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138회 일요걷기 비지정 문화재 답사

청풍헌 2020. 6. 24. 07:11

138회 일요 걷기(비지정 문화재)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이 시는 고은 시인의 그 꽃이라는 작품이다. '잡초' 라는 시에 '잡초라 부르지마라. 나도 이름이 있고 쓰임이 있다'고 했다. 통영에는 지정 문화재가 많이 있다. 화려하게 조명받는 지정 문화재에 가려 소홀히 다뤄지는 비지정 문화재도 있.  '그 꽃'과 '잡초' 처럼 우리도 내려올 때 보아야 할 것들이 있다. 작년 비지정 문화재를 연재하며 답사를 계획했었다.

 

우천이 예보되어 고민되었다. 우의나 우산 준비를 요청하고 고려병원에 모여 인사 후 말구리 비석군으로 향했다. 이곳은 관문사거리에서 원문 방향으로 가야만 접근할 수 있다. 촉촉이 내리는 빗속에서 비석 군에 왔다. 깨끗하게 풀도 베어내고 잘 정비되어 있었다. 과거 길가에 있었던 효열부비를 도로 확장으로 인하여 이곳으로 모아 관리하고 있다. 정려는 가문의 영광이었다. 효부나 열부가 되려면 지방 수령이 예조에 소지나 상서를 올리면 심의하여 정려를 내린다. 또는 임금의 행차 시 직접 전하기도 했다. 정려를 내리면 각종 세금이 감면되고 혜택이 주어졌다. 그래서 당시 폐단으로 열부를 강요하기도 했다. 고성해미당에 있던 허씨 효열각이 시청 직원용 어린이집 건립으로 이곳으로 이전했다. 4대가 3정려를 받은 가문이다.

원문공원으로 가는 길은 짧지만 운치 있었다. 비에 젖은 나무들은 푸르름을 더하고 촉촉한 아스팔트는 마음을 차분하게 했다. 원문공원에 주차하고 원문성으로 갔다.

원문성은 통영성의 외성 역할을 했다. 통제영으로 오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그런 원문성이 아파트 공사로 인하여 발굴되고 우여곡절 끝에 보존하게 되었다. 모래로 덮고 천막으로 덮여있었는데 햇빛에 낡아 야자수 매트로 다시 덮었다.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하여 아래로 내려갔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쓰고 우리는 원문성을 바라보았다. 높이 4m의 웅장한 성벽을 상상하며 기념사진을 남겼다.

 

우리는 오횡묵비로 갔다. 원래 오획묵비는 원문성 안에 있었으나 어떤 이유로 성문 밖에 세워졌는데 넘어져 두 동강이 나 다시 세웠으나 또 넘어져 민원에 의하여 엉뚱한 곳에 세워져 있다. 이 비는 오횡묵이 쓴 함안총쇄록에 자세히 기록되어있다. 어느 날 원문성 안으로 들어서니 못 보던 비석이 있어 자세히 살피니 통정대부행함안군수전별향사오공횡묵사적비라 적혀 있고 내용은……. 하다라고 기록했다. 오횡묵은 통제영을 오가며 함안총쇄록에 많은 기록을 남겨 통제영 복원의 기초가 된 사료다. 이런 역사적인 비를 엉뚱한 곳에 세웠다.

다시 걸어서 원문성문터로 갔다. 성문은 홍예문이며 1층에는 삼도대도독원문, 이층에는 삼도대원수원문이라는 편액을 달았다. 이 성문을 공신루라 했다. 암행어사도 허락을 받고 출입을 해야 하는 군영이었다. 지금도 성문 안 우물이 있으며 오횡묵비의 거북 받침대가 있었던 장소를 주민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죽림의 충무도서관 뒤의 배쟁이 펜션에 가면 서유대 통제사 비가 있다. 이 암각비는 원래 원문성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었으나 고속도로 공사 시 이곳으로 이전하여 방치되고 있었다. 도로 입구에는 아무 안내판이 없다. 아는 사람만 찾아올 수 있다. 서유대 통제사는 세병관 현판을 쓴 통제사로 그의 무익공행장에 기록되어있다.

다음 코스는 장대고개 거제해미당의 이응서비에 갈 것이다. 시청 앞에서 화장장 쪽으로 가 주차를 하고 거제 해미당으로 오르는 좁은 길을 따라 올랐으나 비로 인하여 풀숲을 헤치기가 힘들어 다음에 보기로 하고 찹쌀다방으로 향했다. 찹쌀다방 뒤편 큰 바위에 통제사 이응서 암각비가 있다. 앞으로 경사진 바위를 다듬고 글자를 새겼다. 이응서 통제사는 덕장으로 명성을 날린 무장이다. 그 기록은 황헌의 매천야록에 나온다. 고마운 것은 찹쌀다방에서 암각비에 오르도록 사다리를 설치하고 뒷문을 항시 개방한 집주인의 배려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덤바우골에 있었던 김영 각암비가 사라진 지 50여 년 만에 복원했다. 김영 통제사는 송정동에 큰불이나 마을의 집이 전부 불에 타 겨울을 날 수 없어 남망산 금송지역을 해제하고 소나무를 베어 집을 짓도록 구호한 대가로 파직을 당했다. 당시 은혜를 입을 주민들이 세운 불망 암각비가 길을 내면서 훼손하여 이번에 복원하였다. 나쁜 통제사도 있지만, 백성들을 위하여 금송지역의 나무를 베어 집을 짓도록 선정을 베푼 통제사도 있다.

동문 안 새미로 이동하여 현존하는 통영성 내의 9() 중 한 곳임을 확인하고 점심을 먹었다. 비가 그치지 않아 오후 답사는 다음으로 미루고 답사를 마쳤다.

짧지 않은 시간 비지정 문화재를 둘러보았는데 나름의 큰 의미가 있었다. 이런 비지정 문화재가 잊히고 버려질 것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숨 쉬고 호흡할 때 그 가치가 빛날 것이다.

이런 작고 소중한 비지정 문화재도 훌륭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며 많은 시민이 함께 느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