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217회 통영성 답사기

百世淸風 2026. 4. 12. 21:06

217회 통영성 답사기

통영은 임진왜란으로 생긴 도시다.

임진왜란은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각 영주들을 달래기 위하여 명나라를 정복하여 그곳에 영지를 주겠다고 호언장담하면서 조선을 명나라로 가는 길목으로 정하고 침략하였다. 육지에서는 파죽지세로 올라가 한양을 20여 일 만에 함락하였다. 하지만 바다에서는 조선 수군의 이순신이 있어 연전연승하였다.

이후 강화기에 명나라와 일본의 협상이 결렬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시 조선을 침략하여 정유재란을 일으켰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죽고 일본군의 철수로 전쟁이 끝났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의 재침을 우려하여 통영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열고 훈련 및 방비에 임했다.

수군이 훈련을 나간 후 세병관 및 각종 관아를 방비하고자 통영성을 축조하였다. 통영성은 4대 문과 3곳의 연못과 9개의 우물이 있었다. 이 통영성의 흔적을 따라 오늘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다.

먼저 삼도수군통제영의 정문인 남문 터에서 걸음을 시작했다. 남문 터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통영중앙시장이 나온다. 중앙시장은 통영 성벽을 따라 길게 형성되었다. 동포루로 오르는 입구에 동암문이 있었다. 일면 시구문이라고도 했으며 시체가 드나든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언덕을 오르면 동피랑이 나온다. 동피랑은 우리나라 벽화의 효시로 잘 알려져 있다. 벽화는 2년마다 새로운 그림으로 바뀐다.

동피랑을 지나 북쪽으로 내려가면 동문 고개가 나온다, 동문이 있던 고개라 동문 고개이다. 그곳을 지나 언덕을 올라 다시 내려서면 북문 터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여황산을 오르는 길은 가파른 경사길이다. 토성으로 이루어진 성벽은 대부분 무너져 흔적만 남았다. 깔딱 고개를 오르면 북포루가 나온다. 북포루는 통영의 진산 여황산 정상에 세워진 포루이다. 북포루에서 보는 통영 시내는 전망이 기막히다. 멀리 거제와 한산도가 가까이 보이고 견내량 및 진해만까지 아스라이 보인다.

급경사면을 내려오면 대밭이 나온다. 대밭을 지나면 사진 찍기 좋은 곳이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자세를 취하고 추억을 남겼다. 조금 더 내려오면 호주 선교사의 집이 있던 공터가 있다. 우리는 서문 터에서도 추억을 남겼다. 언덕의 푸른 잔디와 맑은 하늘이 잘 어우러져 사진 찍기 좋은 곳이다.

서문고개에서 서포루로 오르면 통영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좋은 곳이다. 동포루를 지나 성벽 터를 따라 내려오면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이 나온다. 통영 시내에 이런 길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의 좁은 골목길이다. 이곳 어디에 남암문이 있었다. 이 문은 미륵산의 화기를 막기 위하여 항상 닫아 놓았다고 한다. 만하정 터를 지나 내려가면 남문 터가 나온다.

이렇게 사라진 통영 성벽을 따라 한 바퀴 걸었다. 사라진 통영성을 따라 걷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 삼도수군통제영의 관방성인 통영성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통영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며 시각적인 전체를 익힐 필요가 있다. 그 바탕에서 내용을 알차게 채워 넣으면 될 것이다.

우리가 통영에 있으면서 통영의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