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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포의 역사를 찾아서2

청풍헌 2012. 2. 20. 23:01

이곳 당포는 남해안의 왜구를 방어하는 중요한 진지였다.

고려공민왕 23년  (1373)왜구들의 침입을 방비하기 위하여 최영장군이 많은 백성을 동원하여

성벽을 구축하고 대승을 이룬곳이다.

이순신 장군도 이곳 진지를 이용하여 당포대첩을 이룬 역사적인 곳이다.

또한 이곳은 오랬동안 어업을 하던 한적한 어촌마을로써 지금도 당제堂第의 원형이 살아있는 중요한 마을이다.

오늘 이곳 당포의 역사를 찾아본다.

장군봉 올라가는 초입에 있는 할배 할매벅수

 

당포 당산나무아래에 있는 돌벅수 한쌍

금줄에 돼지 뼈가 걸려있다.왜일까?

멀리 장군봉 정상에 보이는 삼덕부락 제당祭堂

장군봉은 멀리서 보면 갑옷과 투구를 쓴 장군의 모습과 흡사하여 장군봉이라 했다는 설과

임란시 탁연장군이 이 산에서 치열한 전투를 하여 전공을 세워 장군봉이라고 했다는 설이있다.

삼덕리 마을제당을 알리는 현판.

중요민속자료 제9호로 보호받고 있는 민속자료이다.

제당으로 오르는 길은 매우 험했다.

제당을 세우고 남은 기와들이다.

이 건축재료를 동네사람들이 이고 지고 이 험한 길을 올라 갔다고 한다.

이곳은 제를 지내는 곳이기 때문에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밸수가 없으며 바위도 함부로 깍을 수 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그 흔한 방책(핸드레일)도 없으며 오로지 자연상태의 길에 로프 한가닥에 의존하여 오르내리고 있다. 

위에서 본 당포 삼덕항의 모습

드디어 제당이 나무가지에 가려 희미하게 보인다.

제당은 두개의 건물이 있다.

천제당과 장군당이다.

산신을 모신 천제당엔 한쪽 문짝이 떨어져 있다.

작은제당 안에있는 산신화

큰 제당안에 있는 장군신과 목마

장군당 안에 있는 장군신의 초상이 낡아서 새로 제작 했는데 인상이 차이가 난다.

칼과 홀을 쥐고 있는 형상을 같으나 그 화풍이 쫌 ...

여기에 목마가 있는 이유는 옛날 고관이 말을타고 세포곡(산양읍 미수동경계)에 이르면 말의 다리가 부러지거나

말이 갑자기 주저앉아버려 도저히 산양면을 갈수가 없어 이곳 장군봉에다 목마와 동마를 만들어 제를 지내고 나니

아무 탈없이 지나 다녔다고 한다.

이곳에 있던 동마는 일설에 왜구들이 노략질을 하여 가지고 가다가 장구이 섬에서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이후 철마를 제작 보관 했는데 그도 누군가가 훔쳐가버려 지금은 목마만 있다.

원항마을  정경철(53)씨에 의하면 이곳에 제를 지내고 나면 말의 귀나 다리에 돈을 끼워놓아서

어릴때는 그 돈을 찾느라 제당을 오르내렸다고 한다.

지금은 작은 말에 한쪽 귀가 없다.

장군당은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

기둥이 비바람에 썩어 지붕의 무게에 의하여 기우뚱 하여 문이 재대로 닫히지 않는다.

시급히 보수를 해야 할 것이다.

문고리와 썩어서 기울고 있는 기둥모습.

이 제당은 원래는 한 건물 이었으나 1988년 복원하면서 천제단과 장군당을 지었다.

과거 문화재청의 자료

제당은 마을의 신앙의식을 행하는 곳이다. 인간의 일상생활과는 엄격하게 구분되는 성지의 일종으로 이곳에서 마을을 축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장군봉과 마을 입구에 넓게 분포하는 삼덕리부락제당은 신을 모셔놓고 위하는 집(당집)과 여러 개의 신이 있다고 믿고 섬기는 대상물(당산)로 구성된다.

장군당 안의 장군신도(將軍神圖)와 2개의 목마 중 큰 목마, 원항마을 입구의 돌장승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고

그밖에도 천제당과 당산나무 10여 그루, 나머지 돌장승 2쌍이 이곳의 동제당이다.
장군봉 정상에 위치한 장군당과 천제당은 각각 장군신과 천신을 모신 곳으로서 규모가 작고 조촐한 건물이다.

장군신화는 장군당 내부에 걸려있는 그림으로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장군의 단호함이 잘 표현되었다.

 이 앞에는 목마 한 쌍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큰 것은 원래의 철마를 도둑맞은 후 1940년경 새로 만들어진 것이고,

작은 것은 근처에 살던 일본인이 기증한 것이다.

장승은 대청·관유·원항마을 입구에 남녀 한 쌍으로 세워졌다.

 관유마을의 것만 나무로 만든 목장승이고 나머지는 돌로 만든 석장승이다.
이 마을의 동제는 설날 첫새벽에 시작되어 며칠에 걸쳐 진행되는데 마을 공동으로 제사비용을 추렴하고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한다.

 마을에서 선출된 대표가 제관이 되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후 제사를 주관한다.

 천제당에서 천제를 지내고 장군당에서 장군제와 용마제를 지낸 다음 산기슭 바위에서 잡신제를 지낸다.

이때 쯤 각 가정에서는 조상제를 지낸 후 장승 앞에서 벅수제를 지낸다.

그리고 원항마을 당산에서 당산제를 지내며 어로의 무사고를 기원하는 별신제를 지낸 후 주민 모두가 어우러지는 풍물놀이를 끝으로 이 의례는 막을 내린다. 마을 전체를 위한 제사이고 마을의 구성원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기능을 겸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주민 전체가 참여하는 동제가 잘 보존되어있고 다양한 신앙 대상물이 공존하고있어 주목되는 이곳은 민간신앙, 마을신앙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 지정 당시 「삼덕리부락제당」이던 것을 중요민속자료 명칭변경계획에 따라「삼덕리마을제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05. 2. 18)

    문화재청 자료

수막새의 문양이다.

삼덕리부락제당    민속재료제9호 라는 표석과 제당의 모습

 

마을의 제주는 손이 없고 깨끗한 사람을 선정하여 정월초 하룻날 동네 우물에서 목욕 제계하고

장군봉 정상에 있는 제당에 제사를 모시고 아침에 내려와서 동네에서 용왕제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스님이나 보살님에게 의뢰하여 제를 지낸다고 한다.

제수는 약 100만원 스님이나 보살에게 주는 제비는 약 150만원 정도 든다고 한다.

산양일주도로를 가다가 원항마을로 들어서서 약 7~80m 지나 언덕쪽에 이런 기념비가 있다.

서양인 최초 도래지 주앙 멘데스라는 포르투칼 인이다.

사학자 김태근 관동대 객원교수가 등록유초에서 발견하여 통영에서 발표하고 시에서 7000만원의예산으로  기념비를 세워

2006년도에 진의장 시장과 포르투칼 대사가 와서 성대히 제막식을 했다고 한다.

 

한국 땅을 밟은 최초의 서양인은 누구일까.

통영시는 14일 오후 산양읍 삼덕항에서 칼로스 프로타 주한 포르투갈 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우리 문헌에 확인된 최초의 서양인은 1604년 6월 통영에 표류한 포르투갈 상인 ‘주앙 멘데스’”라며 이를 기념하는 조형물을 세우고 제막식을 열었다.
시가 이같은 기념비를 세운 것은 지난 2004년 10월 통영에서 열린 ‘통영탄생 4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관동대 박태근 객원교수가 조선시대 국경수비 일지인 ‘등록유초’의 기록을 인용, 우리나라에 온 최초의 서양인은 선조 37년인 1604년 6월 15일 주앙 멘데스라는 주장에 따른 것이다.
박태근 객원교수는 “임진왜란 때인 1593년 스페인 세스뻬데스 신부가 일본군을 따라 조선 땅을 밟은 적이 있으나 당시 공식 문헌에는 전혀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면서 “우리 문헌에 확인된 최초의 서양인은 포르투갈 상인 주앙 멘데스”라고 강조했다.
등록유초에 따르면 1604년 6월 포르투갈 상인 주앙 멘데스가 일본 국적의 무장한 무역선을 타고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통영 산양읍 당포 해안에서 표류하다가 조선 수군과 해전을 벌인 후 나포됐다. 당시 나포된 이들은 중국인 16명, 일본인 32명, 흑인 1명 등으로 이후 한양으로 압송됐다.
한편 진해시는 지난 1993년 6월에 천주교 마산교구청과 함께 한국을 찾은 최초의 서양인은 1593년 12월 스페인 세스뻬데스 신부라며 이를 기념하는 조형물을 세웠다. 한국 천주교사에는 스페인 세스뻬데스 신부가 임진왜란 당시인 1593년 12월 27일 종군 신부로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를 따라 진해 웅천에 첫 발을 내디뎠다.
지금까지 최초의 서양인으로 네덜란드인 베르테브르가 1627년 경주 해안에 도착한 이후 조선에 귀화해 박연이 됐고, 1653년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서 표류하다가 상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칼로스 프로타 포르투갈 대사는 이날 “주앙 멘데스 이후 포르투갈과 한국은 400년이 넘는 긴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며 “이번 기념비 제막을 계기로 통영과 포르투갈 도시 중 한곳을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자매결연을 하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경남도민일보에서~

마을 당제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원항마을의 토박이 정경철씨(53)

 

2012.2.18 당포에서 백세청풍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