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518사적지 탑사기)

百世淸風 2026. 5. 24. 22:29

제220회 오월의 길
오월은 실록의 계절이다. 연두에서 녹색으로 온 산과 들이 옷을 갈아입는 계절이다. 푸르름의 산과 들도 좋지만, 또한 오월은 가슴 아픈 일도 있었다. 그것은 광주에서 일어난 5.18 민주화 운동이었다. 산과 들로 자연을 찾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장소도 확인해 보고 의미를 느끼는 게 좋을 것 같아 광주 518 사적 답사를 계획했었다. 문화관광 해설사를 신청하고 연락되어서 일정을 조율하여 광주 5.18 국립묘지와 구 묘지를 참배하고 사적지로 가는 것으로 계획했다.
최근 518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여러 무리가 있었다. 특히 스타벅스에 ‘탱크데이’와 ‘책상에 탁’하는 것 때문에 스타벅스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광주를 방문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버스에 이동 중에 서로 행동을 조심하자고 당부했다. 우리가 책에서 또는 언론에서 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간접적으로 듣는 것보다는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는 게 더 중요함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 성지인 광주를 방문하게 되었다.
국립 518 민주 묘지에 도착했다. 사전에 분향을 신청하여 임을 위한 행진곡에 따라 분향소에서 내가 대표 분향했다. 장내 방송에 통영길문화연대가 분향한다는 방송이 들리면서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분향을 끝내고 우리는 묘소로 향했다. 묘소에는 1,100여 기의 묘소가 있었다. 하나하나 기구한 사연에 가지고 묻힌 오월의 영령들이다. 잘 알려진 윤상원과 박기순 묘소를 비롯하여 여러 묘소가 있었다. 하나하나 당시의 사연을 설명하면서 안내했다. 묘소를 설명하고 있는데 다른 한 팀이 분향하고 있었다. 그 팀들은 윤상원 기념재단에서 참배를 왔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민주화 열사들의 기념재단을 만들어 그것을 기리고, 이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광주 광산구청장을 만나 윤상원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었다.
구 묘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역사의 문 쪽으로 갔다. 거기서도 들불열사기념사업회에서 제21회 들불상 시상식이 있었다. 들불열사기념사업회는 들불야학을 설립하고 운영한 7인의 들불 열사를 추모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시민단체이다. 수상자는 최근 가자지구로 가는 구호선에서 나포되어 이스라엘에 붙잡혔다가 구출된 활동명 해초인 김아현 씨가 수상자였다. 들불야학이 일어났던 광천시민아파트는 들불야학 옛터로 사적지 제27호로 지정되어 있다. 518 사적지 중심으로 여러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는 구 묘지로 가는 오솔길을 따라서 구 묘지로 갔다. 이 길은 구 묘지에서 유골을 신 묘지로 이동했던 길이라 했다. 구 묘지는 청소차에 실려 온 시신을 묻었던 곳으로 518 운동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으면서 신 묘지가 국립묘지로 되면서 구 묘지에서 신 묘지로 이장하면서 유해를 옮겼던 길이라고 했다. 구 묘지는 노동운동 등 여러 사람이 묻혀 있는 묘지이다. 또 광주에 참상을 서방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 기념비도 있었다. 그 아래 입구에는 전두환의 비석을 땅바닥에 묻어 묘지에 가는 사람이 밟고 가도록 땅바닥에 묻어 놓았다. 우리는 구 묘지까지 참배하고 버스를 타고 광주 시내로 이동했다.
우리가 예약한 식당은 남도정 식당인데 지역민들에게 알려진 맛집이었다. 해설사에게 부탁하여 예약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재명 대통령이 앉았던 자리라고 의자에 붙어 있었다. 예약한 덕분에 우리는 가성비 좋은 남도의 정식을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고 518 사적지를 가기 위해서 시내를 걸어서 나왔다.
이동 중에 광주극장을 보았다. 영화 포스트가 그림으로 그려진 아주 오래된 극장이었다. 1935 년도에 세운 극장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렇게 오래된 극장이 남아 있는가 하고 건축가이신 설종국 회원이 감탄했다. 그런데 조금 가다가 광주 극장 사장을 만났다. 인사를 하고 코스에는 없지만 극장 안내를 받게 되었다. 극장은 이층으로 되어 있었고 아주 컸다. 오래된 극장이라고 하지 않을 만큼 시설도 괜찮았다. 지금도 영화 안내 간판을 그림으로 그려서 걸고 있었다. 그만큼 옛 전통을 가지고 있는 극장이었다. 광주에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쓰는 광주좌가 있었고 또 조선 사람들이 갈 만한 극장을 이렇게 기금을 모아서 만든 극장이 지금 광주극장이라고 했다. 극장에 앉아서 극장에 관한 이야기와 건물에 관한 이야기 또는 극장이 어떻게 지금까지 유지돼 왔는지 이야기를 듣는 기회를 가졌다. 간판을 그리는 공간까지 개방하여 우리는 정말로 귀한 장면을 보고 느꼈다.
광주에 가장 중심지가 금남로이다. 금남로는 매월 한 번 토요일 차 없는 거리를 만들어 각종 행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톨릭 센터로 갔다. 지금은 5.18 기록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518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민간인 기록, 학생들의 일기, 공문서, 사진 등 모든 기록물이 유네스코의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다음은 전일빌딩으로 갔다. 전일빌딩은 10층인데 당시에 금남로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그 안에 전남일보가 있어 전일빌딩이라고 했다. 지금 이름은 전일빌딩 245인데 빌딩의 주소가 금남로 245번지이며, 헬기 총탄 자국이 245곳에 났다고 했다. 우리는 전일빌딩을 올라갔다. 옥상에서 내려다본 전남도청, 금남로, 상무관, 광장을 훤히 볼 수 있었다. 옥상에서 여러 가지 설명을 듣고 실제 실내에 있는 총탄 자국을 확인하러 내려갔다. 헬기의 총탄 자국은 바깥쪽에 나 있기 때문에 반사경으로 표시했다. 그곳에서 당시 시민군으로 총을 들었던 분을 만났다. 해설하고 계셨다. 당시의 생생한 증언을 듣게 되었다. 마지막 전남도청에 올라가 본인은 전방을 담당하여 총을 들고 있었는데 계엄군들은 후방에서 왔다고 했다. 여자들이나 학생들에게 다 엎드리라 했는데 거기에 어떤 여성이 오빠 총을 쏘면 안 되니까 실탄이 든 탄창을 빼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총알이 없는 총을 들고 있을 수 없어서 엎드려 있다가 계엄군에게 잡혔다고 했다. 만약에 그때 총을 들고 있었다면 본인도 수십 발의 총탄을 맞고 함께 있던 학생들과 어린 여자들도 다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살아있는 것도 좀 부끄럽고 또 여러분들 이렇게 찾아봐 주셔서 참말로 고맙다고 했다. 오늘까지 살아 주셔서 감사하다고 눈물을 훔치는 회원이 있었다. 그분이 생생하게 증언했지만, 트라우마는 평생에 짐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나와서 증언하고 안내를 하는 그 자체도 끊임없이 아픈 기억을 더듬고 토해내야 하는 그런 힘든 일이다. 그런 아픔을 당한 사람이 지금도 살아있고 또 그 당시에 죽은 사람도, 그 가족들도 있는데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감정을 폭발시키고 아픈 가슴을 후벼 파는 그런 이런 행동은 정말로 지향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아픈 역사를 지녔는데 그 아픈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전일빌딩을 나와서 전남도청으로 향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공식적으로 공론화한 것은 김영삼 대통령이라고 했다. 전남도청을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이곳을 기념관으로 만들고, 또 국립묘지를 시작한 것도 김영삼 대통령이 했다. 전남도청은 4여 년간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은 기념관으로 재개관했다. 안에는 당시 시신을 발견했던 장소를 동판으로 표시해 놓았다. 계단 밑에, 정문 앞에 있었으며, 도청 안의 최후 항쟁이 있었던 그곳에도 시신을 발견했던 자리에 명패를 동판으로 새겨 놓았다. 전남도청 안에는 마지막 방송을 했던 박 영순 씨가 영상으로 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를 다 죽이려고 합니다. 여러분 금남로로, 전남도청으로 나와 주세요.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겁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하는 절절한 마음으로 방송하고 있었다.
방송에서 한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와 윤상원이 도청에서 사람들을 내보내며 남긴 말 중 “여러분들은 살아서 꼭 이 일을 후세에 전해달라” 하는 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 또한 가톨릭 센터에서 본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눈물이 났다. 학교 휴교령이 끝나고 다시 학교에 간 어린 학생들이 옆자리에, 앞자리에 빈자리가 생겨서 그곳에 꽃은 놓고 묵념을 하는 사진을 보았다. 그 어린 학생이 무슨 이유로 총에 맞아 죽었는지 그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너무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오월 걷기를 마쳤다.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괜찮았다고 했다.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민주주의는 이렇게 큰 희생을 치르고 발전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민주의의를 누리고 있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향해 갈 수 있다. 오늘 우리의 이 발자취가 다가오는 선거에 꼭 참여하여 민주주의가 잘 발전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일상으로!
2026년 5월 24일 초파일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