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여행 이야기

대마도 역사탐방1 전쟁 정복의 길

청풍헌 2012. 4. 1. 00:56

역사적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나라 대마도를 찾았다.

 

대마도는 본래 신라에 속한 땅이었으나 점차 일본인들이 거주 하면서 왜구의 땅으로 변했다.

인구가 적고 척박하여 기근이 일어 여말 선초에는 내란으로 교역이  어려워  이웃나라를 약탈하기에 이러렀다.

 

고려말에서 조선초기까지 3번의 대마도 정벌이 있었다.

첫번째가 고려우왕 1년 박의에게 전함 100척과 군사 1만을 주어 정벌을 했는데

왜선 300여척을 불태우고 고려인 백여명을 찾아왔다.

두번째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우정승 김사형을 보내 대마도를 정벌케 하고 귀환시 친히 흥인문 까지 나갔다고 한다.

세번째가 세종1년 이종무가 병선 227척과 1만7천명으로 견내량을 출발 했으나 기상 악화로 회항하여

한산도 추봉에서 다시 출정하여 왜선 129척을 격파하고 왜고 114명을 참수했다.

 

세번째 출정을 결심하며 쓴 정대마도교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있다.

'대마도는 본래 우리땅이다.그런데 감히 왜구가 개처럼 도둑질 하는 쥐처럼 훔치는 흉계를 품어서

경인년 부터 변경에서 방자하게 도둑질을 시작 하였다.

지금 왜구가 제 마음대로 탐욕과 해독을 부리어 백성을 살육하며 스스로 하늘의 재앙을 부르는구나.

그래도 참고서 정벌 하지 않는다면 나라에 사람이 있다고 하겠는가? -정대마도교서 중에서-  

이즈하라 항구에 있는 표민옥적이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표류한 어민이나 포로등을 수용한 곳이다.

에보시타케 전망대에서 본 아소만

팔번궁 신사의 두번째 도리이 앞이다.

도리이는 우리나라의 솟대와 같은 이치로서 하늘과 연결되는 통로역할을 하는 구조물이다.

어느분의 블로그에서 대마도는 한국땅이라는 증거를 찾았다며 올린사진을 확인하였다.

두번째 도리이 뒷면에 있는 태수太守라는 관직 명칭이다.

1436년 대마도의 식량사정이 어려워지자 도주인 소우 사다모리는 대마도를 아예 조선의 한 고을로 편입시켜 달라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이에 조선은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시키고 도주를 태수로 봉했다.

그래서 18세기 초 조선통신사를 따라 일본을 방문한 신유한의 '해유록(海游錄)'은 당당하게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 섬은 조선의 한 고을에 지나지 않는다.

태수가 조선 왕실로부터 도장을 받았고 조정의 녹을 먹으며 크고 작은 일에 명을 청해 받으니

우리나라에 대해 번신(藩臣)의 의리가 있다.

금석성의 복원된 성문이다.

대마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문이라고 한다. 

나카무라 지구의 무가저택의  담벼락이다.

무로마치 시대 소 씨가 대마도주가 되면서 이곳 이즈하라로 옮겨오며 세운 성곽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간분시대(1660)무가저택의 일부가 남아있다.

소 공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도고 헤이하치로가 러시아 병사를 위문하는 부조를 세워놓고 평화의 공원이라 한다.

멀리 보이는 탑이 러일전쟁 승전탑이다.

러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만제키바시 운하

 

러일전쟁은 일본이 청일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조선을 정복하기 위한 다툼에서 러시아와 전쟁을 일으켰으며

1905년 뤼순항을 점령하자 러시아는 발틱함대를 파견하여 대세를 뒤집고자 했다.

러시아가 발틱함대를 파견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일본은 대마도에서 만제키바시 운하를 파서

이곳에다 어뢰정을 숨기고 멀리 희망봉을 돌아오는 지친 발틱 함대를 丁자 전법으로 격파하고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대마도는 본래 하나의 섬이며 남북이 약 82km인데 1900년 일본 해군이 러일전쟁에 대비

함대의 통로를 사용하기 위하여 이곳에 운하를 뚫어 전쟁을 대비했다.

지금은 다리가 놓여 상 하대마를 연결하고 있다.

일본군 포대 진지의 모습이다.

전쟁을 대비한 포대가 설치되어있다.

한국의 가덕도 외양포 마을에 가면 이와 유사한 포대가 지금도 존재한다.

포대를 탐방중인 동료 이진우님.

 

대마도는 우리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 역사서에 자주 등장 했으며 현존하는 실록에 엄연히 존재한다.

가까운 대마도에 침략과 전쟁과 정복의 역사를 찾아 보았다.

패키지 여행이라 가보지 못한 곳도 있다.

이종무 장군이 상륙한 곳과 여몽 연합군이 대마도를 점령한곳 등이다.

 

여행을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2012.3.24 대마도에서 백세청풍 김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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