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통영 해안선 탐방

죽림-덕포 해안길3 이고 지고 통영장을 오르내리던 손덕재 이야기

청풍헌 2013. 10. 8. 21:19

덕포교를 휘돌아 해안도로를 따라 걸었다.좌측 산먼당을 깍아 석산을 개발 하는지 아니면 예전에 호텔을 짓는다는 현판을 본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없다.단순히 석산을 개발하는지...해안도로 아래 바닷가에 상수관이 두줄로 갔다.아마도 상수도관인 것 같다.도로공사시 미리 관로를 묻었으면 이런 불상사가 나지 않았을 것인데 일전에 한산대첩길 답사시 논아랫개 도로 공사시 상수관을 미리 묻어둔 지혜를 발휘한 시청 관광과 시설계장이신 윤창환 님의 말씀이 생각난다.공무원들도 내 일처럼 앞을 내다보고 일을 처리하고 혜안을 가져야 한다.파도에 깍이고 햇볕에 노출과 바람에 풍화작용을 하는 수도관이 안타까울 뿐.그러나 어쩌라.인간의 젓줄인 물인데.

▲손덕재로 넘어가기전에 쉬어가던 곳(샘이 있음)

▲구허역

▲손덕마을 해안도로

▲상수도 관으로 추정되는 파이프

 ▲바닷가로 노출되있는 파이프

 

손덕마을로 들어섰다.마을의 유래가 적힌 큰 입석이 있어 자세히 보았다.마을 사람들이 통영장으로 다니는 길이 노산재(손덕재)를 넘어 힘들게 다님으로 해안길을 내고자 스스로 마을 사람들이 부역을 해서 리어카가 갈 수 있을 정도의 길을 내고 확장 포장을 한  길이 해안도로이다.마을 들머리에 작은 사당처럼 생긴집이 있는데 이곳이 삼은정 유허비다.노산과 우동 손덕에 사는 세 은사가 서로 교류하고 우애를 가짐으로 그 뜻을 기리고자 이곳에다 제각을 짓고 동네 유림들이 기렸다고 한다.동네 어른들에게 물어보니 지금은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안에는 무었이 있는지 물어보니 약방의 각종 자료들이 있지 않나 추측했다.손덕마을은 옛부터 어장이 풍부하여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어 노산의 대부분 토지들이(80%)이곳 손덕사람들의 토지라고 한다.농사를 지어 소출이 나면 배를 이용하여 싣고 왔다고 한다.옛길이 너무 힘들어 바닷가로 길을 내면서 지게와 정 지렛대를 이용하여 순전히 손으로 인력으로 바위를 깨 겨우 리어카 다닐 정도의 길을 내었다고 한다.창포,구집 사림들도 이 옛길을 지게 지고 이고 들고 통영장을 다녔다고 했다.지금은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으니 좋은 세상이라고...소나무 언덕위에 제실과 산소는 김해김씨 산소라고 한다.언덕의 고목인 소나무 아래는 동네 노인들의 쉼터를 만들어서 땀을 식히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의자를 잘 만들어 놓았다.동네 아주머니들이 마늘을 심다가 그늘에 와서 쉬고있어 담소했다.이곳은 물이 귀하여 우물을 파면 짠물이 나 밥을 해도 간간 했으며 빨래의 때가 가시질 않아 애를 먹었다고 한다.그 아주머니는 영운리에서 이곳으로 시집 왔으며 할배가 술을 많이 먹어 애가 탄다고 한다.하루에 댓병 한병을 마신다고 한다.길 아래쪽의 소나무와 팽나무가 보이는곳이 당산나무인데 예전에는 세끼줄을 걸고 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폐기되어 당산제도 없다고 했다.

▲마을 입구

 

▲삼은정

▲삼은거사 세분의 이름이 있다.(우동마을 입구에 삼소장 비가 있음)

 

 

▲마을 가운데 있는 횟집

▲옛길로 올라간다.

 

 

▲옛길에서 바라본 손덕마을 전경

▲길손들의 목을 축이던 샘물

▲마늘을 심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길가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마을의 쉼터

▲마을 쉼터 옆에 있는 김해김씨 제실

▲선산

▲비석

▲고갯마루 바닷가에 있는 공장(예전 굴 공장이었다고 함)

▲당산나무(지금은 당산제를 안함)

 

손덕,창포,구집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갯마루도 알고 옛길을 걸어본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2013.9. 백세청풍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