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122회 일요걷기(지리산 둘레길3)우리의 작은 실천 하나가 나비효과를 내어 온 산천이 깨끗해졌으면 한다.

청풍헌 2019. 4. 30. 22:07

지리산 산록에는 세 가지의 녹색이 있다. 파릇파릇 새싹인 연둣빛 향연과 잣나무의 연한 초록색과 소나무의 짙은 초록색이다. 어머니의 치마폭같이 넉넉한 지리산 자락의 마을을 잇는 지리산 둘레 길은 봄의 오케스트라였다. 온갖 잎과 꽃들이 피어나 춤을 춘다. 이맘때면 어딜 가나 예쁘다. 들판의 농부는 한해 농사를 위하여 땀을 흘리고 겨우내 마구간에 있던 어미 소와 송아지는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봄은 만물을 밖으로 보낸다. 우리도 하루를 온전히 자연과 호흡하러 나왔다.

 

지리산 둘레길 중 가장 긴 코스인 인월-금계 구간이다. 무려 20.5km이다. 이것을 완보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여러 변수를 생각하여 대비책을 세웠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것은 기우였다. 독한 사람 옆에 가면 독해진다는 속설처럼 아무렇지 않게 완보했다. 약간의 유혹도 있었다. 천년고찰인 실상사도 곁에 있었으며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힘도 들었다.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의논이 있었다. 오늘 가지 않으면 내일은 더 힘들 것이다. 지리산 둘레길 중 가장 긴 코스인 이곳만 완보하면 나머지 코스는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묵묵히 출발했다.

 

클린 워킹 관련 두 번의 시행으로 쓰레기를 통영으로 가져왔다. 통영의 쓰레기 자루를 이곳에 두려니 이것도 아닌 것 같고 또 다른 지역의 쓰레기를 통영으로 가져오는 것도 이상하여 고민되었다. 지리산 둘레길 사무국에 의논하니 적극적으로 협조해주기로 하였다. 이동 중 날씨가 흐려 검색을 하니 흐림으로 나왔다. 인월 센터로 갔다. 두 분의 직원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미리 연락되어 자루와 봉지 및 집게를 준비해 놓았다. 시그널과 비닐봉지 등을 나눠주고 출발하려는데 비가 온다. 분명 예보는 없었는데 비가오니 긴급히 일회용 우의를 구입하여 입고 출발했다.

 

람천 변을 따라 초록의 융단이 깔린 자갈길은 편안했다. 벚나무는 화려한 꽃잎은 떨어뜨리고 내년을 기약하며 새싹을 내리고 있다. 천변 초지에는 어미 소와 함께 나온 송아지가 한가로이 놀고 있으며 논농사를 위한 트랙터의 써레질이 한창이다. 중군마을의 어느 집 돌담에 금낭화가 예쁘게 피었다. 비가 오는 지붕에 고사리가 널려있고 담벼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논에는 논두렁 만드느라 흙을 고르고 있다. 논두렁은 논물이 다른 곳으로 새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이며 물이 새면 논 언덕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중군마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 길은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난다. 각자 가고 싶은 데로 갔다. 일부는 아래로 일부는 위로 향했다. 마음 끌리는 대로 위로 방향을 잡았다. 비가 부슬 부슬 오는 길은 촉촉이 젖었다. 길가에 난 풀들은 더욱 선명하고 어름 꽃은 향기를 뿜고 있었다. 연둣빛은 참으로 편안하다. 황매암에서 간식을 먹고 원시 자연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생강나무며 잣나무며 야생화가 핀 깊은 산속이다. 정점을 찍고 아래로 내려오니 아랫길과 합류 지점이다.

 

먼저 도착한 회원이 막걸리와 파전을 시켰다. 갈증에는 막걸리가 보약이다. 파전에 쑥을 넣어 쑥 향이 짙게 전해왔다. 좀 비싸긴 해도 현지에서 먹는 막걸리 맛은 꿀이다. 여행은 이 맛이다. 참새 방앗간처럼 여러 둘레꾼이 왔다. 젊은 사람들은 현금이 없다며 할머니에게 계좌번호를 물어본다.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핫 플레이스에는 일반적인 현상인데 나에게는 낯설다. 점심 약속 시각에 늦을 것 같아 출발을 재촉했다.

 

배넘이 재를 넘어 산내면으로 왔다. 점심 약속 시각이 11:30분인데 1시간이나 늦었다. 식당에서 연락이 와서 위치를 알려주고 속도를 내어 월광식당으로 들어갔다. 우렁이쌈밥이다. 우렁이를 볶아서 쌈장에 비벼서 쌈 채소에 싸 먹는 메뉴였다. 지리산 고사리나물과 취나물은 특유한 향이 나는 지역 음식이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나서 3코스를 두 번에 나누어 걷자는 의견이 있었다. 잠깐의 갈등이 있었으나 이내 평정심을 찾았다. 밖에서 쓰레기를 모아 큰 봉투에 담아 두었다.

 

매동마을로 들어섰다. 둘레 길과 합류를 해야 하므로 지도를 보며 진행을 했는데 길을 잘못 들은 것 같아 다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길을 찾지 못하고 다시 돌아 나와 왔던 길로 계속 올라 둘레 길과 합류했다. 다시 또 큰 고개를 넘어야한다. 이 고개와 등구재가 하나 남았다. 용기를 내어 오르막을 올랐다. 무척 힘들었다. 지리산은 보통의 산이 아니다. 단발에 끝나는 위치도 아니다. 은근과 끈기를 요구하는 둘레길이다. 그래도 우리는 간다. 걸어서 끝까지 갈 것이다.

 

등구재 민박집 앞에서 여러 사람들이 환영해 주었다. 혹시 동네 주민인가 했더니 경기도에서 온 둘레꾼이다. 나마스떼! 또 오르막이다. 꾸역꾸역 오르고 또 오르니 드디어 고개 마루에 올라섰다. 이곳이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지점이다. 길 양옆으로 고사리 밭이다. 고사리가 새순을 내밀고 있다, 꺾고 싶은 욕망이 올랐으나 참아야 한다. 길을 열어준 마을 주민들에게 적어도 민폐는 끼치지 않아야 한다. 창원마을로 들어섰다. 산 중턱에 위치한 시골마을이다. 이 마을이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는지를 몰랐다. 그냥 둘레길 중간에 있는 보통 마을인 줄 알았다. 7km 남았을 때 거의 힘이 소진되었다.

 

내리막길이다. 한참을 내려왔는데 물을 먹을 곳이 없었다. 내리막 경사가 심하여 뒤로 걸어 내려오며 다리 근육을 풀었다. 힘들었다. 그래도 뒤로 처져 낙오자는 없었다. 우려와는 달리 잘도 걷는다. 물론 악으로 깡으로 걷고 있겠지만. 오히려 내가 뒤처졌다. 내리막에 장경 인대가 아팠다. 쉼터를 발견하고 쉬는데 마을 주민이 두릅과 산나물을 채취해와 앉아 있었다. 1만원을 주고 사서 들고 걸었다. 이것도 큰 집이 되었다. 힘이 드니 머리카락 한 올도 무겁게 느껴지는데 산나물까지 들고 가려니 힘들었다.

 

오르락내리락을 거듭한 끝에 벽송사 가는 다리가 보였다. 고지가 보였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얼마나 높은 곳에서 내려왔는지 알 수가 있었다. 함양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1km 남았다. 마을로 접어들어 드디어 센터에 도착했다. 직원과 인사를 하고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우리를 픽업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기다려 주셨다. 주워온 쓰레기를 정리하여 자루에 담고 표준 봉지를 해체하여 종류를 파악했다.

 

힘들었다. 나만 그런가? 평지 20km는 거뜬한데 오르락내리락 20km1.5배의 체력이 필요하였다. 세 번의 클린 워킹으로 느낀 점은 둘레꾼들의 수준이 높음을 느꼈다. 둘레 길에는 거의 쓰레기가 없으며 대부분 마을 가까이 있었다. 우리의 작은 실천 하나가 나비효과를 내어 온 산천이 깨끗해졌으면 한다.

 

클린 워킹 결과

패트병:10, 음료캔: 20, 종이컵: 30, 담배갑: 20, 물티슈: 30, 비닐:10,

사탕껍질: 20, 종이류: 30, 플라스틱 병뚜껑:10


 

2019. 4.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