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정걸장군을 안 것은 이번 답사의 큰 수확 이었다.

청풍헌 2014. 11. 6. 07:06

정걸 장군 유적지를 찾아서(이배사 2014년 하반기 정기답사)

 

이배사에 가입한 후 첫 번째 정기답사에 참여했다

이번 답사는 전라좌수영의 5관 5포중 1관 4포가 있는 고흥군이다.

이배사에는 대단한 학자들과 전국 각지의 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학습단체다

이순신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최고의 단체로 발돋움 한 것은 여러 회원과 운영진의 노력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공부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정기답사를 하면서 학습하는 분위기는 어느 단체의 답사보다 훨씬 진지하고 유익하다.


자료집을 받아드니 생소한 이름이 나왔다

정걸 장군

격군님의 말씀으로 임진왜란 중 큰 공을 세운 장수 중 하나인데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여 

선무공신록에도 올라가지 못한 저 평가된 장군으로 이번 답사에 유적지를 돌아보고 그 후손을 만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고 했다

정걸 장군은 언뜻 들어 본 것 같으나 무슨 일을 했으며 어떤 공과가 있는지 잘 알지는 못한다

정걸 장군 그는 누구인가?

 

답사 자료집에는 1514(중종9) 122일 전남 고흥군 포두면 길두리 후동에서 태어나 30세에 무과에 급제

훈련원 봉사를 시작으로 평안도 병마만호에 재직중 을묘왜변(달량포왜변)에 큰 공을 세우고 부안 현감으로 재직했다

왜구를 방어한 능력을 인정받아 함경도 북단의 온성부사로 종6품에서 종3품으로 6단계 수직 승급하여 변방을 지킨다

통상 순환근무에 의하여 2년 후 한성이나 고향에서 휴식을 취하지만 정걸 장군은 변방에서 11년간 근무를 한다

이는 그 만큼 백성들을 잘 살펴 선정을 베풀었다는 말이다

58세에 경상우수사로 부임 하는데 이때 하동현감이 백성이 왜적에 잡혀간 사실을 알리지 않아 책임을 지고 파직 당한다

다시 복직 되었다가 전라좌수사-장흥부사-창원부사-경장-전라우수사를 임란 직전까지 수행 했다

난중일기에 이순신 장군의 휘하로 78세의 정걸 장군이 조방장으로 등장한다

80세인 1594년 통제사의 조방장으로 근무하고 고향 흥양으로 귀향 후 83세에 작고한다

그의 아들 연()도 정유재란 때 전사 했으며 손자인 홍록(弘祿)7년 전쟁이 끝난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후손들이 임진왜란 시기에 단절되었기 때문에 자료가 부족한 이유다

 

그러면 정걸장군의 구체적인 활동을 살펴보자

먼저 판옥선을 개발 했다는 기록이 있다

호남절의록의 영조대 어사 이이장이 해진을 돌아보다가 판옥선을 보고 그 운용이 어려워 폐지 하자는 계를 올렸는데 

그것은 명장 정걸이 만든 것이므로 폐지하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했다

정걸은 을묘년 달량포 왜변에서 왜구를 격퇴한 전공을 세운다

이순신장군의 전라좌수사 조방장으로 근무 하면서 나대용, 송덕일과 함께 거북선을 만드는데 기여를 했다

다시 호남절의록에 송덕일의 활약상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충무공 이순신이 공(송덕일)으로 하여금 장선사겸 주사전부장을 삼았는데 공은 나대용.정걸등과 함께 거북선을 보수하여 늘였다.” 

이러한 사실로 판옥선을 제작한 정걸 장군이 거북선을 제작하는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이후 임진왜란 시기에는 조방장-충청수사-조방장을 역임하면서 이순신 장군의 4차 부산포 해전에서 큰 공을 세운다

충청수사로 근무시 행주대첩 때 화살을 공급하여 승리하게 된다

다시 통제사 이순신 장군의 조방장으로 근무했다

이상으로 조선중기 수군명장으로 이름을 날린 정걸 장군이 종전후 임란공신에 들지 못하고 잊혀지고 있다

이번 답사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정걸 장군을 공부하게 되었다.

 

정걸장군의 고향인 포두면 사무소에서 장군의 14대 후손인 정종욱선생을 만났다

장군의 유적을 이렇게 많은 인원이 찾은 것에 고무하여 약간 들뜬 마음으로 대했다

점심 대접을 톡톡히 받고(이래도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답사에 나섰다

정걸장군의 신도비와 유허비가 서 있는 곳은 후동 마을에서 남쪽으로 산이 있는데 그 가장자리 으슥한 초분골에 세워져 있다

정걸장군을 모신 사당인 안동사를 갔다

시골길을 한참 걸어간 안동사는 향교에서 모신 선현들과 같이 배향되어 있다

안동사로 들어가는 입구는 관리가 허술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앞 건물의 지붕에는 잡초가 가득하고 오동나무 씨앗이 떨어져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안내를 하는 후손이 부끄러울 정도다. 

고흥군에서는 그나마 학예사를 채용하고 예산을 투입하여 정비를 할 것이라 했다

러나 내가 보기에는 이순신 장군에만 전념할 것이다

다른 곳과 차별화된 정걸장군을 특화할 필요가 있다

임란 극복에 큰 공적이 있는 잊혀 진 장수 정걸을 조명하고 특화 하는 것이 최우선 일 것이다

그나마 이달 말에 정걸장군 학술회가 열린다 하니 기대해 본다.

 

정걸장군!

역사에 기록되었지만 공신록에 누락되고 후대에 저평가 된 정걸장군을 안 것은 이번 답사의 큰 수확 이었다.  


▲정걸장군 유허비

▲정걸장군 신도비

▲이수

▲정걸장군 후손 정종욱 선생

▲후손 정종욱 선생과 고흥군청 관광과 임정모 계장

▲안동(기러기가 날아드는 동리)

▲안동사 가는길

▲안동사 입구



▲안동사에서 설명중인 후손


▲관리가 되지 않는 지중

▲마당의 벽오동 씨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