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148회 일요 걷기(통영 성길) 통영 길 문화연대가 존재하는 한 통영의 길을 꾸준히 걸을 것이다.

청풍헌 2021. 10. 16. 23:26

148회 일요 걷기(통영성길) 통영 길 문화연대가 존재하는 한 통영의 길을 꾸준히 걸을 것이다.

통영성은 1678년 윤천뢰 제57대 통제사가 처음 쌓았다. 산성의 둘레는 7, 성가키가 707, 자로는 총 11,703, 높이 1장 반, 도보로는 총 2,346보이다. 성안에는 세 개의 연못과 아홉 개의 우물이 있으며 동서남북 사대문과 두 개의 암문이 있다.’

통영지에 기록된 통영성 부분이다. 통영사람들은 과연 몇 명이나 통영성의 존재를 알까? 희미하게 남아 있는 통영성길을 돌아보는 것도 통영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한 방법이다.

백신 접종율이 올라가 정부에서는 위드 코로나를 준비하고 우리도 걷기를 준비한다. 워밍업으로 통영성길을 준비하여 공지했다. 10명에서 15, 19명까지 신청했다. 오랜만에 가까운 길을 걷는다니 많은 회원이 신청했다.

통영성의 대문은 남문이다. 한양도성의 대문도 남문인 숭례문이다. 불과 100여 년 전의 사진에도 남아있는 남문이다. 누가 언제 왜 헐었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대문을 세우는 일이 통제영 사적 정비의 완결판인데 복원한다는 소식은 없다.

중앙시장을 가로질러 동암문에 왔다. 일명 시구문이라 했으며 약속장소로 거론되기도 했던 곳이다. 아직 시구문을 기억하는 회원도 있었다. 동포루에 오르면 동피랑 벽화가 변화된 모습으로 다가왔다. 동피랑 벽화라면 푸른통영21이 생각난다. 동포루에서는 강구안이 내려 보이고, 세병관, 북포루, 서포루가 손에 잡힐 듯하다.

동문 고개에 왔다. 동문 터에는 이곳이 동문이라는 아무런 표식도 없다. 하다못해 바닥에 동문터라는 동판이라도 새겼으면 한다. 동문에서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며 성벽을 가늠해본다. 동벽은 아파트 공사로 흔적 없이 사라졌다.

김용식·김용익 기념관을 지나면 북문 터가 나온다. 북문 터를 발굴했는데 뚜렷한 유구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남아 있는 유구는 배수구가 있다. 그곳도 동네 사람들의 창고가 되어 볼 수 없었다. 북벽은 약간의 흔적이 남아있다. 성벽은 가정집의 축대로 뒷담벼락으로 곳곳에 남아있었다.

산복도로를 건너면 가파른 북벽이다. 이곳부터는 토성으로 쌓은 곳이다. 짧은 거리지만 갑자기 무더워진 날씨 때문에 땀이 비 오듯 하였다. 꾸역꾸역 올라서 북포루에 도착했다. 북포루는 어느 날 태풍에 넘어가 비가 들이치는 기둥은 시멘트로 하여 다시 세웠다. 현판은 초정 김상옥 선생의 글씨다. 북포루에서의 조망은 멀리 한산도와 거제가 보이며 견내량 수로가 가까이 보인다. 북포루가 있는 산은 여황산으로 통영의 진산이다.

북포루에서 서포루로 향하는 내리막길은 대나무 숲을 지난다. 시원한 댓잎 소리가 나는 내리막길 끝에는 호주선교사 집터가 있다. 언덕길 사진 찍기 좋은 곳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서문 터는 서문고개라는 지명으로 전해진다. 박경리의 김 약국의 딸들에서 용란이 시집살이가 고단하여 친정으로 오가던 고갯길이다. 비교적 원형이 남아있는 곳이다. 서포루로 오르는 서벽은 가장 많이 남아있다.

서포루에 올랐다. 서포루의 풍광은 또 다른 맛이 있다. 푸른 잔디위의 그림 같은 서포루는 사진 찍기에 좋은 장소다. 이곳에서 통영 길 문화연대의 전·10주년을 토의했다. 누군가의 관심으로 함께 사는 통영이 되었으면 한다.

남벽도 제법 남아있다. 성벽은 좁은 골목길로 꽁꽁 숨어있었다. 남암문 터에 왔다. 남암문은 미륵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항상 닫아 놓았다고 한다.

南暗門無樓築城時幷建常時鎖鑰 鎖鑰:자물쇠

(남암문무루축성시병건상시쇄약)

한때의 반짝 관심으로 통영성이 조명되었다. 누군가의 꾸준한 관심이 매우 중요하다. 걸어서 통영을 만나는 통영 길 문화연대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통영 길 문화연대가 존재하는 한 한 통영의 길을 꾸준히 걸을 것이다.

2021.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