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제도 이야기

망치산 한바퀴1 (금포金浦=쇳개마을에서 대리大理건네몰 마을까지)

청풍헌 2013. 2. 12. 00:18

일시:2013.2.11.14:00~17:56:41 (3:56:41) 

거리:12.57km

코스:성포중학교앞-금포-대리-언양-굴국재-장자골-지석 명성암-사근-동메-학교앞

 

작년 여름 학교 가는 길을 탐방 하고자 학일,우석,용재는 학교앞에 모였는데

비바람이 몰아처 탐방을 다음으로 미루고 가조도 닭섬으로 가서 한잔술로 아쉬움을 달랬는데

마음 한쪽 구석에 언젠가는 탐방하여 친구들과 같이 그길을 걷고싶어

오늘 길을 나섰다.

 

늦은 아침을 먹고 우석이에게 전화 했으나 불통!

배낭에 먹을걸 챙겨넣고 차를 몰고 길을 나섰다.

오늘 가는 길은 곳곳에 친구들이 있으니 전화만 하면 만날 수 있고 모르면 물을 수 있어 좋다.

금포마을

금포마을은 본마을이 꽃밭등 위쪽에 있고 등 너머 마을이 앞등 마을이다.큰 쇳개,작은 쇳개라고 한다. 

지명의 유래는 등 너머에 있는 개가 금개金浦인데 금을 파던 굴이 있었으며 금개를 금생개 혹은 금굴개라고 하다가

한문으로 옮기면서 금포金浦라 했다.

거제도에서 가장 살기좋은 마을로 선정 되기도 했었다.

시작점은 상사근 마을앞이다.

이곳이 정골인데 골이 깊고 물이 많아 큰 고랑이 있었다. 

고개마루에 우측으로 오르는 길이 있는데 공동묘지 가는길이다.

이 길로 오른다. 

약 150여미터 오르면 좌측으로 가는 길이있다.

초입은 흙길인데  조그만 가면 시멘트 포장도로다.

고즈넉한 산길 

 

여느 古城 같은 바위로된 성문이 나타난다. 

여느 집의 입구 대문이었다. 

언덕위에 멋진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다시 한번 금포 마을을 본다.

꽃밭등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온화한 마을이다. 

앞등마을이다.즉 작은 금포 

금포마을은 일찍 기독교가 들어와 새문물을 받아 들이면서 개화를 하여 살기좋은 마을로 가꾸어 왔다.

그래서 마을에 교회가 두개 있다.

 

따뜻한 햇살아래 모이질을 하고있는 토종닭 

매일매일 낳는 계란이 좋은 반찬거리가 된다.

봄감자를 심을건지 농사 채비를 하는 농부 

대리 저수지

언제나 궁금 했었다.이곳 어디가  봉우 친구의 전답이 있다고 햇었다.

한때 이곳에다 대규모의 아파트를 건립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는데...

실제보니 그냥 조그만 포강浦江이네.

뒤돌아서 금포를 바라본다.

이곳의 지명으로는 꽃밭등,당집,큰등,큰쇳개,작은 쇳개,작은 도지,도롬,복지게등,쇠문,솔구뒤,개비랑 고랑,진등 등이있다.

(쇳개:망치산에 철광이 있었다고 하여 쇳개라고 하여 쇳개가 금포마을이 되었다)

대리마을大理=건너몰 마을

삼한시대 두로국의 왕도였고 일제 강점기때 1914년 사등면 사무소가 최초로 이곳에 들어선 역사의 고장이다.

 

두로국 당시 마을 뒷산을 준마령이라 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천단이 있다.즉 소도蘇途다.

소도에 관한 포스팅은 http://blog.daum.net/backsekim/118

소도 오르는 길에 금송대,고난정,본향단,뿔당골등의 유적이 있다.

삼호건덕일월명三好建德日月明이라 하여 덕이있고 해와 달이 밝은 삼호의 고장이라고 한다.

 

논두렁에 매달린 하늘수박.

막걸리에 담가 먹으면 허리 아픈데 좋다던데...

 

조봉우 친구집 가는길!

대야에 시멘트를 부어 만든 국기봉 깃대

창녕조씨 제실 정충사靖忠祀

창녕조씨의 시조는 조계룡이다.신라 진평왕때 보국대장군 상주국 대도독,태자태사에 올라 창녕 부원군에 봉해졌다.

그의 32세손 연은 임란시 신립장군의 휘하에서 전공을 세우고 집에 돌아와 왜구의 기습으로 기왓장을 던지며 격퇴 하고 동문으로 나간후 소식이 없다.

33세손인 조웅상이 피난길에 올라 대구 진주를 거처 거제에 들어온 조상이다.(장평 와우산 유좌)

창녕조공석련 선적비昌寧曺公錫鍊 善蹟碑

행적:셋 도랑다리 놓아 마을길이 좋아졌네

       많은 돈을 혼자 드려 여러사람 도우시다

       가고 오고 편리하니 높은 공적 깊은 은혜

       어찌 말만 칭찬하랴 돌에 새겨 영원토록

 

이 비석은 마모가 심하여 1996년 다시 비석을 세겨 정충사 입구에 세워놓았다.

대리마을은 아직 돌담이 살아있다.

마을 가운데 있는 포구나무(팽나무)

통정대부 병조참판 조치복이 심었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오래된 고목나무에 당산제를 지냈는데 마을에 불길한 일만 생기면 당산제를 잘못지냈다는 탈을 댔다.

이에 1960년초 마을 청년회 조상도가 주동이 되고 조창순이 청년을 인솔하여 당산을 불질러 없앴다.

당산을 불질러 마을에 큰 화가 올거라 했지만 아무탈이 없어 그후 부터 당산제를 지내지 않는다.

사등성

 

대리마을의 지명은 다음과 같다.

치암(꿩바위),솟대거리,쉼바위,금송대,고란정,본향단,절골,군함정들,두언강 들,굴강,임신골,임실개들,소도터,솔태끝,약수터,계신대,기원탑,

사우정,얼음 밭등 바위,뒷뫼,부군산,구 당산등,굽도랑들,건너 몰,베전 논,보양당 들,선바으ㅟ,앵구배미 논,시루떡 논배미,팽개덤벙,포구나무껄 들 등이있다.

언양마을로 가는 길~~~

논배미에 얼은 얼음이 기하학적인 문양를 이룬다.

 

금포 대리를 거처 언양으로 들어간다.

친구들이 학교가던길을 꺼꾸로 탐사하고있다.

언양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기대가 된다.

 

 

 

2013.2.11 백세청풍 김용재

 

참고문헌:사등면지沙等面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