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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물" 그 역사를 찾아서-3(우동 수원지의 비밀)

청풍헌 2011. 11. 12. 22:21

 물은 생명이다 라는 케치 프레이즈가 있다.

K-water가 내걸고 있는 구호이다.

통영 그 생명의 물 제3탄이다.

 

 

 우동 수원지를 찾았다.

때는 바야흐로 늦가을 타작이 끝난 논에는 사료용 볏집이 딩굴고

마늘심고 시금치 심은 논들은 파릇파릇 봄을 기다리고 있다.

용화 수원지의 한계로 인하여 이곳 광도면 우동에 수원지를  건설 했다.

1960년 12월~1964년 12월까지 4년여의 공사끝에 404,000톤 저수용량의 수원지를 확보했다.

 우동 수원지 가는길은 죽림 신도시의 E-마트  가는길 지나 광도면 가는길로 우회전

고속도로 아래로 횡단하기 직전 우동2길 가는길이다.

 그곳은 천개(天開)마을 이었다.

  신작로가 곧은 천개마을 우동 수원지 가는길

 오리나무 사이로 보이는 수원지 뚝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수원지 모습.

수원지 옆으로난 신작로 길에 가을 낙옆이 쓸쓸히 쌓여만 가고 

상수도 보호구역 팻말이 있다.(전면) 

 알림과 아래라는 항목으로 금지행위및 위반시 벌칙을 적어 놓았다.

 최 상류에 흐르는 물은 과연 일급수 였다.

그냥 먹어도 될 만큼 깨끗한 물이었다.

 상수도 보호구역이라 겨우 벌통 몇개만 보이고 사람은 흔적도 없네.

 가을의 흔적들...

 찔레꽃 열매.

 붉게 물든 나뭇잎

무슨 열매인지  앵두같은 붉은 입술

이 모두가 가을을 알리는 전령사 

 수원지 아래에는 오래된 플라타나스가 고목을 자랑하고 노랗게 단풍을 내리고 있었다.

 인적이 없어 물어 볼수도 없다.

분명히 사연이 있을건데...

 

 

 다시 찾은 우동 수원지 천개마을

오늘은 기필코 동네 어른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하고 마을로 들었다.

 

 

 자동차가 질주하는 대진 고속도로  옆 논에는 마늘이 파릇히 자라고 있다.

 

 

수원지 아래 마을에서 만난 김정갑씨(65세)

마을의 이장을 역임하시어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1960년 12월에 이곳 천개마을 상류에 수원지를 만들기 위하여 기공식을 하고

공사를 하던중에 이듬해(1961년) 여름 집중호우로 인하여 공사중인 수원지가 붕괴되어

산 아래 마을이 제방뚝에 휩쓸려가고 할머니 한분이 노산 바다 까지 떠밀려가서 죽었다고 한다.

수원지 아래 옥토가 붕괴된 제방으로 인하여 형태도 없이  사라지고 하천도 형태가 변하여 남의 토지가

시내가 되었다고 한다.이후 이 하천부지 관련 많은 애로가 있었으며 일부 농민은 큰 손해를 보았다고 한다.

지금의 하천은 당시에 제방 붕괴로 생긴 물줄기가 하천이 된것이다.

 

당시에 주민들과의 합의 내용이 농사용 물은 언제든지  사용하기로 하고 공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언제든지 농사용 물이 필요하면 수시로 사용할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한다.

 

 

 당시에 생긴 하천에 있는 거북모양의 바위

 

 

 마을로 들어서는 대촌교 입구 우측에 석비가 하나 있다.

이끼가 끼어 글씨를 알아볼 수 가 없어 이리저리 보고 있는데 지나는 동네청년이 일러준다.

이 비석이 基督敎 頌德碑기독교 송덕비  세계봉사회 라는 비석인데

수원지 뚝이 터져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을때 봉사활동을 한 기독교 단체가 세운 비석이라고 한다.

 

 

그 위쪽에 상당히 큰 비석이 있다.이 비석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삼소장(三笑庄)에 얽힌 일화
통영시 광도면 벽방산 아래 우동 입구 섬안등이란 나지막한 바위 억덕에 '三笑庄(삼소장)' 이라 새긴 특이한 비석이 서 있다.

1830년경 벽방산 아래 마을인 우동, 노산, 손덕에 김태찬, 배영수, 김두곤 세 분이 각각 살았다고 한다. 세 분은 나이가 같고 서당에도 같이 다녔으며, 직업도 모두 한약방을 경영하는 절친한 친구였다.

당시 한약재는 흔하지 않은 터라 귀한 약재는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대구의 약령 시장에서 구입하고, 대부분은 의원이 몸소 깊은 산중에 가서 채취하였다. 어느 날 약을 구하기 위해 세 사람이 함께 벽방산에 들어갔는데, 숲이 너무 울창한 데다 안개마저 깊어 서로가 뿔뿔이 흩어진 채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다.

제각기 안간힘을 다해 신호를 보냈으나, 녹음이 짙어 서로 들리지 않았다. 하산하는 길을 찾아 모두들 애를 태웠다. 마침내 한 사람이 처음 출발할 때 만나기로 약속한 바위 언덕을 제일 먼저 찾았다. 그러나 밤이 깊도록 기다려도 동료들이 내려오지 않으므로 이들을 찾기 위해 다시 산으로 올랐다. 서로가 그러기를 밤이 새도록 반복하였다.

산 속을 헤매던 중 날도 밝고 안개도 걷히자 드디어 세 사람은 바위 언덕에서 일시에 만나게 되어 하도 반가워 크게 소리내어 한바탕 웃었다고 한다. 그 뒤로도 이 세 사람은 약을 구하러 갈 때마다 이 바위 언덕에서 출발하고, 하산할 때에도 반드시 이 바위 언덕에서 만나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들 세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이들의 후손들이 이 자리에 '三笑庄' 이란 비석을 세웠고, 대대로 형제처럼 지내오고 있다고 한다.

 

 

대촌교와 기독교 송덕비 삼소장 비석이 일직선 상에 있다.

 

 

지금은 남강 수원지의 물을 먹고 있지만 당시에는 물이 귀하여 이렇게 아픔을 겪으며 수원지를 개발하고 사용 하였다.

통영은 반도의 지형이라 큰 산이 없어 물이 귀한 곳이다.

이번 우동 수원지를 알아보면서 물 부족 국가로 지정된 대한민국이 치수를 잘하여

후세에 길이길이 물려줄 아름다운 고장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11.11.12 우동 수원지에서 백세청풍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