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여행 이야기

어느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민주화의 성지이다. (5.18민주화운동)

청풍헌 2018. 1. 22. 22:05

19791026 일은 강원도 철원 문혜리에서 혹한기 훈련 중이었다상황실로 온 한통의 전문은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었다훈련나간 전 부대는 급히 귀대하라는 사단의 연락을 받고 급히 귀대 하였다상황실 벙커에서 수시로 내려오는 작전 지시를 확인하니 대통령 유고 라는 말과 함께 비상이 발령 되었다내려진 비상은 대포권3 이었다즉 준 전시상태의 비상이다이 시간 이후부터 하는 모든 행위는 전시작전이다훈련이 아닌 실제상황이다제대를  7개월여 앞두고 일이 벌어졌다다음해 1980  5  15 일 무사히 제대를 하고 집에서  5.18 을 접했다변방의 거제도 한쪽 구석에서 접한 내용은 언론통제에서 전하는 내용뿐이었다그러나 간간히 들려오는 전두환이 정권을 잡기 위해 엄청난 일을 꾸민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영화『화려한 휴가 택시 운전사  5.18 을 조명한 영화다작년 개봉한  택시 운전사 는 실제 있었던 사실을 영화화 했다두 번이나 영화를 관람하면서  5.18  묘지 참배를 결심했다나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당시에 나는 민주주의를 위하여 무엇을 했나민주화 영령들을 위로하고 광주의 현장을 보고 싶었다. 주의 지인에게 부탁하여 안내를 받았다 .

 

광주는 몇 차례 갔었다한 때 마라톤 한다고 호남국제마라톤 대회에 참가 했으며 무등산 등산도 했었다하지만 오늘은 오롯이 광주 민주화 운동만 느껴 보려고 한다.  약속 장소인 국립 5.18  민주묘지에 도착했다입구 안내소에 설명과 참배를 부탁하니 나와서 설명을 했다. 5.18 의 발생 과정을 설명하는데 기억이 또렷이 났다가슴이 아팠다늦게 온 것이 후회 되었다방명록에 서명하고 경내로 들어섰다입구에서 참배재단까지는 상당한 거리인데 비장한 음악이 흐르는 길을 걸어가면서 온갖 감회가 들었다미리 신청한 가족과 함께 분향하고 묵념했다.

 

이곳은  5.18  민주인사들만 묻히는 특별한 공간이다. 5.18 구묘지에서 이장을 하여 안치를 했다묘지를 둘러보면서 윤상원 묘지에 왔다시민군의 대변인을 하다가 최후항전으로 사망한 민주인사다박기순과 합장묘인데 영혼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 외 헌혈을 하고 가다가 총에 맞아 죽은 사람남편을 마중 나갔다가 죽은 사람임신한 채 총탄에 맞아 죽은 사람 등도 있었다.

 

이 땅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호남은 우리나라에 무엇인지깊은 생각이 들었다추모 관에 들러 전시장을 둘러보았다그곳에서 택시 운전사의 주인공인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트 기자의 묘지가 구묘지에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구묘지로 이동했다. 5.18  구 묘지는 광주의 공동묘지였다청소차에 실려 온 시신은 제대로 된 장례절차도 없이 한곳에 묻었다희생자들의 신원이 확인된 유골은 국립 5.19 민주묘지로 옮기고 나머지는 이곳에 있었다이 한열 열사와 백남기 농민도 이곳에 묻혔다위르겐 힌츠페트의 묘는 입구의 우측 한 공간에 있었다구 묘역 입구의 바닥에 특이한 검은 물체가 있어 살피니 전두환의 비석이 묻혀있었다민주화 영령들의 참배 시 이곳을 밟고 가라고 입구 바닥에 묻었다한다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이럴까 하니 먹먹하다악비장군에게 누명을 씌운 진회와 그 부인, 처형자들의 동상을 세워 모욕을 주는 형태와 비슷했다.

 

38 년이 지났는데 아직 화합을 하지 못하고 서로 반목하는 모양이 좋지 않았다홍준표가  5.18 묘지를 처음 참배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광주 시민들도 이제는 함께 포용해야할 것이다어느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민주화의 성지이다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위안부를 부정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동서 화합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민주의 현장이 무척 보고 싶었다. 금남로 충장로 전남도청 등으로 대변되는 민주화의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공수부대의 총탄에 쓰러진 시민들의 시위현장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궁금했다.

 

먼저 전남도청 건물로 들어갔다. 옛 전남 도청은 아시아문화전당으로 일부 변경되어 원형을 상실한 체 복원운동을 하고 있었다. 미디어의 힘이 얼마나 큰지는 2층 전체를 택시 운전사로 전시되어있었다. 위르켄 힌츠페트의 영상이 진실을 알리는 중요한 증거가 되어 진실에 더욱 다가가게 되었다.

 

도청 앞 광장은 평화로웠다. 지금의 평화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누리는 호사다. 분수대 주위로 당시의 현장사진을 생각할 때 함성과 결기가 느껴진다. 가슴에 치미는 무언가 있다. 나무와 시계탑의 증언을 들을 수 있을까? 전일빌딩의 헬기총탄 흔적과 금남대로의 함성은 역사의 흔적이다.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에 갔다.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전시되고 있었다. 민주화운동의 전개과정을 정리한 소책자를 받았으며 광주의 오월을 걷자라는 오월길 가이드북도 챙겼다. 실제 걷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니 모객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모든 것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인권 길, 민중 길, 의향 길, 예술 길, 남도 길 등 5개 챕터에 18개 코스의 길이다. 의미 있는 길이며 꾸준히 걸으며 민주정신을 새겼으면 한다. 5.18 기념재단에 연락하여 언제 한번 걸어야겠다.

 

날이 어두워져 답사를 마치고 아쉽지만 귀가 길에 올랐다. 오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다. 죽음으로 민주화를 이룬 광주시민들에게 나는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투브에서 검색하여 5.18 영상을 보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듣고 관련 서적을 찾아 읽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도 구입하여 읽기 시작했다. 기회가 되면 다시 방문하고 싶다. 광주의 오월 길도 함께 걸으며 기념식도 함께해보고 싶다.



2018.1.21. 광주 민주화 성지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