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140회 일요걷기(비지정문화재2+나전체험)

청풍헌 2020. 7. 19. 16:21

장마철이라 날씨가 변화무상하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의 정치판과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 지난번 걷기에 계획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 장맛비 때문에 오후 답사를 하지 못하여 이번에 비지정 문화재 나머지 답사를 하고 나전 체험까지 계획했다.

 

몇 가지 사전 준비를 마치고 우리는 적십자병원 뒤에서 모였다. 오늘의 일정을 공유하고 오후에는 나전 체험을 하기로 하고 일정을 시작했다. 먼저 장공장으로 이동했다. 서호동 장공장은 간장공장으로 김상현 부대표의 노력으로 규명되어 굴뚝과 건물 일부가 보존되었다. 마산 사람들이 몽고간장의 건축물을 보존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통영을 매우 부러워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했다. 보존한 건물과 굴뚝이 도시재생 사업에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綠蘿亭(녹라정)은 현 서호동 노인회관으로 사용하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예사롭지 않은 원형 기둥에 내부에는 일반 사대부에도 쓰지 않는 대형 종도리와 서까래의 이중구조 및 들창문 고정 고리까지 남아 있었다. 폐영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관청 건물이 헐리고 팔려서 여러 곳으로 이동되고 이전되었다. 그중 한곳이 이곳 녹라정 건물이다. 충분히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이다. 회정(晦亭) 김기환(金淇驩) 1935년 세병관 부속건물 한 동을 불하받아 이전 입주하고 녹라정(綠蘿亭)이라 명명하고 조소앙, 설의식, 조병옥 등과 교류했다. 이후 충렬사 보존협회를 결성하고 회장에 역임하였다. 1968년 노환으로 녹라정(綠蘿亭)에서 사망하였다.

 

명정 고개 벅수는 도로 확장 공사 시 한 기가 없어져 새로 만들어 세웠다. 이후 한 기는 목이 잘려 나간 체 발견되어 뒤편에 세워 놓았다. 이 벅수는 최근 세병관 공사 때 발굴된 석인과 유사했다. 손의 모양이나 아래에 구멍이 있는 것이 매우 유사한 것이다. 천암산과 북포루 등산로 입구에 있는데 나무가 자라 안내판과 벅수를 가리고 있다.

 

우럭개 벅수는 야외에 노출된 채 수십 년의 세월에 닳고 낡아 형체만 남았다. 더군다나 주위에 쓰레기를 방치하여 보기 흉했다. 이 이정표는 민속 물로써 위치적인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고성과 우럭개, 명정 고개는 통제영과 연결되는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한다.

 

미륵도로 건너와 충무교 아래 구 산양면 사무소 터에 왔다. 이곳은 기미3.1독립운동의 산실로 1919 3 8일 격문을 만들어 인쇄한 후 시내로 들어오다가 체포되어 이학이는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허장완은 옥사했다. 꽃다운 청춘을 나라를 위하여 초개같이 목숨을 바친 두 독립열사는 만인의 귀감이고 표상이다. 그 중 허장완의 묘소는 법원 앞에 있다.

 

미우지 약천은 제199대 정낙용(鄭洛鎔) 통제사가 물맛이 대단히 좋을 뿐 아니라 피로를 깨끗이 씻어 주므로 친히 藥泉(약천)”이라는 글을 써서 내리고는 이를 돌에 새겨 표석으로 세우게 했다는 야사(野史)가 전해오고 있다. 표석 옆에는 약수터가 있어 주민들이 이 물을 마시고 있다.

 

세포 고개에 있는 월성정씨영세불망비는 용동궁 도장무리들의 횡포를 임금에게 직접 擊錚(격쟁)으로 알려 전복 진상의 면제를 한 정씨를 기리는 비석이다. 현종 5년 무술(1838), 여러 주민이 세웠다.

 

唐浦萬戶碑(당포만호비)는 삼덕사 입구 원항마을 방향 버스 정류소 위쪽 언덕에 있는데 아무런 안내판도 없다. 비가 오는 가운데 수풀을 헤치고 올라가니 풀 섶에 쌓여 묻혀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김일룡 문화원장님이 발굴한 원항마을 앞 속칭 '언목곡' 혹은 '언목고개 아래에 있은 당포 만호의 선정비다. 당포성과 함께 당포만호진의 흔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인데 방치된 것이 안타깝다.

行萬戶吳公文周淸德善政碑 嘉慶四年己未四月日 唐浦鎭軍民立

行萬戶方公有德淸德善政碑 丙午七月日立

 

三千鎭權管碑(삼천진권관비)는 산양면 영운리 고운님 오시는 길 카페 길가에 두 기가 있고 한 기는 송씨 제실 쪽 구도로 변에 있다. 三千鎭삼천진은 통영시 산양면 영운리에 있었던 水軍鎭이다. 본래 사천현(구 삼천포시)에 있었으나 1619(광해군 11)에 이곳 미륵산 밑으로 옮기고 삼천포라 칭했다. 이곳이 삼천진이라는 유일한 유적이 삼천진 권관 비석이다. 두 개의 비석은 옛 길가에 있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겼으며 원래의 옛 길가에 있는 비석은 지금은 수풀이 우거져 쉽게 찾을 수 없다. 방치된 유적이 안타깝다.

1. 宣略將軍行權管金公光仁不忘碑

2. 宣略將軍行權管吳公光勳淸德善政碑

3. 禦侮將軍權管崔淸德善政碑

 

箇島(동개도)는 통영요트학교 뒤편의 동산이다. 왼쪽 뒤로 돌아가면 바위에 箇島(동개도)란 암각서가 새겨져 있다. 원래 厠島(측도)라고 했는데 영조 26(1750) 鄭纘述(정찬술)통제사가 건너편 植松亭(식송정) 3개의 과녁을 세우고 여기서 막하 장수들과 함께 활 10()을 쏜 후 이를 기념하여 친히 동개도라 쓰고 이를 바위에 새긴 이래 箇島(동개도)라 부르게 되었다.

 

점심을 먹은 후 용남면 장평리에 있는 결대로 공방으로 이동했다. 결대로 공방은 신미선 운영위원의 나전 공방이다.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 경력을 가진 능력 있는 젊은 작가다. 작가는 우리를 살뜰하게 맞아주었다. 체험은 나무젓가락과 브로치다. 각자 선택하여 나전을 붙이는 작업이다. 대부분 젓가락을 선택하여 걷기 행사 시 오늘 만든 젓가락을 가져오라고 당부했다. 마음대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세상에 둘도 없는 나만의 젓가락을 만드는 것이다. 눈이 침침하여 안 보인다고 불평을 한다. 시간이 지나니 대부분 집중을 하여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통영의 전통인 자개를 직접 붙여 나무젓가락을 만들었다. 침침한 눈으로 어렵게 붙인 나전이 완성되니 제법 괜찮아 보였다.

 

우리 고장의 비지정 문화재를 탐방하며 가장 시급한 문제는 조사 작업이다. 일단 자료조사가 되어야 어떻게 보존을 할 것이지 정해질 것이다. 일부는 안내판이 있으나 없는 것도 많았다. 나무에 가려져 있는 것도 있으며 쓰레기에 덮여있는 것도 있었다.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최소한 자료조사와 안내판이 필요하다. 비지정 문화재는 누군가의 관심으로 변방에서 빛날 날이 올 것이다. 나전 체험 또한 특별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