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146회 일요걷기(문화예술인 유택 탐방)

청풍헌 2021. 6. 16. 07:15

146회 일요 걷기(문화예술인 유택 탐방)

통영은 많은 문화예술인이 있다. 돌아가신 분도 있고 현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분도 있으며 아직 제대로 조명이 되지 못한 분도 있다. 통영에서 나고 자라 통영의 DNA를 가지고 근현대의 대표적 활동을 한 후 그의 육신이 고향땅에 묻힌 문화예술인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거장의 귀환윤이상

윤이상 그는 누구인가? 통영 사람들보다 세계에서 더 알아주는 현대 음악가이다. 음악 하나만의 열정으로 일본으로, 독일로 유학을 떠나 독창적인 창작으로 세계가 인정하는 음악가가 되었다. 하지만 용의 눈물이 되어 이국땅을 떠돌다 결국 귀환하셨다. 그의 유품과 작품 세계가 깃든 도천동 생가 근처의 기념관을 찾아보고 육신이 잠든 국제음악당 묘소 근처에서 참배했다.

 

나의 마누라, 내가 반 평생을 염원하던 나의 목표는 지금 급기야 그 문안에 들어선 것 같소. 그것은 세계적인지는 아직도 내 자신이 인식할 수가 없소. 그러나 작곡으로서 세계 최전선의 수준에서 인정을 받게 된 것은 사실이오. 나는 이 일을 더 계속 하겠소. 나에게 민족을 구원할 수 있는 또 다른 최선의 길이 나를 요구한다면 나는 작곡을 던지고 나의 몸을 던지고 그 길로 달릴지 모르오.”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1960125일 편지에서-

색채의 마술사전혁림

동네 이웃같이 친근하셨던 전혁림은 코발트블루로 대변되는 오방색을 자유자재로 표현한 가장 통영스런 화가이다. 통영항과 미륵산 등을 기하학적 무늬로 표현한 현대 추상화의 거장이다. 그의 그림이 청와대에 걸리고 각종 관공서에도 대문짝만 하게 걸려있다. 말년의 구십, 아직은 젊다전시회와 새 만다라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그는 풍화리 동부마을 안쪽 아들의 화실 곁에 계신다.

 

만다라는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만다라의 구성과 시각적인 요소를 차용하여

화가의 예술세계를 표현한 것입니다.

만다라의 보편적인 의미가 아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뜻에서 새 만다라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이영미술관에 1,000개와 모반에 365개를 완성했습니다.

통영국제음악당의 도자 만다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역작이 되었습니다.“

 

-그림으로 나눈 대화에서-

현대문학의 어머니박경리

젊은 날 통영이 품어주지 못하고 배척했던 아픈 시절이 있었다. 서울로, 원주로 사마천의 마음으로 작품 활동을 하여 토지의 작가로 우뚝 섰다. 토지의 배경인 하동에서, 오랫동안 거주했던 원주에서 그를 기리고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 원천에는 통영의 DNA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모천회귀의 본성이 있다. 그의 유택은 한산만이 건너 보이는 산양면 양지농장 곁에 계신다.

 

옛날의 그 집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어르렁 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옛날의 그 집, 마로니에북스, 2016-

가장 한국적인 작곡가정윤주

제도권에서 교육받지 않은 그는 치열한 노력으로 순수음악 및 영화음악의 독보적인 경지에 오른 분이다. 제도권에 교육받은 분들에 가려져 덜 조명되었던 작곡가로 그의 수상 이력은 화려하다. 상업음악이 더 알려졌지만 순수 음악을 조명하는 최근의 경향은 그의 아들 정대은 님의 노력이 있다. 그의 선영은 걸망개 숲이 보이는 언덕에 있다.

 

"정윤주는 가장 통영적인 작곡가이다. 가장 한국적인 작곡가이며, 가장 세계적인 작곡가라는 등식을 떠오르게 한다.

정윤주는 음악을 제도권에서 교육을 받지 아니한 유일한 한국이 낳은 대작곡가이다. 오히려 그는 토목을 전공한 토목기사였다.

그런 면에서 그는 천재적인 작곡가다.

백남준, 윤이상은 모두 외국에서 제도권 교육을 받았지만,

정윤주는 홀로 국내의 전통 음악가들처럼 음악을 혼과 마음과 몸으로 익혔다."

 

-평론가 이상만, 정윤주를 말하다, 통영소년 그 이야기작곡가 정윤주 탄생 100주년기념선집 volume04 2021년에서-

마술의 펜김용익

우리가 외국 단편 소설을 교과서에서 배울 때 김용익은 미국에서 영어로 소설을 써서 미국,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의 교과서에 실려 외국 아이들이 배우고 익혔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한국적이고 통영스런 토속적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영어로 섬세하게 표현한 그의 작품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개똥밭에 뒹굴던 고향 통영의 오촌 선영에 있다.

 

꽃신

그녀는 발이 부르틀까봐 흰 버선을 신었는데 학교로 가는 좁은 길에서 나는 가끔 그녀보다 뒤져가며 꽃신에 담긴 흰 버선발의 오목한 선과 배 모양으로 된 꽃신을 바라보았다.

그 선은 언제나 달콤한 낮잠을 자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

비가 온 다음날 물이 괸 길에서 나는 그녀를 업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녀는 청개구리처럼 등에 꼭 매달렸는데 나는 내 허리 양 켠에서 흔들리는 꽃신을 얼마나 사랑하였던가.

 

-김용익, 꽃신, 남해의 봄날, 2018-

코로나로 인하여 4명씩 차량으로 이동하고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답사를 마쳤다. 눈만 뜨면 보이는 바다와 파도소리, 동네 뒷산처럼 오르는 세병관과 충렬사는 과거 문화예술인들의 작품 속에 녹아들었고 지금의 우리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 너무 흔해서 잊고 지낸 것이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