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노량해전 이후의 전황(임진왜란의 종결)

청풍헌 2014. 7. 25. 23:23

모든 텍스트가 노량해전시 이순신 장군의 순국으로 멈췄다.

노량해전의 의의와 당시 상황은 잘 나타나 있으나 이후의 상황은 잘 알 수 없다.

이배사에 문의한 결과 다음과 같은 답변을 받았다.


노량해전 후 부산포까지 따라가면서 추격하여 전투를 벌인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노량해전 당시 전투 현장이었던 남해에 도주한 일본군에 대한 공격이 계속 이어졌고요, 

동시에 고니시가 철수한 순천 예교성에 대한 확인 작업이 있었죠. 

그런 후 명 수군은 부산까지 가서 일본군의 재침에 대비하였죠. 

일본군은 11월 24일부터 26일간 모두 부산에서 철수하여 12월 중 일본의 하카다항에 도착하였죠. 

조선은 기유약조(1609년)가 체결되어 일본과의 관계가 정상화 되기까지는 부산과 경상우도 지역으로 수군을 첨방시켜서 

일본의 재침에 대비하다가 이후 정상적인 해상 방비태세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관련 일본 문헌 해제 근세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조선정벌군기강(하타모토라는 오사카의 강담사가 1757년 구술한 것을 셋사이산진이 1771년에 정리 하였다)


권25

○ 모국기의 계략

○ 사천성 함락

○ 신채전투. 명군의 패배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에 따라 장군들이 철군을 논의하다. 가토 기요마사가 고니시 유기나카를 구원하여 돌아오다.


권26

○ 명국의 유정옥이 이끄는 추가 부대가 다다르다. 가토 기요마사가 철군부대의 최후방을 맡을 준비를 하다.

○ 가토 기요마시의 계략으로 명군을 쳐부수다. 조선인이 입조하게 된 유래.


상기를 참조했을 때 노량해전 이후에는 이렇다 할 해전이 없었으나 일본측 자료에 의하면 노량해전 이후 고니시유키나가가 탈출한 이후

명국의 유정옥 부대와 전투가 있었으며 가토 기요마사가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다.

차후 명나라의 문헌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