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영 뚝제연구
이부원 통영문화원 부원장
통영은 300년 통제영의 군사도시였다.
군사 문화가 여럿 남아 있으며 지금은 사라진 뚝사당 및 뚝제에 대하여 홀기가 발견됨으로 뚝제에 대한 연구의 초석을 놓았다.
제54회 한산대첩 기념 축제의 일환으로 통제영 뚝제 세미나를 하게 되었다.
뚝제란 뚝신을 모시고 봄에는 경칩절에 가을에는 상강절에 모든 국민의 만사형통을 기원하고
통제영의 안위와 장병들의 무운장구를 기원하며 올린 제향이다.
뚝기는 대가(大駕)나 군대 행렬에 세우던 대장기로 큰 창에 소의 꼬리를 달거나 창에 삭모를 달아 만든다.
행진 할 때는 장교가 말을 타고 모시며 군사들이 벼리줄을 잡고 뒤 따른다.
통제영 뚝사는 문화동 배수지에 있었다.
제실 3칸에 수직청 2칸의 크기에 용궁각이란 현판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뚝사에는 장군의 상징인 뚝기 4개를 벽상에 걸어 놓았다.
뚝사는 해방 후까지 존재 했었으나 지금은 뚝지먼당이라는 지명만 남았다.
뚝제는 자시(23시~01시) 제청(祭廳)에는 온갖 창검과 삼헌관이 갑주에 동개를 매고
제집사들은 전원이 칼을 찬 무장에다 군복에 주립에 깃을 꽂은 차림이었다.
통제사가 초헌관이며 축포와 간척무(도끼와 방패를 들고 추는 춤)와 납씨가를 물렀다.
아헌례는 방포와 함께 궁시무(활과 동개로 추는 춤)와 납씨가,
종헌례에도 방포와 창검무(창과 칼 춤)를 추고 납씨가를 불렀다.
철변두(제를 물릴 때) 때에는 진퇴하는 춤을 추면서 정동방곡을 불렀다고 한다.
이 때 부른 납씨가는 태조 2년에 정도전이 지은 송축가의 하나로 고려 공민왕 11년(1362)
원나라 장수 나하추가 함경도로 침입하자 이성계가 함흥평야에서 격파한 무공을 찬양하는 노래다.
정동방곡은 조선 태조2년(1393) 정도전이 지은 송축가의 하나로
1388년(고려 우왕 14) 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출동 중 4불가론을 내세워 위화도에서 회군하며 불렀다는 노래다.
충렬사 향사 | 뚝제 | ||
장소 | 충렬사 | 뚝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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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 | 사모관대, 도포, 유건 | 갑옷, 동개, 주립, 칼을 찬 무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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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위 | 신위 | 뚝기 4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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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수 | 혈식 | 혈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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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 재배 | 4배(향교, 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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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헌례 | 일반관례 | 방포, 간척무, 납씨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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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한례 | 일반관례 | 방포, 궁시무, 납씨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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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헌례 | 일반관례 | 방포, 창검무, 납씨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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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변두 | 예필 출 | 정동방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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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제의 연구는 일천하다. 군사문화로서 병영이나 수영에서 뚝제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록이 미미하다. 여수에서 뚝제를 복원 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여 했는데 일반 제향과 같아 실망만 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무가(巫歌)와 연계하여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춘추 수조시 먼저 뚝제를 올리고 수조를 했다고 한다. 잊혀진 통제영의 뚝제를 복원 하려면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2015.8.16. 통영문화원 동락마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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