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통영 소식

(스크랩)통영신청(남해안별신굿)

청풍헌 2014. 7. 24. 23:24



문화/교육
조선 3도수군통제영 제1 종합예술센터 남해안별신굿의 통영신청(統營神廳)
통영신청예술원으로 명칭 부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학계 목소리
신청…남해안별신굿의 원뿌리, 400여 년 12대를 이어온 통제영 문화산실의 보고寶庫
산하 중요무형문화재 남해안별신굿, 통영대취타보존회, 통영삼현육각진춤보존회
통제영춤, 통제영사설, 통제영음악, 통제&
김영화 기자  |  hannew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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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24  10: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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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신청에서 예능활동을 하던 분들. 통영시 태평동 551번지 신청 앞마당에서 찍은 사진.맨 앞줄 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농주 고영숙 예인이다. 남해안별신굿 정영만 회장의 고모 할머니. 마산에서 유명한 금호장이라는 요리집을 운영했으며, 1970년대 신청 해체 후에는 부산 충무동에서 통영관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했다. 둘째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역시 정영만의 집안 할머니로 신청에서 활동한 유앵(예명)이다.

400여 년 전 통영의 뿌리인 조선시대 경상전라충청3도수군통제영 제1의 종합예술센터인 통영신청(統營神廳)과 남해안별신굿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야 한다는 학계 목소리가 높다. 
 
최근 경남문화예술진흥원 등이 조사한 경남 지역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성 최우선 순위에 통영신청과 남해안별신굿이 손꼽혔다. 
 
이는 통영신청이 400여년 12대를 이어온 국가 지정의 중요무형문화재 제82-4호 남해안별신굿은 물론 통제영시절의 음악 대취타, 경남의 악의 핵심인 통영삼현육각과 통영진춤 등을 배양한 통제영 문화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또 현재 통영시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통제영이라는 막연한 개념 보다는 통제영 춤과 통제영 사설, 통제영 음악, 통제영 복식, 통제영 악기 등의 구체적인 자료와 문헌적 근거가 확실한 살아있는 통제영 문화라는 측면에서도 훨씬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중요무형문화재 남해안별신굿 정영만 예능보유자는 최근 400여 년 통제영 종합예술센터인 '통영신청'을 '통영신청예술원'이라는 명칭으로 다시 부활시켜 통영 가무악의 정체성 찾기에 더욱 주력한다. 
 
오는 22일 오후 3시 한국문화재보호재단과 통영무형문화재보존협회 후원으로 통제영 백화당에서 열리는 남해안별신굿보존회의 '통영신청과 교방놀음' 또한 그 결실의 일환이다. 
 
신청(神廳)이란 당골 음악인들(世襲巫)의 조직체나 그 공동체를 대표하는 청사(廳舍)를 말한다. 
 
민중을 비롯 전 계층의 삶과 죽음의 인간 조건을 해방이라고 하는 자아 초월의 체험으로 이끌어 간 주체이자 마을공동체는 물론 국가 기관의 믿음 치레와 여러 행사 치레를 주관, 이 모든 것을 악으로 수행했다. 
민악계와 아악계를 중개하며 모든 계층의 음악 감수성을 민악화(民樂化)함으로써 우리나라 전 음악사를 민족음악 역사로 이끌어 온 가장 오랜 보고(寶庫)이자 혼불과 같은 산맥이다. 
 
통영은 원래 고성군 두룡포라는 작은 포구에서 경상·전라·충청 3도 수군통제영이 점차 옮겨와 만들어진 도시다. 
 
그때 전남 여수 군영에 매인 악공들도 함께 이동해왔다. 그들은 군영에 출근하여 삼현육각에 참여하거나 취타를 불었고, 밤에는 퇴근하여 굿판에서 시나위를 불었다. 이런 연유로 불과 30년 전까지 통영사람들은 고흥, 여수사람들과 굿을 했다. 
 
통영신청은 통영 세습무들의 조직체계이다. 이 신청 안에는 영호남 교섭이 이뤄진 음악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통제영이 조선 선조 26년(1593)에 이순신 장군이 3도수군 초대통제사로 한산도로 설치, 뒤에 통영으로 이설되면서 3도수군 통제사가 군영에 이 지역 세습무들의 대사산이(신청대표자·큰 악사)를 병영군악 조직의 책임자로 소속시켰다. 
 
나머지 신청 조직원들을 세악수, 최고수의 악동 등으로 군영에 소속시킴에 따라 통제영의 연례, 제례 등 각종행사의 대소사를 주관하게 했다. 
 
통영 신청인들은 높은 기·예능으로 '생활의 음악화·음악의 생활화'를 실현, 통영지역의 민중들의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전문 예인집단인 동시에 민중들과 광대패, 연희패, 탈춤패의 지도자(先生)역할을 했다. 
 
신청 조직이 전국적인 조직화를 꾀할 수 있었던 것도 조선 사회 자체가 이들의 음·악 예술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3년에 한번 과거 시행기에 서울에서 중앙과 각 지방의 신청조직 도청 총회에 참석했다. 
 
통영신청 출신 당골 세습무들은 중앙과 전국의 각 지역의 예악 문화를 통솔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후 삼도수군 통제영이 고종 32년(1895)에 폐영되면서 세악수와 최고수 악공들이 세병관 아래쪽 신청에서 이동, 항남동 충무도서 골목의 신청건물을 거쳐 일제 강점기에는 통영시 태평동 551번지(현 중앙시장 옆 새마을금고) 부근으로 신청건물을 옮기고 자생하게 됐다.
 
일제 강점기에 송만갑, 이동백 등의 대(大)명창들이 순회공연을 왔다가 선창가에서 울리는 무녀의 노랫소리를 듣고 "공력이 크니 이곳에서 소리 조심하자"로 박녹주 명창에게 말했다고 한다.
 

  
▲ 통영산수회 놀음 후 관음사에서 찍은 기념사진. 정영만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 꼬마)이 6세였던 1962년 신청 예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 당대에 내노라 하는 예인인 정봉호, 김성오, 노덕찬, 노상옥, 정모련(남해안별신굿 보유자), 고주옥(남해안별신굿 보유자), 통영권번 출신 한경자와 노금자 예인이 함께 했다.


하지만 해방 후 굿이 줄자 인근 지역 신청이 통영에 합쳐졌다. 
 
이로써 거제와 부산, 여수를 단골판으로 하던 정영만씨 집안, 통영 욕지 및 섬을 출입하던 외가 이씨 집안, 한산도와 남해도의 진외가 김씨 집안 등, 각 지역의 무가와 사설 무관(춤) 등이 통일됐다. 
 
결국 여수에 집결했던 호남의 음악이 통영으로 건너와 교섭했고, 이후 신청이 합병돼 경상도 남해안의 모든 음악이 모두 통영에 흡수된 것이다. 

작곡가 윤이상 역시 루이제 린저와의 대담에서 어린 시절 늘 들려오던 무녀의 노래가 자기 음악의 밑바닥을 채웠다고 고백했다. 구체적인 작품으로는 '나모' '무녀의 노래'등이 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화라는 명목아래 서구문화의 유입으로 신청이라는 조직은 해체했다. 
 
하지만 지금의 통영세습무들이 자생적으로 신청조직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통영 음악과 춤이 400여 년 11대를 이어온 무가의 장손 정영만의 피리와 중요무형문화재 제82-라호 남해안별신굿 속에 남아 있다. 
 
정영만은 300리 한려수도의 마지막 대산산이(큰 악사)요, 제사장이다. 그의 자제들 역시 12대 세습무계집안 후손으로 자연히 신청 조직의 중심적 역할을 이어받고 있다. 
 
신청 출신 정영만 대산산이는 오늘날 중요무형문화재 제82-4호 남해안별신굿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통영대취타보존회 및 통영삼현육각진춤 보존회를 육성시키고자 애쓰고 있다. 
 
또 남해안별신굿 정영만 회장은'통영신청예술원'이라는 명칭으로 다시 부활시켜 그 역사의 찬란함에 걸맞게 종합적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예술을 탄탄한 역사가 바탕이 된 정체성 있는 예술로써 그 사명감을 다하고 있다.

통제영의 음악 '통영삼현육각'
대취타와 민간제례악, 영남 최고의 음악

 
'福(복)을 부르는 산이의 소리, 福과 노니는 승방의 몸짓, 인간 염원의 춤 '巫舞(무무)'라 불리는 가무악의 원형 '남해안별신굿'의 그 색다른 예술성은 이미 국가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인정, 보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또 하나 주목해야 할 통제영 문화 중 하나가 통영삼현육각이다. 
 
취타음악, 제례악, 시나위와 춤 모든 것이 3도수군통제영의 영향으로 전문 예인들과 세습무 집안의 후손들, 통영신청에 의해 그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까지도 '세면친다'또는 '세면 잡힌다'고 불리는 통영삼현육각은 영남 최고의 음악으로 평가된다. 
 
통영삼현육각은 이미 남해안별신굿 정영만 회장의 주도하에 김일룡 통영문화원 향토연구소장, 경상대 국문학과 박성석 교수, 경상대 민속무용과 임수정 교수가 참여, 고증해 냈다. 
 
숙종 13년, 류충기 통제사 취고수청 설치
대취타 50명 편제, 통영 대통수 악기 독특 

 
취타악은 겸내취(兼內吹 궁중 선전 관청에 매여 있던 군악대)의 행악(行樂)때 연주됐고, 영문(營門)에도 상설, 군대의 행렬이나 전쟁에서 개선할 때, 진문을 여닫을 때 등에 연주됐다. 
 
통영에서는 조선시대 숙종 13년(1687)에 제64대 류중기 통제사가 취고수청을 설치, 이곳에서 취고수들을 양성하는 한편 영내외 각종 행사에서 취타악의 연주를 담당하게 했다. 
 
규장각 도서 '통영지'에 따르면 통제영의 관아 중에 취고수청이 있었고, 이곳에 배속된 취고수가 19명이라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취타악을 연주하던 악대의 편제와 규모는 시대에 따라 다소 변화와 차이가 있었으나 대개는 대취타와 소취타로 구분된다. 대취타는 취고수와 세악수가 담당하는 악기가 함께 편제된 것으로 많으면 50여 명에 달하는 큰 악대이다. 
 
반면 소취타는 대취타의 편제에서 세악수가 빠져 축소된 악대로서 태평소, 나발, 피리, 대금, 나각 등이 있었고, 타악기는 징, 북, 바라, 장구, 꽹과리 등이 있다. 통영에서는 대통수라는 악기가 독특하게 연주된다. 
 
취고수와 세악수의 복식을 보면 전립을 쓰고 누른빛의 철릭이라는 전복을 입으며, 여기에 남색 전대를 두르고 무릎 아래에 흰 행전을 맺으며 날씬하고 경쾌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현재 통영에서는 환갑 잔치때나 호상 때 그리고 남해안별신굿 골메기굿에서 연주되는 길군악 음악이 전해지며 실제로 연주되고 있다. 
 
길군악 음악은 1,2,3장으로 구분돼 있으며, 시작과 끝맺음에 징과 바라가 신호를 주며, 특징은 시작을 알리는 대통수가 맨 먼저 연주되며 이어서 나각, 나발이 연주되고 있다. 
 
통영 취타의 편성으로는 대통수, 나발, 나각, 징, 바라, 용고, 태평소, 장구, 피리, 대금 등으로 편성되어져 있다.
 

  
▲ 통제영 의례행사에 추었던 거상춤(擧床舞) 복식. 해방 전 고영숙(맨 왼쪽) 예인 등 4명이 사진관에서 찍은 모습.


통제영 민간제례악, 통영에만 유일 
타 지역 제례 봉행시 초청 쇄도

 
통제사 시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민간제례악은 현재 유일하게 통영지방에만 전해 내려오고 있어 타 지역 제례 봉행 시 남해안별신굿 팀이 초청, 연주되고 있다. 
 
삼현육각을 이용한 제례음악으로 장구, 북, 피리, 대금, 해금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청신악, 영신악, 송신악으로 나눠져 있다. 
 
홀기의 선창에 의하여 시작되는 민간 제례악은 관청의 제례 봉행과 높은 집안이나 중요한 모든 제례 의식에 쓰여지고 있다. 
 
현재에는 개인적인 곳에는 사용되어지지 않고, 초대 통제사 이순신의 탄신일과 기일, 춘·추향사 등에 쓰이고 있다. 
 
삼현육각 시나위와 통영 진춤
통제영 의례 거상춤 등도 발굴·복원 

 
"13명의 어린 기생들이… 서로 일어나 춤을 추었는데, 날개를 이어서 너울너울했는데, 마치 날렵한 제비가 물결을 희롱하는 듯, 아름다운 꾀꼬리가 버들가지를 꼬는 듯 했다. 여러 가지 꽃들이 다투어 핀 것이 아니면, 뭇 신선들이 아리땁게 노니는 듯하니, 정말 한 바탕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함안총쇄록, 통제영 방문 일기 중> 
 
통영신청에서 가르치는 예능 중 통영 진춤은 아주 독특한 경상도의 춤의 특징을 잘 지니고 있다. 또 그 춤을 추게 하는 뛰어난 삼현육각 시나위가 있었다.
 
타 지역의 벼슬아치들도 통영의 춤을 보고, 감탄하였다는 문헌들이 그 유래를 뒷받침 하고 있다. 
 
통영 삼현육각은 뛰어난 예인들의 예술적 결합체로서 그 독특한 경상도풍의 음악은 이미 많은 타지역인들에게 사랑을 받았었다. 
 
그 시나위에 어우러진 통영 진춤은 그 춤의 사위가 무거운 듯 하면서도 나긋하고, 밝은 듯 하면서도 애잔함이 묻어나는 것이 특징이다.
 
통영 지역의 독특한 춤사위인 손목놀음은 최근에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사위이며, 흥이 가득 담긴 어깨사위의 멋과 수건을 이용한 돌림사위나 허배 사위는 통제영에 어울리는 독특한 통영의 춤사위 이다.
 
또 최근에는 통제영 의례 때 추던 거상(擧床)춤과 매화 화관을 쓰고 추는 입무 등 통제영 시대로부터 전해오는 다양한 춤들을 발굴, 복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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