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21회 토요걷기(통제사길1) "쉬이~ 물렀거라! 통제사 행차시다~"

청풍헌 2013. 10. 30. 23:06

 

임금님에게 교지를 받고 짐을 꾸렸다.

군관2인,영리1인,반당1인,노자1명,나장1쌍,군뢰1쌍,기수2쌍,취수6명,짐싣는 말 다수,역의 인부6명,

유서,절월,교서 각 말 1필씩을 좌우로 거느리고 숭례문을 나서 16일 만에 고성땅 객사에 도착했다.

몇일 전 부터  통제사가 온다는 연락을 받고 각 마을 사람들은 동원하여 길을 정비하고 풀을 베어 황토를 깔아 놓았다.

통제사가 부임하는 길은 명조 팔사품인 붉은 영기와 보검과 곡나팔을 불며 호두령패를 앞세운 여러 장교들이 군복을 갖추어 말을 타고 내려온다.

군졸들이 연 잇기를 수십리 하고 관악기의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각종 깃발이 나부끼어 장관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남녀노소 구경을 나왔으며 이것은 참으로 대장부가 당대에 득의 할 만한 이치다.

앞에는 묘령의 기녀 8인이 성대하게 장식을 하고 말을 타고 인도를 했다.

 

 

▲통제사 납시오!(2012 한산대첩)

▲세병관 뜰에서 눌함! 와~~~

 

 

삼도대도독문에 이르자 성문을 지키는 대장이 영접을 한다.

삼도대원수원문이라는 이층 문루인 공진루에 올라 전임 통제사와  인수를 교환하고 찻잔을 놓고 환담을 하였다.

과연 영중에 영이로다.이곳 원문만 틀어 막으면 적들이 들어올 수 없는 천혜의 요새중 요새로구나.

원문만이 그림처럼 아름답고 기운이 따뜻하여 근무 하기에는 괜찮을 것 같다.

원문 안에는 길이가 한길이나 되는 오횡묵비가 서있다.기근과 전염병이 창궐 했을때 별향사로 와서 군민을 구휼한 공로로 공덕비를 세웠다.

다담이 파하고 팔인교를 타고 길을 나섰다.

▲프리미엄 골드 채널을 가진 교장쌤의 명강의(하얀공주)

▲통정대부행함안군수전별향사오공횡묵사적비

▲열강 중인 교장샘

▲원문(이곳으로 들어서면 조선시대로 가는곳)

 

원문 고개를 넘어가면 좁은 길이 나온다.길가에는 각종 효열비와 효자비가 즐비하게 서있다.

이곳 통영은 효자와 효부가 많이 나오는곳인지 아니면 오랜 세월동안 누적 되었는지 많은 비석이 서 있다.

오른쪽은 절벽 낭떠러지고 아래에는 물이 찰랑 거린다.

갯벌에는 조개를 잡는 아낙들이 즐비해 있고 꼬마들은 뻘밭에서 고동 잡이에 눈이 팔려있다

▲비석곡에 대하여...

 

 

고성 해미당을 오르니 당포만호와, 옥포만호, 삼천진 권관, 소비포 권관이 마중을 나왔다.

의장기치를 앞세운 통제사가 도착하면 각종 악기로 축하 음악을 연주하며 온 성안과 성밖의 사람들의 귀와 눈이 쏠렸다.

고급장교들의 영접을 받고 고개를 내려서면 비석골이 나온다.이곳에는 전임 통제사들의 공덕비가 즐비하게 서 있다.

과연 천혜의 관방인 통제영이 훌륭한 전임 통제사들이 많이 다녀간 흔적이 있다.비석곡에서 목을 축이고 조금 지나면

면량교가 나온다.이곳이 두룡포이다.

 

 

▲고성 해미당에서

▲이곳에서 접대를 했다

▲사라지는 옛길들

▲통영상고터에 아파트가...

 

 

조금더 발걸음을 옮기니 큰 바위에 세겨진 이응서 통제사의 마애비가 나온다.

비장에게 물어보니 이응서 통제사는 매우 선정을 베푼 통제사로 근세 통제사중 가장 열심히 사심없이 근무를 했으며

갈때는 채찍 하나만 들고 갔다고 한다.

그래서 군민들이 그 공로를 생각하여 이 바위에다 공적을 새겼다고 한다.

나도 과연 이곳을 떠날때 존경받는 통제사가 될 수 있을까? 존경받는 통제사가 되고 싶다고 다짐해 본다.

 

 

다시 세걸음을 옮기니 덤바우에 암각비가 보인다.

저것은 무었인가 하고 물어보니 김영 통제사의 마애비라고 한다.

김영 통제사는 동피랑 주변의 네 마을에 큰 불이나 이 바위에서 진두지휘를 하여 불을 끄고

집을 잃은 백성들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날것인가 고민을 하다가

남망산의 소나무를 베어 집을 짓도록 허락 하여 집이 없는 백성들을 구휼 했었다.

그런데 그곳은 금송구역이라 이후 이 일로 인하여 파직 당했다.

통제사가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이 지극한데 국법을 어겼다 하여 파직을 당했으므로

 떠나간 김영 통제사의 백성을 위한 마음을 그리워 하며 이 덤바우에 청덕비를 세웠다고 한다.

이응서 통제사와 김영 통제사의 마애비를 보니 정말 잘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찹쌀다방 뒤의 큰 바위

▲삼도통제사이공응서불망비

▲찹쌀다방...

▲김영 통제사 암각비가 있었다는 덤바우가  식당 이름으로 남은 곳

 

 

통영성밖의 길을 따라 남문쪽으로 이동하니 바닷가 쪽은  담배가게 쌀가게 어전이 있으며

물건을 팔고 흥정하는 사람들로  들끊었다.

내가 지나가니 새 통제사가 온다고 온통 환영을 하였다.

병선마당의 거북선과 판옥선에는 수군들이 도열하여 각종 기치를 나부끼고 있었다.

시장 상인들과 군졸들이 모두 큰 함성으로 환영의 소리를 지르니 온 영이 떠나갈 듯하다.

통제사를 환영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남문으로 향하니 중군이 진을 치고 있어 개문 절차를 다 할 수 없어 집사의 명령을 받들어 중군에서 네번의 대포를 쏜 뒤에

비로소 통사 앞에서 한번의 응포를 받아 길을 비키고 전진 하였다.

병선마당에 6척의 전선이 있는데 1척은 중군의 배이고 5척은 각 진영의 배이다.

그에 따르는 작은 전선들이 수십척 있으며 모든 병사들이 뱃전에 도열하여 깃발을 나부끼고

세번의 방포와 함께 북소리 고함소리가 함께 어루러졌다.

 

 

남문 밖에는 흰 장막을 쳐 그곳으로 들어가 좌장을 하니

한발의 포성이 울리고  각 배에서 일시에 응답 발포를 하여 병선마당이  진동 하였다.

산성 중군의 병사들이  진을 펼쳐 기치가 나부끼고 창검이 빛을 발하여 자뭇 위엄하다.

또한 북소리와 피리소리가 천지를 진동 하였다.

진에서 한쌍의 영기가 남문으로 달려가니 방포 한방이  울리고  산성 중군 및 각 진영의  승장들이

좌우로 말을 타고 나와 한바퀴 돌고 내려 배알하고 군례를 하였다.

남문밖의 인원이 각 군관 및 장수 군졸 각 고을 수령들과 백성들을 합하여  만명은 족히 되었다.

▲군례를 받던곳

▲망일루 앞에서

▲열공중인 학생들

 

남문으로 들어서니 성벽위에 도열한 산성 중군들이 기치와 창검 및 북과 나팔을 불며 환영 하였다.

이어 세병관으로 들어가 교지와 절월을 전폐단에 올리고 무사히 도착 했음을 알리는 망배를 하였다.

세병관 안에는 우후와 각 진영의 장군이 도열하고 아래 뜰에는 고을의 수령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서 도열 했다.

망배가 끝나면 각 장군들의 인사가 있으며 고을 수령들도 인사를 했다.

인사가 끝나면 도임상을 받았는데 풍악이 빠지면 섭섭하지, 산해진미의 안주에 맛있는 술과 기생들이 들어와 한껏 흥을 돗구어 술맛이 났다.

풍악쟁이의 피리소리는 오곡간장을 녹여내는 소리를 내었고 사뿐히 추는 춤사위는 한마리의 학이 나풀거리는듯 하였다.

과연 남해 관방 수군본부인 이곳  통제영이 멋진 곳임을 알았다.

이곳까지 오는데 꼬박 17일이 걸렸다.

▲통제사가 되어 중앙문으로 들어간다.

▲군례를 받고 눌함! 와~~~를 외친다.

 

 

시를 한 수 짓다.

 

그대는 이순신 이라는 명장을 아는가

북쪽은 오랑케가 넘실 거리고

남쪽의 변방이 가장 중요 하도다.

임진년 왜구의 침입으로 초토화된 국토를 생각 했는가

고래로 남방의 장수는 명장 이었다.

 

 

원문에 들어서니 따뜻한 남방의 기운으로

방비를 튼튼히 하고 고을 백성을 잘다스려

왜놈들이 얼씬도 못하게 할것이다.

이공응서 통사와 김공영 통사에 버금가는 훌륭한 통사가 되고자 

 

 

남문에 들어서니 만하정 달빛은 예나 지금이나 밝게 빛나고

세병관 들에 내려앉은 달빛은 처량도 하다

세병관 마루에서 나의 책무를  생각하니 어깨가 무거워 진다.

 

 

그래도 좌우에 훌륭한 막하가 즐비하여

나의 임무를 잘 할 수 있겠구나.

도와주는 이 많이 있어 크게 약속 하노니

남방이 편안하고 나라가 안정되리라

 

 함안군수 오횡묵시에 차운하여

 

 2013.10.26 일일 통제사 김용재 쓰다.

(이글은 함안 총쇄록(함안군수 오횡묵)과 조선후기의 통영(김현구 박사) 및

거영일기(통제사 이운룡) 통영일기(통제사 이석관)를 기초로 통제사의 도임을 임의로 구성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