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183회 토요걷기(비지정문화재1)

청풍헌 2023. 11. 18. 23:34

제183회 토요 걷기(비지정문화재 1)
비지정문화재는 2021년 두류문화재연구소와 함께 조사를 했던 적이 있다. 제법 시간이 흘러 사전 답사가 필요했다. 일단 원문을 보기 위하여 새통영병원 앞 바닷가로 갈 수 있는지 확인하니 개인 사유지라 막아 놓았다. 하는 수 없이 차량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대략적인 동선을 확인했다.
통영길문화연대는 걸어서 통영을 만나는 비영리시민단체다. 시작점은 통영에서 유일하게 원형이 남아있는 통영별로의 흔적을 따라갈 것이다. 우리는 복된 교회 주차장에서 만나 옛길을 걸었다. 옛길 대부분 개발되면서 훼손되고 사라졌는데 복된 교회 주차장에서 새통영병원 뒤편까지 통영별로 옛길이 남아 있다. 지적도를 확인하면 옛길이 표시되어 있다.

아왜나무 숲 속에 고사인온양방공경신효행기실비가 숨어있다. 방경신은 효자로서 어머니가 병이 들어 허벅지 살을 발라 작은 접시에 드리니 점차 소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음은 열부증동몽교관조봉대부이회경처영인파주염씨지려이다. 파주염씨는 남편을 따라 5일 만에 죽었다. 그의 나이는 23살이었다. 효는 부모에게, 열부는 남편에게 정성을 다하고 따라 죽던지 아픈 남편을 본인의 살이나 피를 먹여 살리면 열행 정려를 받는다. 허벅지 살을 구워 먹이니 살아났다는 기록과 심지어 허벅지살을 잘라 말려서 가루로 내어 미음에 타 먹이니 살아났다는 기록도 보였다. 열부가 되려면 허벅지 살이 많아야 되겠다는 말을 했다. 효열부증동몽교관조봉대부합천이공맹린처공인김해김씨지려는 대단한 세력의 가문이었는지 정려문이 화려했다. “효(孝)와 열(烈)은 하나의 이치이므로 효는 곧 열이고 열은 곧 효가 되니 어찌 둘로 갈라지겠는가”라고 쓰여있다. 효자통정대부겸중추부사염덕승지려는 파주염씨로 3대에 걸쳐 7명의 효자가 난 효자 집안이라 통영에서는 명문 집안이다. 전의이 씨 통제사비 출토지는 배추밭으로 변하여 추후 발굴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송병문가의 비석 군을 보려고 했으나 도로공사 중이라 갓길에 정차가 불가하였다. 송병문가는 정량동 일대의 많은 토지를 소유한 부자로 구통영상고를 세웠으며 운동장과 체육관 부지를 희사한 거부다. 거제, 고성, 통영의 소작인들이 은혜를 못 잊어 작은 비석을 세웠다.

말구리 비석 군은 벌초를 예쁘게 해놓아 보기 좋았다. 이곳에는 15기의 비석이 전시되어 있는데 효행기실비가 4기, 효열기실비가 2기, 열행기실비가 6기, 시혜비, 사모비, 정려비가 각각 1기씩이다. 효행기실비는 부모에게 효도를 다한 사람에게 세운 비석이며 효열비는 부모와 남편에게 도리를 다한 여인을, 열행기실비는 남편에게 도리를 다한 여인에게, 그 외 시혜비, 사모비는 잊지 못하여 기억하고자 하는 뜻에서 세운 비석이다. 정려비는 나라에서 정려를 내린 비(碑)다.
우리는 여기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원문공원에 있는 해병대 상륙작전 기념관으로 갔다.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1592)으로 조선을 구했다면 6.25 전쟁(1950) 시 김성은 장군은 최초로 통영상륙작전을 성공하여 대한민국을 구한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다. 특히 해병대의 최초 상륙작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해병대에서 많은 방문객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원문성으로 갔다. 지금은 흔적도 없는 원문성을 가늠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횡단보도 건너에는 원문슈퍼라는 간판이 있어 이곳이 원문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말에 원문성을 발굴하여 보존대책으로 2m로 복토하여 지금은 흔적을 알 수 없고 풀과 칡넝쿨이 엉켜있었다. 그래도 저기 어디쯤이라 가늠을 했다.
다시 차를 타고 장대골로 갔다. 장대는 화장장이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장대는 장수가 서서 사열을 받고 훈련을 하던 장소라 했다. 그곳에는 열무정이라는 사정이 있었던 장소이다. 열무정은 무과 시험인 도시(都試)를 치르던 곳으로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2년 전 열무정 초석과 와편을 발견하여 이곳이 열무정 터임을 밝혔다. 열무정 터로 올라가 와편을 수습하고 모두 서서 사수(射手)가 되어 활시위를 당겼다. 이렇게 중요한 유적이 복원되고 활용되었으면 한다.
거제해미당은 거제로 가는 길목에 있다. 그곳에는 굿당이 있는데 굿당을 지으면서 비석을 피하여 들여 쌓기를 하여 집을 지었다. 밖에서는 비석을 볼 수 있었다. 우측이 가선대부 삼도통제사 이공응서거사비이며, 절충장군 삼도통제우후 이공경달청덕애민 영세불망비가 있다. 나머지 한 기는 통정대부 육군정위중대장 이공규환 영세불망비다.

굿당의 좌측에는 김철호 애국지사의 무덤이 있다. 통영에서 유명한 읍장인 김태호의 두 아들이 김용식과 김용익이다. 김태호의 동생 김철호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르고 해방 후 반민특위에서 활동하다가 6.25 때 보도연맹으로 몰려 죽었다. 길도 없는 이곳에 독립지사가 있다는 것에 많은 회원들이 놀라워했다. 외롭지 않게 우리라도 가끔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찹쌀다방이 있는 충무관광호텔 입구로 갔다. 찹쌀다방 뒤편의 큰 바위에는 통제사 이응서비가 비스듬한 바위에 세겨져 있다. 비바람에 바래지 않도록 배려하여 각자를 했다, 더군다나 고마운 것은 찹쌀다방 주인장의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집 뒤편 바위의 석각에 접근이 용이하도록 사다리를 세우고 문을 열어 놓았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통영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는 차량별로 점심을 해결하도록 하고 일정을 마쳤다. 역사의 도시 통영에서 지정문화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있는 비지정문화재도 엄연한 우리의 소중한 유산이다. 그 유산을 기리고 찾아보고 그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남은 후손들의 몫이다. 그러려고 우리가 있는 것이다. 걸어서 만나는 통영길문화연대의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