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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통영향토사 7 - 장군봉과 당포성

청풍헌 2014. 5. 8. 22:35

문화원 시민향토사 강좌 7. 2014.05.07.

 

긴 연휴 동안 시댁과 친정 식구들이 교대로 다녀가셨다. 유명 관광지에 산다는 건 손님을 달고 사는 것이다. 친구들도 한 번씩 다녀간다. 물론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타향을 고향삼아 사는 나에겐, 더구나 길이 멀어 다녀올 엄두를 못 내는 나에겐 그들의 방문이 반가운 일이다. 연휴가 끝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는가. 일상으로의 복귀 또한 일탈이 주는 기쁨 못지않다.

오늘은 장군봉과 당포성이다. 산양읍 삼덕은 원항, 당포, 관유 세 마을을 합해 부르는 이름이다. 원항(院項)은 원래 원목이라 부르던 곳이란다. 원목은 轅門처럼 군영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원목 고개가 입구에 해당하므로 장승을 세운다. 처음엔 목장승이었으나, 2년마다 새로 깎아야 하는 게 목장승이다. 장승을 깎는 사람은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해야 하는, 그렇지 않으면 부정을 타는, 저주를 받기도 하는 두렵고 고된 작업이라 하신다. 사람들이 차츰 기피하게 되니 돌로 깎아 오래 쓰게 되었다. 그런데, 유독 통영에 돌벅수가 많은 이유는 뭘까.

당포는, 고성 梵溪에 있던 번계만호진(樊溪萬戶鎭)의 수군이 당포로 옮겨오면서 당포만호진이라 부르게 된다. 만호진은 종4품 만호가 통솔하는 군대가 있던 하급 군영을 말한다. 성을 쌓고 왜구로부터 통영의 바다를 지키던 곳이다. 원래는 장군봉 서쪽 끝자락에 성을 쌓았으나 물이 없는 곳이라 군사들이 생활하기에 어려움이 많아지자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다. 장군봉 위의 제당을 비롯해서 堂이 많아서 당개(堂浦)였으나 만호진이 들어오면서 크다는 뜻을 가진 唐浦라고 바꿔 불렀다,

관유는, 원래 당포성의 동문 밖에 있는 마을이라 동박골이라 불렀다. 한말, ‘寬柔以敎不報無道 南方之强也 君子居之’(너그럽고 부드러움으로 가르치고 경우 없음을 보복하지 않는 것이 남방의 강점이니 군자가 머물만하다) 라는 중용의 글귀를 따서 관유라 개칭했다한다. 좋은 말은 자꾸 갖다 써야 한다. 이름이 사람을 바꾸기도 하니 말이다.

장군봉을 먼저 오른다. 매화 떨어진 자리에 주렁주렁 작은 매실들이 달렸다. 다음 달이면 수확이 가능할 것이다. 산딸기들도 곧 열리겠지. 봄에 산길 걷는 재미는 달달한 열매들을 따 먹는 것 아니겠는가. 산길은 고즈넉한 그늘 아래 오롯한 샛길이다. 장군봉으로 오르는 초입부터 신성한 제당에 들어가는 경건함으로 마음을 잡는다. 섣달그믐에 제를 올릴 제주는 그 마을에서 가장 깨끗한 자라야 했다. 집안에 우환이 없는 이가 제주가 되었다. 그를 도와 제수를 장만해야 하는 이는 제물을 사러 시장에 갈 때는 삿갓을 써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고, 물건 값을 흥정하지도 않았다 한다. 상을 들고 이 길을 오를 때 짐승을 만나거나 동네 개가 짖으면 되돌아 내려와 목욕재계를 하고 다시 올랐단다. 하늘에 올리는 제이니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上堂인 산 정상에서 지내는 제는 천신제다.

길 끝은 커다란 바위다. 밧줄도 하나 매달아 놓았다. 사량도도 그렇지만 바위가 오히려 미끄럽지 않아 오르기가 더 쉽다. 제당 아래 바위에 섰다. 삼덕이 한 눈에 들어오고, 멀리 섬들도 점점이 보인다. 오곡도로 시작해 소지도 학림도 연대도 연화도 욕지도 갈도 두미도 추도가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멀리 남해도 보인다. 섬은 아무리 가르쳐줘도 가 본 섬만 기억난다. 통영이 품은 수많은 섬을 다 돌아볼 수는 없겠지만 섬은 늘 유혹적이다.

장군봉이 투구를 쓴 장수의 형상이라 그리 부른다 하지만 민둥산이던 옛날엔 남근석으로 보였단다. 투구 모양의 동그란 산정은 귀두를 닮았다. 선사시대 유물 중 가슴과 엉덩이를 유독 크게 만든 여성상은 다산의 기원 때문이었다. 종족보존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다. 세계 곳곳에 남근석이 종교의 대상인 곳이 있다. 장군봉을 풍화리 쪽에서 보면 영락없는 남근석이라고 하신다. 기근과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시절엔 남근석에 제사를 지내는 일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돌벅수의 코를 가루 내어 마시면 아이가 생긴다는 미신까지 있을까.

제당으로 오른다. 예전엔 나무가 빽빽하던 곳이었다는데 중요민속자료로 지정하면서 정비를 한 모양이다. 거리손 비는 곳과 소각로가 앞에 있고, 나무들도 보기 좋을 정도로만 있다. 천제를 지내는 곳인데, 천신도는 없다. 대신 작은 제당에 산신도가 있다. 산신제는 산 중턱에서 산을 바라보며 지내는 제라는데 말이다. 큰 제당에는 장군도와 목마 두 마리가 있다. 장군도는 원래 이태규 화백의 유화작품이라는데 지금은 액자만 남아 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있었다는데, 그새 누군가 가져간 모양이다. 신성한 곳에 있던 것이니 투탕카멘의 피라미드 도굴범처럼 저주를 받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 대신 다른 장군도가 서 있다.

큰 목마는 1927년 마을 주민이었던 김경진이 손으로 깎아 만든 것이다. 반면, 작은 목마는 1939년 장군봉 아래에서 수산업을 하던 다나까라는 일본인이 자신의 사업이 번창하기를 비는 마음으로 일본에서 기계로 깎아 만든 것을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한다. 말은 예로부터 인간의 소원을 하늘로 전하여 복을 가져다주고 죽은 자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등 지상과 천상을 잇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여겼다. - 향토사 산책 중에서

다시 산을 내려간다. 바람이 시원하다. 칡 순이 많이 올라와있다. 조금씩 끊었다. 콩과 식물이지만 효소를 만들어 마시면 좋다하니 조금만 만들어 먹어볼까 한다. 자연에서 먹을 것을 찾는 일은 지구에 사람이 생겨나면서부터 계속되는 일이다. 특히 여자들은 남자들이 사냥에 몰두할 때, 채취를 담당했다. 그 기억은 DNA에 두고두고 새겨져 나물을 캐고 열매를 따면서 먹을거리를 챙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몸은 아직도 구석기 시대를 기억하고 있다하지 않는가.

원항마을 입구를 지키는 벅수는 서로 마주보며 길 양쪽에 서 있다. 천제를 지내고 내려온 제주는 이 벅수 앞에 다시 제상을 차리고 제를 올린다. 여기가 中堂이다. 여기서 벅수제를 지낸 제주는 원항의 당산나무 앞으로 가서 다시 제를 올린다. 거기가 下堂이다. 신목에 드리는 제가 끝나면 용왕제를 드린다. 마을 사람들도 각자 제상을 차려 바닷가에 상을 놓는다. 제가 끝나면 바다에 제물을 전부 쏟아 넣는다. 용왕님께 드리는 제물이다. 물고기들 포식하는 날이기도 하겠다. 그 후엔 메구패가 마을을 돌면서 지신밟기를 한다. 마을 축제날이다. 젊은 남녀가 서로 희롱해도 되는 날이라 하신다. 남녀가 유별했던 시대였으니 그런 날도 필요하긴 하겠다.

할매 벅수 옆길을 따라 동박골로 들어간다. 은행나무 앞에 돌 벅수 한 쌍을 깎아 나란히 놓았다. 사나운 얼굴이다. 당체 푸근한 기미가 없다. 할매 벅수 코를 누가 쪼아 놓았다. 그 코를 갈아 마셔야 할 이가 있었나보다. 간절한 기원은 간혹 행동으로 이어진다. 진인사대천명이라 했으니 뭐든 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나마 출산의 기원이라면 환영해야 할 시대다. 우리나라 현재 인구는 기근이 없어도 전염병이 없어도 자꾸 줄어든다.

동문이 있던 자리에 돌들이 무너져 있다. 한산대첩길을 만들면서 이정표도 만들어 둔 곳인데 초입이 이렇게 볼썽사나와 어쩌나 싶다. 성문으로 들어서 왼쪽에 있는 마을은 사람들이 떠나면서 점차 폐허로 변하고 있다. 대나무 옆 돌담이 무너져 내려도 다시 쌓을 손이 없다. 마을을 돌아 나와 당포성지로 오른다. 90년대 복원을 하면서 전체 복원이 아닌 부분 복원이 되어버린 곳이다. 고려시대 최영장군이 쌓았다는 안내문이 있는데, 조선왕조실록엔 성종 때 쌓은 것으로 나와 있다. 동문과 서문 두 개의 문에는 옹성이 있었고, 성곽 주변엔 바리케이트처럼 녹각과 말뚝을 박아 놓았었다.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받아 바다가 물든다. 저 바다는 왜구의 노략질로 멍들었던 바다다. 성난 파도가 가족을 삼킨 바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늘 아름다워 보인다. 햇살 받은 바다는 반짝인다. 세월호 사건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바다가 잘못한 것은 없다. 그 바다에 들어선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겠는가. 욕심이 죄다.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이 부른 잘못이다. 그 욕심은 늘 죄 없는 선량한 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지켜보는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 그 아픔은 고스란히 우리들의 몫이다.

출처 : 통영길문화연대
글쓴이 : 파란하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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