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하도는 고군산 열도까지 후퇴한 충무공이 전열을 정비하여 남쪽의 적을 협공하기 위하여 남하 하던 중
겨울을 맞아 전선 및 군량, 군비를 구축하던 장소이다.
고하도는 지금의 목포항을 감싸고 서남해안을 가는 길목에 위치한 전략적 중요한 지점이다.
겨울을 나면서 전선을 건조하고 소금을 만들어 군비를 마련했다.
조정과의 끊임없이 소통하며 명 수군과의 협력과 협치를 생각하며 대비를 했다.
전쟁의 기본인 경계를 철저히 하며 적의 동태를 파악했다.
당시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정유년(1597) 10월 29일 병술, 맑음. 사경에 첫 나팔을 불고 배를 출발하여 목포로 향하는데
이미 비와 우박이 섞여 내리고 동풍이 약간 불었다.
목포에 갔다가 보화도로 옮겨 정박하니 서북풍을 막을 것 같고 배를 감추기에 매우 적합했다.
그래서 육지에 올라 섬 안을 돌아보니 형세를 이룬 곳이 매우 많으므로 진을 치고 집 지을 계획을 세우고자 했다.
고하도에서는 집을 짓고 배를 만들고 해로 통행 첩을 발행하여 군량을 확보 하였다.
무술년(1598) 2월 18일 고금도로 진지를 옮긴 충무공은 진린과 함께 주둔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고하도는 여느 섬과 마찬가지로 충무공이 그쳐간 여러 진지중의 한곳으로 남아 있었다.
오중주 통제사가 이를 알리기 위하여 이충무공 기념비를 시작하고 이봉상 통제사가 완성했다.
남구만이 짓고 조태구가 썼다.
비의 높이는 227cm 너비는 112cm이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하여 파묻혔다.
광복 후 뜻있는 지역민들이 힘을 모이 비를 세우고 비각을 건립 하였다.
이충무공 기념 사업회를 결성하여 매년 충무공 탄신일인 4월 28일 탄신제를 봉행하고 있다.
최근 일제 강점기 개량종 목화를 최초로 심었다는 표석에 따라 목화마을로 특화 한다는 언론의 보도를 본적이 있다.
일제 강점기 수탈한 목화를 심을 것이 아니라 충무공의 호국정신을 선양하고 교육을 하는 장소로 거듭 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최근 목포에서 충무공 관련 세미나가 있었다.
고하도 노송 숲에 쌓인 모충각은 목포 앞바다를 굽어보며 대한민국이 나라다운 나라, 강건한 나라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2017. 5. 8
PS: 모충각 아래 바닷가에 채석을 한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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