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소중한 인연으로 맺어진 고흥 탐방기

청풍헌 2014. 12. 4. 15:07


지난 11월 초 이배사의 2014년도 정기 답사가 있었다

답사지는 격군님의 추천으로 14포가 있는 고흥으로 낙첨 되었다

이순신 함대의 주력 수군이 포진한 흥양현과 4포 진지가 있던 고흥이다. 

또한 이 고장 출신 정걸 장군은 임란극복의 대단한 장수인데 그 전공이 덜 알려져 격군님의 논문 발표로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논문작성 시 알게 된 후손들과 인연이 되어 이번 답사에 정걸장군의 유적지를 답사하기 위하여 연락 되었다

정걸장군 후손은 포두면 사무소에 보고 하였고 포두면 사무소에서는 고흥군청에 보고하여 군청 관광과에서 자료를 작성하고 직원이 나왔다

관광과 임정모 계장님과 양미소 학예사이다

이배사의 열혈 같은 학습욕구를 확인한 군청에서는 격군님의 요청으로 섬 투어를 허락하여 펨 투어를 가게 되었다

일정이 정해지고 드디어 답사일이 다가왔다

그러나 기상이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걱정을 했으나 어디 비 온다고 취소 할 단체가 아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운치가 있을 것이다

12일의 다도해 명소화 사업으로 추진된 가족의 섬 우도” 와 원시 체험의 섬 시호도”, 

낚시의 섬 "진지도"를 탐방하고 절이도 해전지와 목장성 및 소록도를 탐방하는 코스이다



우도는 하루 두 번 바닷물이 빠지면 길이 열리는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우리나라 11개소의 기상청 예보를 하는 섬 중 하나이다

이곳에 들어가 길이 막히면 가족이 된다는 우도는 1.2km의 시멘트 길로 연결되어 있다

갯벌서해와 가까운 서남해안의 갯벌은 서해와는 또 다른 맛을 준다

특히 자연 석화의 굴 양식은 뻘 밭 위에 공각(굴껍데기)을 두면 자연적으로 치패가 붙어 4~5년 후에 수확을 하는 원시 자연친화적인 양식이다

뻘에서 자란 자연 석화는 통영산 굴과는 종류가 다른 것 같으며 맛도 다르다

약간 알싸한 맛이 있으며 바다의 비릿한 냄새가 덜 나는 미네랄이 풍부한 좋은 굴이다

굴을 깐 껍데기를 뻘 밭에 뿌려두면 자연 채묘가 이루어져 다시 수확하는 형태로 양식된다

할머니의 굽은 허리와 굵은 손마디만큼이나 세월을 견뎌온 우도는 1.2km를 걷는 내내 상큼한 뻘 냄새와 바다 냄새가 뇌리에 깊이 박혔다

단지 시간이 부족하여 섬에 나오지 못할까봐 두려워 서둘러 나온 것이 아쉬울 뿐

▲우도를 나오며

▲자연석화 양식장

▲억척같은 우리의 어머니

▲우도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계신 중완구님


시호도는 호랑이가 죽은 것 같은 섬이라 시호도屍虎島라 했으며 그곳에서의 원시 체험은 은근히 중독이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곳 촌장님이 유명하신 분으로 계장님의 삼고초려 끝에 모시고 온 귀한 분으로 약간 어설프면서 은근히 중독성이 강한 원시체험 프로그램이다

잘 차려지고 좋은 시설의 켐핑장이나 유원지가 아니라도 개발하기 나름이다

물도 없고 배에서 내려 큰 고개를 넘어야 촌락이 나오며 첨단 기기를 모두 반납하고 원시 상태로 돌아가 여러 체험을 한다

마을에 도착하면 원시 옷을 입고 부족 공동체 생활 및 개막이 체험, 뎃마 체험, 활쏘기 체험 등등 약간 유치하면서 은근히 재미있는 유익한 프로그램이다. 지친 현대인에게 원시의 생활을 체험하게 한다는 것은 신선한 발상이다

초기에는 닭, 토끼 등을 방사하여 직접 활을 쏘아 수렵하여 식량을 확보하는 체험을 할려고 했으나 

울타리 안에서 키우던 닭은 매가 와서 낚아 채 갔으며 토끼는 굴을 파서 도망을 가고 동물단체의 반대 우려로 취소되었다고 한다

움막집에서 체험 할 수 있도록 햇으나 움막집이 시멘트로 지어져 그 의미가 퇴색 되었다

흙과 나무와 억새로 지어진 원시상태의 움막 이었다면 훨씬 운치가 있었을 것인데 아쉽다

일본 큐슈 사가현의 요시노가리 역사공원(http://www.yoshinogari.jp/)에 재현된 원시 움막집을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든다

좀 더 자료를 찾고 확인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시 체험마을

▲뎃마체험

▲격군님의 활쏘기

▲명중으로 너무 기쁘 하시는 동자갑선님


낚시의 섬 진지도는 고려 말 수군의 진이 있는 섬으로 추정하며 지금도 체성이 뚜렷이 남아있다

체성의 길이는 530m이며 성의 남쪽에 문지로 추정되는 곳이 확인 되었으며 성내에서는 

각종 토기류의 파편이 발견 되었다고 순천 박물관 학술자료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우중에 탐방한 진지도는 잡목과 수풀이 우거져 명색이 손님이 온다는데 임계장님의 기지로 

이곳 지킴이에게 부탁하여 약 열흘간 풀베기를 하여 깨끗하게 정비를 해 놓았다

530m 가 짧은 거리지만 성벽을 걷는 내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과거 성을 쌓고 성이 튼튼해지도록 성벽 밟기를 했다.

그때의 의미를 살려 흰옷(우의)를 입고 성벽을 따라 성벽 밟기를 하는 회원 들이 그 당시의 백성들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누군가의 손으로 쌓았으며 그 누군가는 바로 우리의 선조들이 아니었겠나

진지도 안내를 맡은 분은 진지도 태생으로 고향을 떠나 생활 하다가 마지막 여생을 고향을 위하여 봉사하는 심정으로 일을 한다고 했다

홍합 한 솥에 시골 어촌의 정을 덤뿍 받고 왔다


▲성벽을 따라서

▲성벽밟기에 즐거운 회원님들


과거 절이도는 현재 거금도이며 금산면이다

임진장초의 견내량파왜병장을 읽으며 드는 의문이 <금산錦山의 적세가 크게 성하여 이미 전주에 도착 하였다> 라는 말이 있어 금산이 궁금하였다

혹시 절이도 = 거금도 = 금산면이 아닐까? 하여 지레짐작하고 그러면 당시(1592.7.) 이곳에도 왜적이? 하고 질문을 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금산은 이곳이 아니라 금산전투를 의미 한다는 하성군님의 답변으로 또 한번 깨우침을 가지게 되었다

절이도 해전은 1598719일 왜선 100여척과 16,000여명을 격파한 해전이다


▲절이도 해전지


절이도 목장성은 적대봉을 둘러싼 말을 기르던 목장으로 과거 마정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 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군수물자 공장인 샘이다. 트럭, 탱크, 자동차 같은 이동수단이다

또한 말을 길러 역참에도 납품을 했으며 매우 중요한 시설이다

길이 4.5km 너비 3.4m 높이는 많이 무너졌지만 그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다

목장성에 올라가서 어디가 안이고 밖인지 토의가 있었다

지금기준으로 보면 적대봉은 잡목과 비탈이지만 당시에는 말을 산에 방목하고 관리하기 위하여 성을 쌓았으므로 

당연히 산쪽에 말을 방목하는 이치가 옳다. 성벽의 수직도 역시 산쪽이다

현존하는 다른 목장성은 구룡포의 장기목장성이 있다. 이곳을 답사하여 힌트를 얻으면 될 것이다

절이도 해전과 목장성을 연계하여 역사체험테마파크를 계획 하고 있었다

내년(2015)부터 사업비 92억원을 들여 절이도 해전 기념관 및 목장성 유적 전시관승마 체험장힐링 둘레길 조성등을 계획하고 있다

목장성 테마공원은 구룡포 장기목장성과 삼례역참의 사례를 참조하고 다른 곳에는 없는 체험시설과 기구 등등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목장성을 오르는 회원

▲현존하는 목장성

▲목장성 탐방중


목이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소록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애환이 서린 시설이다

내 이웃에도 살았으며 통영에도 해미당을 거쳐 애조마을에 집단 거주를 했었다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 에서도 다음과 같은 묘사가 있다 

장대고개에는 묘지가 있었다. 그리고 문둥이들이 떼거리를 지어 살았다. 문둥이들은 봄 가을에 합동결혼식을 한다

그들이 짝을 짓는 방법은 바가지를 엎어놓고 바가지를 잡는 처녀 문둥이가 바가지 임자인 총각 문둥이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이 합동 결혼식 때 일수 사나운 나그네가 지나가다 걸려들면 문둥이들은 잔치 술 마시고 가라며 잡아끄는 바람에 나그네는 진땀을 빼곤 한다.” 

영상으로만 보던 수감실과 수술실 등을 보니 가슴 찡했다. 수탈의 현장에는 부슬비가 내렷다

부모와 자식이 한달에 한번 만나는 수탄장을 비롯하여 학살의 현장과 노력동원을 한 중앙공원 등은 지난의 고통 그 자체다

어디 수탈의 현장이 소록도 뿐 일까마는 그래도 마음 숙연해 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동토의 구역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더불어 꽃비 같은 낙엽이 내렸다

애기 동백의 처연함도 핏빛 같은 단풍도 붉은 벽돌도 모두 작은 사슴의 슬픔을 노래하는 듯하였다


▲중완구님 사진

                                          ▲중완구님 사진


고흥

작은 인연의 고리가 큰 인연으로 발전하여 고흥의 전도사가 되었다

진심어린 정성으로 대하는 임정모 계장님의 열의와 양미소 학예사의 열정이라면 고흥의 앞날은 밝게 빛날 것이다

거듭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2014.12.1~2 당포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