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141회 일요 걷기(지리산 둘레길 12, 대축-원부춘) 우리가 길을 걷는 이유

청풍헌 2020. 8. 4. 21:30

141회 일요 걷기(지리산 둘레길 12, 대축-원부춘)

 

7월의 장마 때문에 해간도 달빛 걷기가 취소되고 일요 걷기도 날씨 때문에 걱정되었다. 일기예보에는 비가 없어 그냥 진행하기로 했다. 야간 걷기는 비가 오면 곤란하지만, 주간 걷기는 약간의 비가와도 진행이 가능하다. 오히려 빗길 걷기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어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결정하고 공지와 신청을 받아 드디어 일요일 출발했다.

 

지리산 둘레길 13코스는 거리가 짧았다. 12코스에는 16.7km인데 이번 코스는 8.5km이다. 이것쯤이야 하고 다들 생각했었다. 우리는 대축에서 가볍게 걸음을 시작했다. 대축은 수년 전 지리산 가을 소풍 때 왔던 좋은 기억이 있다. 대봉감이 주렁주렁 열리고 추수가 끝난 평사리 들녘을 걸은 추억이 좋은 곳이다. 날씨가 맑아 하늘이 투명했다, 오랜만에 햇볕이 나고 하늘에는 흰 구름이 있는 전형적인 여름 하늘이다. 눈에 비치는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은 시내의 맑은 물과 어울려 아름다웠다. 악양천변으로 걷는 내내 좋았다. 핑크뮬리의 상상과 흐르는 맑은 물, 짙푸른 논, 밭에서 자리는 고추와 열매들이 있었다. 참 좋은 날씨라 하며 입석마을로 들어섰다.

 

입석마을은 오래된 돌담과 함께 지리산 언저리의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마을을 관통하여 계속 올랐다. 상당한 높이를 느끼며 계속 올랐다. 평지를 걸을 때는 힘든 줄 몰랐으나 계속 오르막이니 날씨도 덥고 매우 힘들었다. 어느 농막에서 쉬면서 땀을 식히고 가져간 간식을 나눠먹고 숲 속으로 들어섰다. 땀이 비 오듯 하고 힘든 오르막이니 일부 회원은 매우 힘들어하여 배낭의 짐을 나눠서 지고 올랐다. 전날 많은 비로 인하여 오래된 낙엽이 푹신했다. 축축한 낙엽 냄새와 흙냄새가 좋았다. 수십, 수백 년 세월의 흔적이 묻은 낙엽과 대지를 맨발로 느끼자는 회원의 제안에 모두 신발을 벗었다. 촉감이 부드럽고 좋았다. 지구의 숨결과, 대지의 촉감을 그대로 느꼈다. 발바닥에 전해오는 적당한 지압은 정신을 맑게 하고 등에 진 배낭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졌다. 이렇게 개서어나무 숲을 통과하고 500고지의 아랫재 마루에 올라섰다.

 

다시 옆으로 조금 가니 또 오르막이다. 표고 600 고지에서 간간이 휴식을 취하며 힘겹게 올랐다. 천연 돌침대와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잠깐의 휴식은 꿀맛이다. 드디어 750 고지를 넘어서면서 옆쪽에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물소리가 반가웠다. 지리산 계곡물을 만나 땀을 식히며 마실 물을 보충하고 점심은 조금 더 가서 적당한 장소에서 먹기로 하고 이동했다. 지금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이 길은 둘레길이 아니고 등산길이다. 다시 표고가 급속히 하강하면서 내리막길을 내려왔다. 골짜기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서 도시락을 펼쳤다.

 

식사 후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긴 내리막에 무릎이 아픈 회원은 뒤로 처지고 날다람쥐처럼 날랜 회원은 앞장서서 잘도 내려간다. 내린 비로 인하여 길이 물에 잠겨 첨벙거리며 길을 내려왔다. 어느 계곡에는 타잔이 나올 만큼 깊은 원시림과 다래나무 줄이 있었다. 이 줄을 타고 내려가고 싶었다. 꾸역꾸역 내려서니 드디어 원부춘 마을이 나타났다. 짧은 거리라 생각한 대축-원부춘 구간은 둘레길이 아닌 가파른 등산코스였다. 일찍 마치면 악양의 토지문학관도 둘러보고 평사리 들녘도 보려고 했으나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지리산 둘레길은 마을과 마을을 연결한 길이다. 평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산길도 있으며 한마디로 쉬운 길은 없다. 그만큼 삶의 생생한 현장이 있는 길인 샘이다. 옛사람들이 산길을 넘어서 서로 소통했던 그런 길을 걸은 것이다. 길을 따라 마을과 마을이 소통하듯 그들처럼 우리도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소통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길을 걷는 이유다.

202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