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조선 명문가 덕수 이씨(이순신 후손 통제사)

청풍헌 2014. 11. 20. 23:26

 이배사 통영지부 11월 모임 발제자 정경달(김영국)

                                                                           2014.11.13. 19:00~ 슬이네 보리밥

조선 명문가 덕수 이씨(이순신 후손 통제사)

 

 95대  이 봉상(1722.1~1723.3) 훈련원 중군장으로 전임. 시호 충민

                      비석: 통영 충렬사, 남해 충렬사, 세병관 좌목

112대 이 언상(1745.12~1747.10)임기 만료후 군관청 포사로 전임

                      비석: 통영 충렬사, 세병관 좌목

122대 이 태상(1760.8~1762.6) 고하도 별장 사건으로 파직. 포도대장 역임.

                      비석: 통영 충렬사, 남해 충렬사, 제승당, 세병관 좌목

 

127대 이 한응(1768.5.1769.1) 왕실진상 청어 체소로 체포. 어영대장 역임.

                      세병관 좌목

139대 이 한창(1783.2~1784.12) 임기 만료후 훈련원 도정으로 전임

                      비석: 통영 충렬사, 제승당

144대 이 한풍(1788.3~1789.3) 총융사로 전임

                      비석: 통영 충렬사, 세병관 좌목

151대 이 인수(1800.5~1802.3) 임기 만료후 충융사로 전임

                      세병관 좌목

166대 이 유수(1827.3~1829.3) 임기 만료후 총융사로 전임

                      충렬사 정침 후면 축대신축(명문석)

 

168대 이 항권(1830.4~1832.3) 임기만료, 오위도총부 부총관으로 전임

                      비석: 통영 충렬사

173대 이 승권(1839.2~1841.2) 춘조장계 지연파직, 어영대장 역임

                      비석: 통영 충렬사, 제승당, 1840 강한루 건립

 

199대 이 규석(1877.5~1879.2) 임기만료 사임, 공조판서 역임.

                      비석: 세병관, 제숭당(2), 제승당 이충무공 유허비 건립 착량묘 개축, 호상제 신축

204대 이 규안(1886.3~1887.12) 지의금 부사로 전임.

                      비석: 세병관, 제승당, 역대 통제사비 한곳으로 모아 비각 건립.




이배사 통영지부의 정기모임을 세 번째 가졌다

두 번째 모임에서 공부하는 이배사가 되도록 한명씩 돌아가며 각자가 공부한 것을 발표하도록 하여 

첫 발제자로 정경달님이 조선의 명문가 덕수 이씨 (이순신의 후손 통제사)에 대하여 발제를 했다

유인물은 위와 같다통제사의 대수는 기존 선생안이 있으나 변사기 통제사가 실록에 등제되어 있으므로 변사기 통제사를 포함 하는 게 합당하다

역대 통제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명문가는 전주이씨로 28명이며 이번에 비석이 발견된 전의이씨, 평산신씨, 능성구씨, 해주오씨가 있다

능성구씨의 초대 통제사 구인후는 이경준 통제사가 데려온 분이다

두룡포 기사비를 쓴 박홍미는 공교롭게 이순신을 잡아 들이라는 선조의 비망록을 전해준 동부승지였다.

 

이봉상, 이언상, 이태상은 상자 돌림으로 5대손이며 

이봉상 통제사의 남해 비석은 무너진 남해 충렬사를 사비로 중수 했다 하여 비석을 세웠으며 

이태상 통제사는 기근이 들어 남해군민들의 세금을 면제해준 공로로 비석을 세웠다

고하도 별장 사건은 없는 벼슬을 만들어 임명한 것이 탄로나 파직 되었다.

 

이한응, 이한창, 이한풍은 6대손으로 

이한응은 이언상의 아들로 몸이 작은 청어를 진상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어영대장은 정2품으로 청와대 경호실장이다

훈련원 도정은 정3품이며 총융사는 종2품으로 수도경비사령부다.

 

이인수, 이유수는 7대손이며 

이인수는 이한응의 아들이다

이유수는 이한풍의 5촌 조카이며 충렬사 정침 뒤편 축대의 명문에 182833일 공사를 시작해 13일에 공사를 마쳤다는 명문이 있다

정침의 옆 배수로를 자세히 살피면 일직선이 아니고 은행나무 뿌리를 따라 곡선으로 배수로가 만들어진 것을 보면 

축대를 공사할 때 은행나무가 있었다는 결론이다.

 

이항권, 이승권은 8대손이며 

이승권이 형이고 이항권이 아우다

오위도총부는 종2품으로 합동참모총장이다.

 

이규석, 이규안은 10대손이며 이규석은 이승권의 손자다

세병관의 좌목을 언제 걸었는지는 취임중, 이임후등 여러 경우가 있을 것이다

세병관은 1605년에 세웠는데 제5대 류형(1602~1603) 통제사의 좌목은 손자인 류혁원((1656) 통제사가 걸었다

이는 나중에라도 걸었다는 이야기다. 또한 우후는 임기와 겹치지 않으므로 이임 후 우후가 세울 수도 있다.

나의 견해는 통상 이임시에 좌목을 걸지 않았나 생각된다.

 

정결달님의 발제를 듣고 보니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좋은 자료를 공부하게 해주신 정결달님은 통영지부의 큰 어른이다

많은 공부를 해 오셔서 우리에게 좋은 자료를 설명해 주셔서 매우 감사했다

한편으로 발제를 너무 잘해 오셔서 다른 회원들은 부담이 된다.

다음 모임에는 내가 발제를 할 차례다

무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