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전라 좌수영 4포 진성 탐방(녹도진) 두명의 장군이 배향된 쌍충사가 있는 녹도진성

청풍헌 2014. 11. 7. 23:02

녹도진성을 찾아서

 

고흥군은 과거 흥양현으로 전라좌수영의 55포중 14포가 존재했다

즉 이순신 장군의 주력군 이었다

이는 한산해전의 전사자와 부상병의 기록에서도 증명된다

녹도진성은 1587정해년에 왜구의 침입으로 사적기가 해중으로 유실 되었다라고 1872년 지도에 기록되어 있다

수군만호가 근무 했으며 전선1, 병선 1, 사후선 2척에 수군만호 1, 군관 25, 기패관 3, 방선장 1, 포도관 2, 훈도 2, 진무 30, 주사 230명이 근무했다

유적의 흔적은 거의 볼 수 없었으며 대부분 훼철된 것 같다

차분히 찾아보면 그 흔적을 알 수 있을 것이나 시간관계로 찾아보지 못했다

다만 쌍충사 입구에 비석이 4기가 있다


고지도를 보면 흥양현에서 녹도진으로 들어오는 관문인 원문이 보인다

원문은 진성으로 들어오는 입구의 문으로 통제영에도 원문이 있다

지금은 매립으로 인하여 어디가 원문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마을사람들의 구전에 의하여 위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녹도진성에는 쌍충사가 있다

쌍충사는 녹도만호 이대원 장군과 부산포 해전에서 전사한 정운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이대원 장군은 녹도만호시절 1587년 왜적을 막다가 손죽도에서 전사했다

정운 장군은 임진장초의 부산파왜병장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있다

녹도만호 정운은 사변이 일어난 이래 충성심이 북받쳐 적과 함께 죽기로 맹세 했는데 세 번에 걸친 출전에서 언제나 먼저 돌진 하였습니다

이번 부산포 싸움에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돌진하다가 적의 대철환이 이마를 뚫어서 전사한 바

몹시 비통하여 여러장수 중에서 별도로 차사원을 정하여 각별히 호상 하도록 지시 하였습니다.”


또다른 장계에는 그런데 그날 돌아나 올 무렵에 그는 철환을 맞아 전사 하였사온 바

그 늠름한 기운과 순결한 정신이 쓸쓸히 아주 없어져서 뒷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못한다면 참말로 뼈아픈 일입니다.

이대원의 사당이 아직도 그 포구에 있으므로 같은 제단에 초혼하여 함께 제사를 지내어 

한편으로는 의로운 혼령을 위로하고 한편으로는 남을 격려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명의 녹도만호가 배향된 쌍충사에 참배를 하고 다음 답사지로 향했다.


▲녹도진성 지도 상단

▲녹도진성 지도

▲녹도진성 전체 조감도

▲해동지도 흥양현

▲소록도 다리

▲쌍충사에서 해설중인 격군님





▲쌍충사 입구 비석군[우측에서 두번째 비석은 통제사 민형식의 비석임(1892~1894)]

▲통영 이라면 통제영을 뜻하는데?

▲고흥군청 양미소 학예사의 보충설명

▲전라 좌수영의 5관 5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