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나의 이야기

(입상)이순신 백의종군로 답사기

청풍헌 2015. 10. 6. 22:56


경남의 백의종군로(방화리-진배미) 답사기 김용재


나에게 이순신은 무엇일까?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해파랑길 등등 내노라 하는 장거리 트레일을 조성하고 그 길을 완주하는 여행자들이 생겼다.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 까지 고증되어 순례자가 생겼다. 이배사 통영지부 모임을 하고 아쉬운 마음에 맥주 한잔 기울이며 담소 하다가 우리가 책으로 공부하는 것이 전부가 아닌데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래! 경남에 조성된 백의종군로를 걸으며 온몸으로 장군님을 느껴보자고 의기투합 했다. 답사 코스 및 지도를 준비하고 구간을 계획하신 착량님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이 모든 것을 검토하고 찾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누군가와 의기투합하여 조건이 맞아야 걸을 수 있는 백의종군로다


오늘은 네 번째로 방화리에서 진배미 까지다. 방화리에서 산길이 있는 마을 뒤 고개를 올라갔다. 포장이 잘 되어 있으며 화정리가는 길을 물어보니 이 길이 맞다고 했다. 지나는 차량이 한 대 서더니 같은 방향이면 타란다.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를 걸어서 답사를 합니다. 호의는 고맙지만 걸어가야 합니다.” 길가 밤나무에 달린 어린 밤송이는 제법 가시를 세웠다. 고개를 넘어 한참을 내려오는 것을 볼 때 방하리의 표고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정리 정자에서 쉬면서 이 마을 친정 나들이 오신 아주머니가 동네 이모님과 정다운 대화를 나눈다. 어릴 적 물레방아, 학교 가는 길, 개울에서 놀던 일 등등... 옛길을 물어보니 우리가 넘어온 길은 최근에 난 길이란다. 우리의 1차 목표가 청수역이다. 청수역은 정수리 정수마을로 시냇가에서 말을 쉬게 했다는 청수 시냇가를 찾아야 한다. 화장실이 급하여 화정리 보건지소에 들어갔다. 일요일인데도 문이 열려 있었다. 메르스 때문에 비상근무인가? 허락을 받아 화장실을 사용하고 보건지소장님과 대화했다. 백의종군로를 걷는다 하니 본인이 백의종군로 개발에 적극 참여를 했다고 한다. 난중일기에 기초하고 옛 어른들이 전하는 옛길을 따라 표지판도 세우고 리본도 달았다고 한다. 순례자를 보며 매우 반갑게 맞아 주셨고 힘내라고 용기를 주었다61일 비가 계속 내렸다. 일찍 출발하여 청수역 시냇가 정자에 이르러 말을 쉬게 하였다.(중략) 고개를 넘어서 드디어 청수역에 도착했다. 정수리 마을 입구의 노거수 아래 학교를 세운 독지가의 비석이 세 기나 있다. 나무 아래에서 간식을 먹으며 땀을 식혔다. 시냇가 나무 아래서 유일한 이동수단인 말을 쉬게 했던 장군님의 숨결을 느껴보자. 예나 지금이나 청수의 시냇물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다.


지족당 조지서의 묘소가 약 4km 떨어져 있다는데 가보지 못하여 매우 아쉬웠는데 옥종면 초입에 큰 신도비가 두 기 있어 살펴보니 하나는 남명 조식 선생의 비요, 하나는 지족당 조지서 신도비다. 자세히 살피니 이 고장의 청렴결백한 청백리 조지서의 묘가 멀리 떨어져 있어 참배가 어렵고 잊혀질까 두려워 뜻있는 사람들이 지혜를 모아 이곳에다 신도비를 세웠다. 조지서는 연산군의 스승이 되었다가 갑자사화 때 연산군에 의하여 저자거리에서 처형 되었으며 그의 아내는 집안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정성으로 삼년상을 치러 조정에서 정문(旌門)을 내렸다. 굳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조상을 섬기는 아름다운 풍속이 사회와 나라를 지키는 근간이 된다.


옥종 파출소 인근에 이홍훈가가 있다는 기록을 보았다. 주린 배를 움켜지고 파출소로 향했다. 물 한잔하라며 친절히 맞아주었다. 냇가를 따라 위로 오르니 큰 은행나무가 있다. 둘레가 10.62m나 되는 은행나무인데 원 둥치에서 자목(子木)이 생겨 이렇게 되었다. 이 은행나무는 고을이나 나라에 큰 일이 생길 때 울음을 울었다는 전설이 서린 신목(神木)이다. 은행나무를 지나 좀 더 오르니 이홍훈가를 복원해 놓았다. 칠천량 대패 소식을 듣고 원수와 상의 후 전황을 살피고자 노량까지 갔다가 돌아오며 유숙한 집이다. 같은 동네 이희만의 집에서 724일 이곳으로 옮겼다. 군관을 거느리고 식솔이 많아져 이희만의 집이 비좁아서 이곳으로 옮겨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곳에서 3일을 묵었다. 옥종면 소재지는 다른 면소재지보다 크다. 치과의원, 시장 등이 성업 중이며, 읍 소재지 정도의 상권이 형성되어있다.


더위에 점점 지쳐간다. 마을 앞 쉼터에서 마지막 간식과 시장에서 산 자두를 먹고 힘을 내어본다. 점점 체력이 떨어졌다. 죽을 맛이다. 덕천 강변을 바라보며 힘들게 걷고 있다. 강변으로가 물에 뛰어 들고 싶었다. 수로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참았다. 좀 더 이동하니 강정(江亭)이다. 정개산성에 있던 진주목사와 전황을 의논하던 장소로 덕천강을 바라보며 뛰어난 풍광을 제공한다. 문암교를 건너 오늘의 종점인 진()배미에 왔다. 진배미는 진()을 친 논배미라는 뜻 일게다. 손경례의 집에 머무르며 군사를 훈련 시켰던 곳이다. 729비가 오다 개다 했다. 아침에 이군거(이천)영공과 함께 밥을 먹고는 그를 체찰사 앞으로 보냈다. 늦게 냇가로 나가 군사를 점검하고 말을 달렸는데 원수가 보낸 군사는 모두 말이 없고 활과 화살도 없어 쓸모가 없었다. 매우 한탄스러웠다.(중략) 라고 기록했다. 진배미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되어있다.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나는 매우 힘들지만 읍성에서 하루 만에 도착한 박호원의 종의 집은 아직 멀었다. 현대를 사는 나는 먹는 것, 입는 것, 신는 것, 다 최첨단인데 당시에는 전쟁 중이라 모든 물자가 부족하고 형편없었으리라. 빗속을 뚫고 더위와 싸우며 한 걸음 한 걸음 원수의 진을 향한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내가 직접 걸어보니 만분의 일 이나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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