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103회 일요걷기(통영별로3,사천-진주)천천히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나아갈 것이다.

청풍헌 2018. 5. 4. 20:15

통영별로 3구간은 사천-진주다. 사천은 옛 지명이 사수현이다. 역로는 동계역에서 관율역으로 다시 진주의 소촌역으로 연결된다. 소촌역은 지금의 문산읍으로 서부 경남의 중요한 찰방역이다. 진주에는 경상우병영이 있던 곳이다. 통제사가 진주의 병영을 거쳤을 수도 있고 평거역에서 소남역이나 신안역(원지)으로 갔을 수도 있다. 우리는 역로를 가지 않고 현재의 국도를 따라 진주로 들어갈 것이다.

 

사천 주차장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걸음을 시작했다. 마침 참여한 회원 중에 한 분이 진주가 고향인 사람이 있어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천에서 한 때 유명했던 재건냉면집을 지나 사천 비행장을 거쳐 꽃집 하우스에 들렀다. 온갖 예쁜 꽃들이 아름답게 피었으며 다육이를 잘 번식을 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빗방울이 굵어져 이곳에서 우의를 꺼내 입고 발길을 재촉했다. 사천 비행장 쪽으로 흐르는 중선포천은 사천과 진주의 경계지점이라 한다.

 

3호선 국도를 피해 샛길로 접어들어 강주연못으로 향했다. 길가의 자투리땅을 일구는 촌로가 있어 돌아가며 밭을 일구었다.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의 아버지요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들판 가운데 하우스에는 수박농사가 한창이다. 농민들과의 대화에서 수박 한 덩이를 키우려면 100번의 손이 간다는 말이 실감났다. 모종 관리에서부터 하우스 관리 순자르기 등등 이루 말로 할 수 없이 많은 손이 필요하다. 농산물을 먹을 때는 농부들의 수고로움을 알아야 할 것이다. 계절이 봄이라 들판에는 못자리가 한창이다. 요즘은 볍씨를 미리 싹을 틔워 모 상자에서 키우지만 예전에는 모판에 그냥 볍씨를 뿌리고 비닐로 덮어 온도를 높여 모를 키웠다. 아무리 추워도 계절은 어김없이 다가오고 끊임없이 순환된다.

 

강주 연못에 왔다. 강주라는 지명은 예 진주를 고려시대에는 강주라 했다. 강주 현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강주연못이라 하는데 연못안의 연 대가 스러져 특이한 기하학적 기호를 나타낸다. 연못은 아름드리 고목에 둘러싸여 시민들의 쉼터로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가져온 간식을 먹고 다시 힘을 내어 걸음을 옮겼다.

 

진주로 진입하는 곳은 국도 3호선과 고속도로가 얽히고 설켜 도저히 걸어서 가기는 무리다. 샛길도 없으며 더군다나 인도도 없다. 싱싱 달리는 자동차들 사이로 목숨을 담보하면 갈 필요는 없다. 고속도로를 오른쪽으로 끼고 가는 샛길로 접어들었다 예하 마을이 보신탕이 유명했던 곳이란다. 진주에서 보신탕 먹으로 이곳까지 원정을 오기도 했다 한다. 그러고 보니 보신탕 입간판이 보였다. 예하 초등학교를 끼고 돌아 한적한 길로 들었다. 길가에 심어진 매실은 제법 열매를 맺어 튼실하게 살을 올리고 있고 모과나무의 어린 열매도 달렸다.

 

지루한 길이 이어졌다. 그 사이 인경 씨와 전화 약속이 되어 경상대 정문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고속도로 인터체인지의 지하통로가 매우 길었다. 컴컴한 지하통로를 지나 밝은 세상으로 나오니 정상회담이 기대된다. 내친김에 가좌 천을 끼고 약속된 곳에서 만나 이동했다. 경상대 앞에서 가장 맛있다는 집을 수소문하여 들어갔다. 피자와 파스타를 시켜 맛있게 먹고 커피도 한 잔 맛있게 먹었다. 함께 걷고 싶었는데 몸이 불편하여 함께하지 못함을 이것으로 대신 한다며 인경 씨가 계산을 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통영에서 진주까지 한 달음에 달려 오셔서 격려와 맛있는 점심까지 사 주신 그 마음은 아름다운 동행이다.

 

맛있는 점심을 먹었으니 힘을 내어 촉석루로 향했다. 남강은 진주의 젓줄이다. 강변 수변공원은 잘 정비되어 있었다. 도심을 흐르는 수변공원이 가장 잘 되어 있는 곳은 순천의 서천이다. 잘 정비되고 관리된 하천이 흘러 순천만 습지를 이룬 것이다. 진주의 남강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서 깊은 강이다. 천변에는 대나무가 무성하다. 예부터 강변에 대나무를 심어 관리를 했다고 한다. 대 숲에 가려 소리를 흡수함으로 강변에서 사물놀이를 실컷 연습했다고 한다.

 

진주대교(지역민들은 남강다리라 한다)에 들어섰다. 교각 옆에는 논개의 가락지를 상징하는 상징물이 설치되어있다. 진주는 충절의 고장이다. 임진왜란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곳이다. 임진왜란의 진주성 전투는 임란 3대첩에 속하는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이듬 해 진주성의 함락으로 성안의 모든 사람들은 몰살을 하였다. 그 때 논개는 적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생을 마감 하였다. 이후 논개에 대하여 여러 학설이 제기되고 이야기들이 회자 되었다.

 

드디어 촉석문에 왔다. 매표를 하고 촉석루에 들어갔으나 우천 및 시간이 지나 촉석루 위에 올라가지 못하고 기념사진만 남겼다. 드디어 진주까지 완보를 했다. 20km를 오면서 많은 것을 보았으며 느꼈다. 진주성은 여러 차례 중수되고 확장 되었다. 촉석문 앞은 외성 지역으로 발굴조사가 한창이다. 외성까지 복원할 모양이다. 촉석루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일정을 마무리했다

 

3일 만에 진주까지 왔다. 열하루 만에 전주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된다. 앞으로 날씨가 변수다. 천천히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나아갈 것이다.



2018.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