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25회 토요걷기(통제사길2) 통제사길 옛길을 걸어면서 만난 유적들

청풍헌 2014. 1. 1. 15:12

 

통제사길2를 걸으며 김일룡 소장님께서 지적하신 두가지가 해결 되었다.

첫째는 한퇴재에서 원동으로 가는 옛길의 복원이고

둘째는 원동마을 고인돌 옆에 있던 전봇대 이설이다.

유적지 주변에 아무 관심 없이 방치된 전봇대가 지석묘(고인돌)를 볼때마다 거슬린다고 하셨다.

충분히 옮길 수 있는 문제인데...

 

어느날 도산면장님께서 통제사길 행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맛있는 간식을 해오셨다.

그 때 두가지를 애기 했다고 한다.

하나는 한퇴재에서 광덕사로 내려가는 옛길의 복원이다.

옛 통제사가 힘들게 올라왔던 옛길을 복원 했으면 한다라는 말씀과

두번째 고인돌 옆의 전봇대 이설에 대한 말씀이 있었다.

 

전봇대 이설은 2013.12.14 통제사길3 토요걷기 때 확인 했었다.

12월 28일 네째주 토요걷기는 통제사길2인데 사전 확인차 25일 답사를 했다.

그런데 옛길이 복원되어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광덕사 뒷쪽으로 돌아 돌아 까꾸막을 올라가 임도에 올라서 정자에 가니 팻말이 붙어 있다.

 

지역의 역사를 복원하고 관심을 가진 면장님에게 감사한 일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시민들에게 큰 혜택이 돌아간다.

길을 걷는 우리들은 두고두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연안김씨 시조 김섬한 제단

 

통제사길을 걸으며 왜 이곳에 오는지 이유를 알아야 한다.

연안김씨 시조 제단이 있는 선산에 오는 이유는 통영의 세병관 창건에 관한 설화가 있다 .

세병관 창건 설화는 1626년 김여엽. 여욱 형제가 남긴 "남행기문"에 연안김씨 시조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한양에 살던 두 형제는 고려 국자감사문박사를 지낸 시조인 김섬한의 묘가 세병관을 지으며 파헤쳐 졌다는

이야기을 듣고 급히 통영을 내려와 알아본 내역을 대략 기술했다.

 

급히 통영땅으로 내려와 수소문 하니 과연 시조의 묘를 옮기고 세병관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통제사에게 큰 변고가 생겨 통제사들이 세병관에 들어 가는것을 꺼렸다.

다음날 고성현령 이제언이 제수를 준비해와 선영에 제사를 지내고 이수일 통제사를 찾으니 만나주지 않았다.

이때 세병관을 지을때 도훈도를 지낸 박두갑을 만나 자초지종을 들었다.

 

통제사 이경준이 갑진년(1604)통제영을 옮길 때 묘를 파 헤치니 금은보화가 많이 나와 잘 수습하여 이장하라 했는데 풀섶에 방치했다.

이후 꿈에 나타나 '네이놈! 앞전에는 나의 집을 허물더니 무슨 원한이 있어 나의 백골마저 박대 하느냐'

이에 자초지종을 알아보고 북산에 이장하라고 명하였다.만호 추대기로 하여금 축문을 지어 제사 지내게 했다.

다시 이수일 통제사에게 가서 따지니 오래된 일이라 잘 모른다고 딴전을 피웠다.

이러한 사실을 보고 들은대로  기록한다 라고 "남행기문"에 기록되어있다.

 

마을 입구에 큰 신도비가 있는데 이는 연안김씨 시조인 김섬한의 4대손 김우의 신도비다.

1961년 5월 16일 연암김씨 대종회에서  이곳에 시조의 제단을 세우고 음력 10월 13일 시제를 모시다가

경기도 양평으로 옮겨 시제를 모신다.

올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영하3도) 몸을 풀고 걸음을 옮기기 위하여 스트레칭을 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12명이 토요걷기에 참석을 했다. 

▲이렇던 고인돌이(양 옆으로 전봇대가 두개나...) 

▲이렇게 변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시조 김섬한의 4대손 김우 신도비 

▲영하의 날씨에 저수지가 꽁꽁... 

▲옛길가에 있는 영암김씨 효행 기실비 

▲각종 비석이 옛길임을 말해준다. 

▲조수보호구역도 있다. 

▲광덕사 초입에서 

▲따끈따끈한 팻말 

▲꾸역꾸역 오른다 

▲마치 하늘을 기어 오르는듯 하다

 

얼마나 이 고개가 가팔랐으면  함안 총쇄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889년 5월 24일 다시 길에 올라 1리를 가서 마치(馬峙)<고성읍성 동문을 나서면 처음 만나는 고개> 고개를 넘었다.

10리를 더 가니 도선동(道善洞)이었고, 3리를 더가니 주막 세 집이 있었고, 그 곁에 염씨(廉氏)의 충절각(忠節閣)이 있었다.

2리를 더 가자 큰 고개가 있었는데, 이름하여 한치령(寒峙嶺)이라고 했다.

돌 오솔길이 꼬불꼬불 했고 고개가 아주 가팔라 마치 하늘에 오르는 듯하기에 가마에서 내려 걸어서 갔다.

(함안총쇄록:저자 오횡묵은 1889년 4월 함안군수에 부임하여 기록한 일기) 

▲이랬던 길이(2013.3.15) 

▲이렇게 변했다(2013.12.28) 

▲고갯마루 정자에서 목을 축이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우리는 내려간다. 

▲야호! 신났다. 

▲구현겸 통제사 마애비 

▲몰자비(글자를 누군가 파서 홰손했음) 

▲용남면 법원앞 허장완 묘비 뒷면 홰손된 모습

 

 

구현겸 통제사는 1774년 7월부터 1775년 4월까지 약 10개월간 재임한 통제사이며 그의 부친(구선행)도 통제사였다.

구현겸 통제사의 마애비 옆에 글자가 홰손된 마애비가 있어 여러 이야기가 있다.

몰자비 또는 구신비라고도 하며 억울한 누명을 쓴 통제사가 죽임을 당하여 상여가 이곳에서 하룻밤은 지새는데

꿈속에서 나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었다.나의 공적과 만고의  충신이라 세기면 상여가 움직일 것이다 하여 깨어보니

상여가 움직이지 않아 마애비를 세웠다.이후 모함을 한 사람들이 두려워 글자를 쪼아 지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통영의 삼일만세운동 삼열사의 비석 뒷면에도 정으로 쪼아서 글자를 없앴다.

이는 일제 강점기에 일인들이 했으리라 짐작된다.

이와 같은 이치라 생각된다.

 

▲한퇴골  관덕 저수지 

▲임도에 왠 사방공사를?(못보던 석축이...) 

▲주점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시금치는 뽀빠이 생각이 나고 

▲암행어사 조석여 휼민비

▲광도면장 공근수 공덕비 

▲무형문화재 염장(대발) 조대용 선생의 작업장

 

통제사길2를 걸으며 많은 유적을 보았다.

8km정도의 길가에는 세병관 창건에 관한 연안김씨 제단부터 기록에도 존재하는 하늘을 오르는 한퇴재가 있으며

통제사 마애비와 암행어사 조석여 휼민비,조경 통제사 매치비와 근세에 세워진 광도면장 공근수 공덕비

구허역의 기록과 염장 장인 조대용 선생의 작업장도 있다.

어느 도시 어디에도 없는 통영만의 통제사길은 가장 통영스런 길 중의 하나다.

 

이야기가 있는  아름다운 옛길인  통제사길2를 걸으며 의미있고 행복한 하루가 되었다.

 

2013.12.28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