전투함을 건조한 신기원을 이루었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수년전 통영에 온 온리콤판도 언급되었다. 거북선에 대한 평가가 크게 작용 했으며 넬슨 장군과도 비교 되었다. 이순신의 세계화에 대한 몇 가지 제안을 했다. 이순신 영문 이름의 통일이다. Yi Sun Sin으로 통일해야 한다. 이순신의 호칭에 대하여 언급 했다. 이순신 장군인지 제독인지에 대하여 장군은 General이지만 제독은 Admiral이다. 국제화를 위하여 Admiral로 통일해야한다. 또한 이순신을 알리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주 이순신 교육 운동의 기조와 지향목표

미주 이순신 교육본부 이사장 이내원

미국에서 이순신 교육에 열성이신 이내원 이사장의 이야기는 임원빈 교수님에게 언질을 받았다. 미국의 한인 학생들에게 이순신을 효율적으로 교육하기 위하여 이순신 글쓰기를 하고 있다. 재미 한국 학교 전미 조직인 NAKS와 LA 포함 48개주 약 1,000여개의 주말 한국학교에 약 6,000명의 자원봉사자와 교사가 7만여 명을 가르치고 있다. 이번에는 통영한산대첩제전위원회에서 5,000불을 기부하여 미국 공립학교에까지 글쓰기를 확대하여 이순신 전파에 나섰다. 본국에서도 각 지방정부마다 축제가 있으나 통합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역설 했다. 인성적 소양을 갖추기 위하여 난중일기나 이순신에 대한 글쓰기가 필요한 이유다. 


일본에서 이순신이 주목받는 때

이노우에 야스시 (일본 방위대 교수) 

이순신이 일본에 일려진 결정적인 계기는 징비록의 유입 이었다.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 라는 징비록은 이후 일본인들이 알기 쉽도록 일본판으로 제작되어 읽혀진 것이 1695년의 일이다. 이후 조선 태평기, 조선군기대전, 회본조선군기, 회본 태합기 등이 집필 되었다. 이후 1890년대에는 육군보병대위인 시바야마 나오노리의 “문록정한수원사시말“ 이라는 제목 앞에 기재된 ‘조선 이순신전’ 에는 청일전쟁 개전 2년 전의 지도를 작성 하면서 이순신을 집종 조명 했다. 그는 이순신을 일본이 실패한 전쟁이라 규정 짖고 임진왜란 전체를 전략적인 면에서 규명 하였다. 한산도 해전과 보급로 관계 및 명량해전 등 조선을 구한 그의 전략적 위치를 강조 했으며 최후의 모습을 조선의 넬슨이라고까지 평가했다. 이순신 상에 대한 새로운 초점에는 일본의 지정학적인 아시아적 인식이 명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임진왜란은 불행한 전쟁이지만 동아시아 세력관계와 그에 대응하여 초점화한 지역과 해역 문제를 드러나게 했다. 


중국에서의 이순신 접촉과 전파

마오징(중국 강서성 강서 인민 출판부 편집장). 박현규(순천향대 중문과 교수)

중국학자는 사드 관련하여 불참 했으며 박현규 교수가 발표했다. 충무공 이순신을 최초로 중국에 알린 인물은 송응창이다. <경략복국요편>에 전쟁 상황을 기록해 놓았다. 이후 명 실록에는 명나라 군사들을 포상하는 내용과 함께 “조선 신하 이순신은 그 나라에서 표창하고 무휼하도록 병부가 복의하라.” 라고 기록 했으며 서류상 건의하는데 그치지 않고 군사 지위를 상징하는 의장을 보내주어 이번 전쟁의 걸출한 공헌을 알렸다. 그것이 통영충렬사에 있는 명조 팔사품이다. 근대에는 학자 왕선겸이 1902년 <일본원류고>를 저술하여 임진란 전체를 조명했다. 현대에는 공교롭게도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중공이 참전하면서 ‘원조항홰전쟁’과 연계하여 지지를 얻었다. 임진위국전쟁 및 조선임진위국전쟁, 조선민족영웅이순신등이 출판되고 1978년 중국역사의 명대 부분에 임진 전쟁 중 등자룡과 함께 이순신도 작전했다는 사실을 기술했다. 수교 후 더욱 활발하여 각종 이순신 관련 서적이 출판 되었고 칼의 노래, 영화 명량 등이 상영 되었다. 공동으로 왜적을 무찌른 찬란한 전적은 양국 국민들에게 정신적 재산이 될 것이다. 한중 양국은 수 천 년 우호 교류사에서 양국 국민이 교류하는 교량과 연계체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발제자는 “지금은 사드로 인한 일시적인 교류의 중단이 있지만 한중 우호는 영원 할 것이다. 라고 전망하면서 발제를 마쳤다. 


토론시간에 앞서 황치석 교수의 수조도와 수원화성 야조도에 관한 설명이 있었다.


토론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본다. 

김덕기(충남대 군사학부)교수는 이안 바우어스 박사의 발제내용 중 1). 어떻게 한국 이순신을 접하고 연구하게 되었는지 와 2). 한산도 해전이 세계 4대 해전에 들어가는지에 대하여 질문 하였다. 1번의 답변은 2001년 석사과정을 공부하면서 한국 전쟁을 알게 되었고 영국과 호주에 파견 근무 시 그곳 박물관에서 거북선을 접하고 이순신을 연구하게 되었다.  2)번의 답변은 학자마다 정의하는 것이 다르다. 이것이 세계4대 해전이다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지만 해상교통로 차단이나 일본 명나라에 미친 영향이나 세계사에 미친 영향을 고려해볼 때 가치는 있다. 


정진술 교수는 두 번째 발제자 조덕현과 이내원에게 각각 질문을 던졌다. 조덕현 교수에게는 이순신과 넬슨을 비교 하면서 주력선이 거북선이라는 오류가 있다. 또한 연구 방향에서 제독이라는 호칭문제에 대하여 충무공이나 이충무공이라는 공식 호칭이 있는데 제독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외국인들은 거북선만 안다. 판옥선은 잘 모른다. 그러므로 체계적인 전파가 필요하다고 했다. 호칭문제는 글로벌화 하기 위하여 영문 호칭이 중요하다. 영문호칭으로 Admiral Yi Sun Sin 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했다. 이내원 미주 이순신 교육본부 이사장에게는 엔터테인먼트로 교육을 극복할 생각은 없는지 하고 어떻게 6천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7만여 명의 학생을 가르치는지와 이순신 교육운동과 한글교육을 가르치는지에 대한 질문 이었다. 지금은 TV가 교육 선생이 되었다. 전인적인 인성교육을 위하여 글쓰기가 매우 중요하다. 책을 읽어야만 쓸 수 있는 주제를 내어 현상금을 걸고 글쓰기를 유도하고 있다. 6천여 명의 자원봉사지가 7만여 명의 학생들을 주말마다 3~4시간씩 한글과 역사공부를 하고 있다. 재정문제는 스스로 해결 한다. 특히 이번에 통영충렬사에서 지원한 5천 달러가 이순신의 세계화에 초석이 될 것이다. 


김준배 해군 교수가 질의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순신을 넬슨과 비교 하면서 나폴레옹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대비 시켰다. 그러면 도요토미는 나폴레옹이란 말인가? 와 도고가 말 했다는 “이순신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이순신과 비교 한다면 나는 일개 부사관도 못 된다”라는 말은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말이다. 따라서 진위여부를 떠나 최소 도고가 그 말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는지 알고 싶다고 질문했다. 일본이 나폴레옹을 수용한 것은 애도말기다. 평민출신이면서 전쟁 영웅인 나폴레옹과 히데요시는 닮은 곳이 있다. 일본해군 교육 교관의 교장이 도고다. 1861년 쓰시마에 러시아 함정이 점령하여 영국의 힘을 빌려 내쫒았다. 그 때 막부에서 서양의 두려움이 고조 되었다. 당연히 이순신에 대하여 알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말을 했을 가능성을 있다고 본다. 


마지막 토론자는 이배사의 기둥인 격군 제장명 교수님이다. 중국에서의 이순신은 등자룡과 같다. 둘 다 나라를 위하여 죽었다. 명나라 장수들도 이순신을 마음에 우러러 칭송을 했으며 선조실록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번 세미나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순신의 세계화를 기하는데 있다. 이순신을 단순히 노량해전에서 싸우다 순국한 인물로만 평가하고 있는 현실을 타파하여 그의 진정한 영웅으로서의 삶에 대해 제대로 알려서 세계인이 진심으로 탄복하는 대상으로 인식되기를 기대해 본다. 


플로어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했으나 간단한 질문이라며 통영에서 온 통제사 이종애씨가 박현규 교수에게 질문했다. 통영 충렬사에 보관중인 명조 팔사품이 명나라 신종황제가 내린 것이 아니라는 논문이 나왔는데 이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는 너무 앞서나간 오판이며 명조 팔사품은 명 황제가 내린 물품이 틀림없다. 조만간 통영 충렬사에 내려가 논문을 발표할 것이다. 라고 명쾌하게 답변을 했다. 


4시간 동안 쉼 없이 세미나를 이어갔다. 지식의 갈구로 거의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참석했다. 저녁을 먹고 갈 길이 바빠 귀가했다. 워낙 많은 양이고 바빠 복기가 늦었다. 하지만 기록을 해야 기억을 할 수 있으므로 거의 만 하루가 걸려 기억을 더듬어 기록한다. 





















2017.4.18. 서울 시청 대강당에서 한 세미나를 

2017.4.26. 복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