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통영섬 이야기

59년전 한국 제2의 밀감센타를 꿈꾸던 섬 납도 탐방기

청풍헌 2014. 2. 19. 18:29

 

▲겨울에 핀다는 동백꽃이 활짝 피었다.통영의 무인도 납도에~~~

▲선상 윈도 부러쉬는 차량에 있는 윈도 부러쉬와는 다르다.

   모터가 달려 회전을 하여 물방을 털어낸다.

▲납도에 상륙!

▲섬으로의 회원들이 납도를 오르고 있다.

▲섬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들...

▲숲속 길

▲납도 감귤 선별장

▲납도교회

▲땅에서 또 한번 피어난 동백

▲원시림이 우거진 상태

▲나무 전봇대도 있다.

▲학교 가는길

▲대나무 밭

▲학교 입구의 동백나무

▲원량국민학교 납도분교 교목과 교화

▲학교1

▲학교2

▲납도국민학교 교화인 동백이 함초롬히 피었다.

▲교실 앞에 제멋대로 자린 교화인 팔손이 나무

▲동백

▲대한전선 디.제로 텔레비젼

▲폐가

▲납도의 자연림 동백나무 

납도는 1955년도 우장춘 박사의 답사로 밀감재배 적지로 판정받아 부농을 꿈꾸며 밀감나무를 심었다.

당시의 밀감은 제주에서만 나는 과일로 남해안의 따뜻한 기후로 인하여 적지를 찾던중 납도가 발견 되었다.

10년후 첫 수확의 기쁨은 당시(1966년) 동아일보에 보도될 만큼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후 남해안의 여러 지역에 밀감이 심어져 대학나무가 되기를 꿈꿨다.

욕지, 산양면, 거제 남부면등 따뜻한 지역에는 많은 밀감 나무가 심어져 수확의 꿈에 부풀었지만

이상 한파로 대부분의 나무가 동사했다.

지금도 그때의 밀감 나무가 일부 남아있는 곳이 있다.

 

작년 '섬으로'님과의 인연으로 다시 찾은 통영섬 탐방에 합류하게 되었다.

중앙시장 횟집에서 각 지역에서 모인 섬으로 회원들과 강제윤 시인, 김준 박사를 만나 식사를 하고 중화항으로 갔다.

납도. 일전에 통.섬에서 납도를 탐방 했었는데 당시에는 참여를 못했다. 궁금했다. 단편적인 지식만 간직한 채...

 

경상남도 통영시 욕지면 노대리에 속해 있는 납도는 140년전 고성에서 동래정씨가 땟목에 떠밀려 이곳에 정착 했다고 하며

섬이 납짝 하다고 납도라 했다는 말이 있다.

과연 우장춘 박사의 말대로 원시 자연림이 그대로 살아있는 천혜의 섬이다.

사람이 떠난 섬은 돌담과 자연이 어우러진 자연림이 잘 보존된 아름다운 곳!

 

섬에 내리니 포크레인 흔적이 있다. 벌써 개발을 하는지 길을 내고있다.

약간의 오르막을 오른쪽으로 오르니 제법 너른 터가 있고 바닥은 시멘트 포장된 좁은 길이며

수백년된 동백나무가 우거진 숲길이 운치를 더해주고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각종나무가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다.

사람이 떠난 빈집의 앞마당은 아름드리 후박나무가 서있고 사리문 앞의 동백나무는 충렬사 경내의 동백나무와 견줄만 하다.

 

여러 가구가 살았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으며 납도 감귤 이라는 옛 영화의 흔적도 보였다.

납도 예배당에는 누군가 기거를 했던 자국이 소주병과 야전침대로 흔적을 남겼고

아래쪽 선착장은 파도에 파손되어 흔적만 남았다.

 

섬을 한바퀴 돌아보니 학교와 교회, 밀감 선별장 까지 있었던 매우 활기찬 섬이었으나 사람 떠난지 오래 되었고 

원시 자연림이 살아 있는 천혜의 보고가 되었다.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일주 도로는 약간의 손만 보면  탐방이 가능한 곳이다.

밀감을 심었던 밭은 묵정밭이 되고 나무가 우거져 구분을 할 수 없으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인 대나무는 멋대로 자라 길을 점령 하였다.

 

일전에 섬을 개발 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어떻게 개발 할 것인지 걱정된다.

돈으로 시멘트로 포크레인으로 밀어 붙이는 개발은 참으로 걱정되는 일이다.

섬과 사람과 탐방객이 공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수우도 등산길은 나에게 참 인상적인 느낌을 주는 길이었다.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약간의 나무와 풀만 제거해 주면 길이 된다.

즉 밟으면 길이 되는 그런 개발이 필요하다.

 

납도!

한때는 밀감산지로 각광 받았던 지금 무인도가 된 섬을 탐방하며

이 아름다운 자연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었인지 고민하는 하루가 되었다. 

 

2014.2.15 통영 납도에서 백세청풍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