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정유재란 특별전(진주 박물관)

청풍헌 2017. 7. 28. 08:28

01

정유재란 이전 강화 협상과 조선의 대응

1593년 1월 평양성 전투에서 승리한 명군은 벽제관 전투 패전이후 협상으로 일본군을 철수시키려 하였다. 조선 수군과 의병의 활약, 명군의 참전 등으로 수세에 몰린 일본군도 오늘날의 서울에서 부산 등 경상도의 남해안으로 후퇴 하였다. 이후 명과 일본간의 강화협상이 시작 되었다. 조선과 명의 무조건적인 철수 요구와 달리, 일본은 '명 황제의 딸을 일본 천황의 후비后妃로 삼고, 조선의 4도를 일본에 넘긴다' 는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지루한 강화협상 결과, 명 조정을 책봉만 허락하고 조공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실에 분노하여 4년여의 강화협상을 거두고 다시 전쟁을 선언했다. 


02

전쟁의 재개와 일본군의 공세

1596년 9월 명과의 협상결렬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군에게 전쟁준비를 명령했다. 재침공 소식을 전해들은 조선은 명 조정에 구원을 요청하는 한편, 일본군의 공세를 막을 전략은 세웠다. 1597년 2월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에 상륙할 14만 1,500여 명의 군대를 배치하고 전라도를 먼저 공격하여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명은 조선에 군대를 급히 파견 하였다. 7월 15일 원균이 지휘한 조선 수군은 칠천량해전漆川梁海戰에서 크게 패하였다. 이 해전으로 일본군은 쉽게 전라도를 향해 진격할 수 있었다. 8월 초부터 일본군은 남원성南原城 등을 격파하고, 8월 19일 전주성州城을 점령하였다. 이후 일본군은 충청도와 전라도의 군현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는데, 이 때 많은 양민들이 희생되었다. 


03

조명 연합군의 반격과 주요전투

1597년 9월 명군이 충청도 직산稷山에서 일본군을 막아내고,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복귀한 이순신이 이끈 조선수군이 전라도 명량鳴梁에서 일본수군을 이겼다. 이 두 전투 이후 일본군은 남해안 일대의 왜성倭城으로 후퇴하고, 이를 거점으로 조선에 장기전을 계획 하였다. 공세로 전환한 조명 연합군은 12월 울산왜성蔚山倭城을 포위하여 공격하는 대격전을 벌였다. 1598년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일본군은 철수를 준비하였다. 조명연합군은 9월에 울산왜성, 사천왜성泗川倭城, 순천왜성順天倭城에 있는 일본군을 공격 하였고, 11월에 조명 연합수군은 일본 수군에 맞서 노량露梁에서 격전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를 끝으로 일본군이 완전히 퇴각 하면서 전쟁은 끝났다. 


04

전쟁의 기억-사람들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조선은 3만명도 안되는 군대로 15여 명의 일본군에 대항하였다. 전쟁의 재개는 임진왜란과 달리 예견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일본군의 공격에 무기력하게 대응했고, 명군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일본군을 물리쳤다. 전쟁에 대한 기록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쓰라린 기억을 담고 있었다. 이와 달리 일본은 별 소득 없이 퇴각 하였지만,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임을 각인시켰다. 전쟁에 대한 기억도 무용담과 함께 이국異國에 대한 호기심을 담은 내용으로 채워졌다. 명은 자국 영토의 보호와 국제질서의 유지를 위해 많은 병력과 전비를 쏟아 부었다, 명군은 일본군의 조선침공을 저지하는데 성공하였지만, 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 


05

종전 이후 동아시아 질서의 변화

전쟁이 끝난 뒤, 조선은 군사적.경제적 기반이 크게 약화되어 전후 복구를 위해 노력 하였다. 그러나 누르하치의 후금後金이 일어나 다시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때 조선은 명과의 의리에 집착하여 다시 전란에 휩싸였다. 한편 1600년 세키가하라전투 이후 권력을 장악한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조선과 다시 국교를 맺으려 시도하였다. 조선도 일본과의 관계회복을 위해서 통신사를 파견할 수 밖에 없었다. 명은 일본군의 퇴각으로 동아시아 패권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누르하치의 성장을 견제하지 못했다. 20년 뒤인 1618년 후금의 누르하치는 명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일어난 농민반란으로 1644년 명은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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