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통영 소식

통영 최초 서양화가 김용주 이야기

청풍헌 2011. 10. 3. 22:52

예향 통영의 근원

현대 서양미술의 근원을 찾아서

 

김용주 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통영 예총의 주관으로  남망산 공원 청마시비 맞은편에

화비를 건립하고 그 제막식 및 기념전을 열었다.

 

통영 예술의 1세대인 김용주는 누구인가?

대표작품 防衛(방위)

이 작품은 1940년도  켄버스에 유채 작품으로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의 암울한 시기 모이를 먹는 암닭은 국민을 상징하며 그 주위를 호위하고 있는 수닭은 나라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민족적인 저항의식을 나타낸 작품으로 통영 보통학교에 기증되어 2층에 걸려 있었는데 이러한 의미때문에 매우 곤란을 격었다고 한다. 

화가 김용주는 1910년 통영 태평동에서 태어났으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통영 만석꾼 김진현의 증손자이다.

어릴적에 아버지 김홍수를 여위고 할머니 고도선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맏손자로 자랐다.

1926년 통영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카와바타 미술학부 양화부에서 수학하고 동 대학 인체연구실에서 6년을 더 수학하고 1940년 귀국하였다.

동경 유학시절 어려운 유학생을 불러 같이 숙식했으며 유치환,유치진,이중섭도 그당시에 만났다.

귀국후 조선미술전람회(선전) 양화부에 출품한 外出 과 回想이 입선되었으나 더이상 출품하지 않고 고향에서 작품활동을 하였다.

해방이후 통영중학교와 통영여중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며 화실문을 활짝열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이때 수학한 분들이 이태규,김형근,이한우,정창수,박종석,항유찬,정근대등 현존하는 기라성 같은 화가들이다.

그는 데생을 중시 했으며 인물화를 그릴때에도 사물의 내면을 그리고 그 위에 옷을 그려야 그 곡선이 살아난다는 철칙으로 데생을 중요시한 화가이다.

당시에 교류했던 화우로는 이중섭,양달석,박생광,홍영표,박득순,주경,이석우 등이다.

이중섭이 통영으로 와서 작품활동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인물이 김용주였다.

김화백은 평생 300여점의 작품활동을 했으나 지금 남은 작품은 20여점 밖에 없다.-김용주 화백 탄생100주년 기념 도록에서-

 

 

호암 미술관에 소장된 자화상은 일본에서 그린 작품으로 호암미술관 개관 기념 표지 작품으로 선정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왼쪽의  "누드 습작'은 정확한 비례와 명암,활달한 붓터치로써 생동감이 넘치는 미완성 작품이다.

"회상" 역시 대각선 구도로 치밀하게 계산된 파격적인 형식의 시도였다.-신항섭 평론-

대 전시실에 마련된 특별 전시실

김용주의 생가터는 이야~길의 코스에 있다.(장소를 몰라서 통영길문화연대 송국장님에게 문의함)

염주옥 화백

이분과의 대화에서 김용주 화백을 확실히 알수있는 계기가 되었다.

당신은 봉래극장주  막내로써 환쟁이(미술) 한다고 아버지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듣고 통영 수산학교를 나와

유서를 쓰고 월남전에 참전 했다고 한다.그래도 붓을 놓을 수 가 없어 여태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어릴때 아버지 한테 혼날때 용주처럼 될끼가 하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당시 화실에 드나들던 이가 이태규,박종석 이었고 이태규는 이중섭의 연락병 이었다고 한다.

김형근 화백은 한의사 집안이라 부유 했으며 이번에 기념관 및 장학재단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이태규는 술쟁이 라고 하는데 반드시 재조명 되어야 한다고 한다.

풍경화를 아주 잘 그렸다고 한다.

본인의 지갑에서 주섬주섬 꺼내놓은 사진이다.

김용주 화백을 알고 싶다고 하니 옷칠 미술관에 가면 따님이 전시회를 한다고 일러준다.

염주옥 화백의 작품이다.

본인의 생일날 아침에 항남동에서 조선소의 모습을 그린 풍경인데 구름에 비치는 태양의 빛에 따라

오묘한 색갈이 탄생 된다고 한다.

작가의 설명을 듣고보니 새롭게 보인다.

생가터를 돌아 걸어서 옻칠 미술관에 갔다.

입구에는 걸개그림과 축하 화환이 있다

김설 교수님의 약력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대학 교수및 부산대학교 교수,중국 대학에서

옻칠관련 객좌교수로 역임하고 있으며  지금은 숙명여자대학교 공예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이분이 김용주 화백의 막내 따님 이시다.

침 간 시간이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라 좋은 기회를 얻었다.

김성수 통영 옻칠 미술관장님과는 사제지간으로 김 관장이 숙명여대 있을때 옻칠을 배워서

이렇게 작품전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제지간의 훈훈한 정을 나누는 덕담에 이어 작품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었고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찬스!

통영 시민 김용재 입니다.

저는 지역의 예술가에 관심이 있어 공부를 하여 여러 동료나 지인들에게 자랑을 합니다.

아버지 김용주 화백의  화비건립을 계기로 여기서 작품전을 하는걸로 아는데 아버님과의 추억이 있다면 이야기 해 주십시요.

아버지는 세살때 돌아가셔서 기억이 없습니다.어머니와 오빠들 한테만 단편적으로 들었습니다.

또한 국민학교 오학년때 다른곳으로 이사를 가서 그 이후에는 아버지를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이렇게 고향에서 아버지를 잊지않고 화비를 건립하시니 감사 할 따름입니다.

나의 유연시절의 통영이 잠재해 있어 나의 작품 내면에 나타 난다고 생각 합니다.

작품에 대하여 무었이든 질문 하라고 하여 궁금하거 몇가지 물어 보았다.ㅋ

작품에 대하여 친절히 설명하시고 작가의 의도 및 앞으로의 방향 까지 자세히 설명하신다.

건칠 작가의 대가로써 프로세스를 정립하고 나만의  색깔 나만의 노하우를 가지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작품을 닮으려고 하지마라.

닮는순간 사약을 먹는거와 같다.

보되 다른 생각을 하라.

또한 실험하라.

그 경험이 토대가 되어 나만의 세계를 열 수 있다.

건칠의 과정을 잘 보여주는 프로세스

푸른 비취빛이 감도는 아름다운 볼 형태의 작품(통영의 푸른 쪽빛 바다색)

죽은 나무가 작가를 만나서 옻칠로써 재 탄생한 작품이다.

볼은 그릇으로써 귀중한 것을 담을 수도 있고 사유나 생각을 담을 수 도 있다.

즉 인위와 자연이 대치되고 또한  공존하는 형상이다.

나무는 자연이며 위의 그릇은 인위로써 상호 대치되면서 공존하는  아름다운이다.

옻칠이 마르기 직전 순간을 포착하여 생각되어진 그림을 순식간에 그려서 퍼짐과 입사의 조화가 이루어야

나만의 작품이 된다고 한다. 

이 작품은 생활속에서 사용할수있는 함인데 함은 혼수나 정신을 담을수가 있으며 디자인은 음양오행의 오방색을 사용하고

장석은 흑색 즉 北을 상징하는 흑색을 사용 했다고 한다.

뒷부분에도 문양을 넣어서 생명력 있는 매화꽃이 장식된 기능장이라고 한다.

 

김설교수의 설명을 듣고나니 김용주 화백의 분신이 나타난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예술적인 피를 고스란히 닯으신 교수님의 작품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김용주 화백 근대 서양화가 중에 재조명 받는 지역의 1세대 화가였다.

 

2011.10.2 통영 남망산 공원에서 백세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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