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133화 일요걷기 (문학의 길) 여기에 앉아있는 이 순간이 행복이다

청풍헌 2019. 12. 16. 20:40

문학의 길

 바라보면 그림이고, 파도 소리 노래가 되고 갈매기 울음은 시가 되는 곳이 통영이다. 베트남 축구의 영웅 박항서 감독도 베트남 대표팀을 이끌고 공기 좋고 먹거리 풍부하고 따뜻한 통영으로 전지훈련을 왔다. 발길 닿는 곳이 문학이요, 보이는 곳이 예술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라성 같은 문인들의 흔적을 찾아보는 문학의 길을 떠나보자.

 강구안은 애환이 깃든 곳이다. 만남과 이별의 장소요, 성공과 실패의 현장이다. 구마산 선창에서 하룻밤을 묵은 백석은 객선을 타고 강구안에 내려 어슬렁어슬렁 뒷골목을 누비며 난이를 생각했고 김 약국의 넷째 딸 용옥은 남편을 찾아 부산 배를 타고 가는 싼 판이 있던 곳이다. 강구안 데크 공사로 인하여 거북선과 판옥선은 도남동으로 피신했다. 그나마 볼거리였던 전선들이 피신한 후 개미 새끼 얼씬거리지 않는 광장에는 뽑기 장수의 빈 수레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톱 장수 할아버지는 짐을 끌고 와 전을 벌리고 길가에는 생선 말리는 풍경이 정겹기만 하다.

 

남망산 공원 입구의 꽃 시비에 왔다. 시비 뒷면에는 빼곡히 이름이 적혀있다. 꽃 한 송이 모금으로 꽃 시비를 세운 통영은 문학의 고장다운 발상이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도 꽃 한 송이 사 시비 뒷면에 이름이나 세길 걸.....

 봄이면 목련꽃이 아름다운 오르막이다. 문화회관에서 음악제가 열리면 백목련 꽃잎 흩날리는 남망산 오르는 길은 낭만 그 자체였다. 화가 김형근 화백의 생가는 대문이 굳게 닫혀 들어갈 수 없었다. 미술관이 들어선다는 말이 있었으나 소식 감감하다. 정의 비 앞에서 본 강구안은 비극의 현장이다. 이곳에서 이끌려 마산으로, 부산으로, 일본으로, 전쟁터로 떠난 곳이다.

 조각공원을 가로질러 무형유산 전시실을 보고자 했으나 문이 잠겼다. 과거 오광대 공연장을 지나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짧지만 호젓한 길이다. 초정 선생의 시비에 왔다. 초정 김상옥 선생과 대여 김춘수 선생의 묘소에 대하여 나의 견해는 이러하다. 몇 년 전 묘소를 찾기 위하여 경기도를 헤맨 적이 있다. 우여곡절 끝에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윤이상 선생의 유해가 모셔져 음악당에 안치되고 이 두 분의 묘소도 고향으로 모셔와 후학들이 찾아보고 기리는 성지가 되었으면 한다.

 이우환의 관계 항은 볼 때마다 경이롭고 철학적이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형상화한 철판과 돌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남망산 정상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는 이유는 하나일 것이다. 육이오 전쟁이 한창일 때 성금을 모아 동상을 세웠다. 이곳에 목조타워를 세운다고 시끄럽다. 찬성과 반대에는 이유가 있다. 통영의 백년대계가 필요하다.

 대 전시실은 년 중 전시회가 열리는 곳이다. 전면부와 창고, 엘리베이터를 리모델링하여 전시실이 훨씬 넓어지고 깨끗해졌다. 많은 미술 단체가 생겨나고 활동을 하는 곳이다. 대 전시실에는 제16회 한국 서예협회 통영지부 회원전이 열리고 소전시실에는 그리고라는 신생 미술 단체의 개막전이 열렸다. 여류화가들로 이루어진 이 단체의 화풍은 꽃과 나무다. 상설전시관에는 기존 화가들이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었다. 우아하게 전시회를 감상하고 공원을 내려왔다.

 

김춘수 생가 앞의 호떡집에서 호떡으로 요기를 하고 동피랑을 올랐다. 동피랑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건물이 들어서 지형이 바뀌고 있었다. 당초의 목적은 퇴색되고 자본가들의 잠식만 늘어났다. 동피랑 산허리를 돌아 동문 고개로 내려갔다. 화가 이태규 살던 곳과 김용주 살던 곳을 지나 김용식, 김용익 기념관에 왔다. 한국보다 미국에 더 알려진 김용익은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 주옥같은 영어작품을 발표했다. 우리가 알퐁스 도데의 을 공부할 때 미국의 청소년들은 김용익의 해녀를 읽으며 배웠다. 이곳에도 단편집을 살 수 있었으면 한다.

 새로 난 도로를 따라 산허리를 돌아 나오면 전망이 기막히다. 동피랑의 이면이 보이며 강구안과 멀리 공주섬, 한산도가 아스라이 보인다. 약간만 더 돌아가면 세병관 지붕이 웅장하게 보인다. 세병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물이다. 건축 당시 그 건물 형태 그대로다. 웅장하고 사람의 손때가 묻은 살아있는 국보다. 세병관 가는 길에 못새미의 흔적을 찾아보고 영리 청의 복원도 생각해 보았다. 법륜사는 말 구리로 가고 복원을 기대했는데 어느 날 완전 철거되었다.

 세병관에 왔다. 볼수록 멋진 건물이다. 세병관에 올라 따뜻한 햇볕 아래 마루에 앉았다. 여러 이야기가 필요 없다. 그냥 여기에 머무는 것만으로 힐링이며 만족이고 행복이다. 그 무슨 수사가 필요할 것인가? 통영에 산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여기에 앉아있는 이 순간이 행복이다. 그냥 여기에 있는 것 자체가 문화요, 힐링이요, 충만이다.

 중앙시장의 팥 칼국수 집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