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나의 이야기

진주 박물관 톺아보기

百世淸風 2026. 1. 31. 22:01

영어 시험이 끝나고 몸살이 왔다. 
육체적으로는 당화혈색소가 7.4로 올랐으며,
정신적으로는 피폐해졌다.
쉬고 싶었다.
아침에 목욕 후 진주 실크박물관, 남성당 교육관, 국립 진주박물관으로 갔다.
 
실크박물관은 한상민이 근무했는데 안내 데스크에 물어보니 12월까지 근무했단다.
실크는 누에고치의 실로 만든 비단으로 진주에서 큰 산업을 이루었다.
대동공업사와 협업으로 기계화가 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고 한다.
 
그 옛날 철용이네 집에서 우물가에서 누에고치 실을 감는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길쌈하는 도구며 풀 빗이며 익숙한 도구가 보였다.
할머니 생각이 났다.


 
남성당 교육관은 김장하 선생의 한약방을 리모델링하여 만든 교육관이다.
김장하 선생은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장학금을 받아 공부를 한 계기로 전국에 알려졌다.
문형배 헌법재판관은 윤석열을 파면시킨 재판관이다.
그전에 김주완 기자의 '줬으며 그만이지'라는 다큐멘터리가 우수상을 받으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김장하 선생은 남성당 한양방을 운영하면서 번 돈으로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국가에 헌납하고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 조건 없이 장학금을 준 분이다.
어느 날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선생을 찾아와 '선생님 장학금으로 공부를 했는 데 성공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에
'이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한테 미안해할 것 없다. 
갚으려면 이 사회에 갚아라'라고 했다는 말이 깊은 인상이 남았다.
1층은 한약방의 당시를 그대로 살려 재연해 놓았다.
2층은 진주정신인 형평운동과 3.1 독립운동, 어린이 운동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3층은 교육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진주 중앙시장에서 유명한 진주비빔밥집을 찾아갔지만 대기줄이 길어 다른 곳을 찾아갔다;
국밥은 괜찮았으나 역시 비빔밥은 별로였다.
 
진주박물관의 암행어사 특별전을 보았다.
박물관 무지엄샾에서 천년진주 진주목이야기 도록을 구했다.
지난번 한국사 수업 때 구하지 못하여 아쉬웠는데 3만 원 주고 구했다.
일본 역서 번역 여부를 물었으나 관계자에게 문의하여 연락 준다고 했다.
촉석루까지 두루두루 살피고 왔다.
 


내일부터 2월이다.
2월에는 계획을 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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