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제도 이야기

장군의 묘

청풍헌 2011. 7. 18. 22:43

 장목진 객사 뒷동산에 장군의 묘가 있다는 친구의 제보로 객사를 찾게 되었다. 

객사의 초입이다. 

현판에 보면 객사란 공무로 출장온 관헌이나 중요한 손님을 맞는 숙소이자

임금님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절을 올려야 하는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공공 시설이란다.

정문과 측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수풀을 헤치고 올라가 풀속에서 찾은 망두석.

아! 여기가 묘지구나.

잡풀이 키를 넘어 사방을 구별 할 수 가 없었는데 망두석이 길잡이 역할을 했네.

수풀에 오롯이 숨어있는 비석.

발로 수풀을 헤치니 나타난 비석.

언듯보아도 장군이라는 글씨가...

묘지에서 내려다본 장목항.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봐도 묏자리 하나는 끝내주는구나.

절충장군 행 용양위 부호군 겸 오위장 광산김공지묘 병좌

절묘하게 햇살이 비춰 그림자가 선명하다.

 

[ 折衝將軍, 行, 龍驤衛 副護軍 兼 五衛將 光山金公之墓 절충장군 행 용양위 부호군 겸 오위장 광산김씨지묘

정3품 무관품계, 벼슬이, 중앙 오위중에 경상도 관활 보직이 없는 오위도총부 종4품벼슬, 광산 김씨의 묘이다.

丙坐 병좌 : 묏자리가 남쪽을 등진 좌향이다.] 

절충장군(折衝將軍)은 일반적으로 무관의 묘비명에 의례적으로 많이 쓰이는 말입니다.(거제도 이야기 고영화님 해석)

비석의 뒷면이다.

다시 고영화님의 해석

 

뒷면에는 1868년 태어나, 사망까지 간단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한자 중간중간 잘 보이질 않아,

그냥 대략적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부인 자녀 등등 가족관계와, 효성이 지극하고 그의 인품과 사람 됨됨이가 우러러 그릴 정도라 하네요.(일반적인 묘갈명) 

 

뒷면의 주어진 단어 몇개로 이 비석의 진위 여부와 건립 시기를 유추해 보겠습니다.

 

1. 長木里 : 하청면 장목방의 관할이었던 곳에 1889년 "장목리(長木里)" 행정구역이 처음 설치 됩니다.

2. 統營郡 : 고성군에서 분리된 진남군이 1914년 거제군과 통합하여 "통영군(統營郡)이 처음 설치되어

   1953년 거제군이 분리 독립하여 오늘에 이르죠.

3. 사등면(沙登面) >> 舍燈面사등면으로 기술되어 있은 것으로 봐서 당시 이 비를 건립한 주체는

   그렇게 학식이나 높은 벼슬을 한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망두석? 의 모양은 대한제국 시절과 일제초기에 대량으로 세워진 모습과 일치 합니다.

 

 

이상과 같이 추정해 보면, 이 묘는 1914년~ 1930년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당시 이 묘소의 주인은 장목진영(장목객사)에서 근무한 분의 무덤으로 보여지고요,

물론 절충장군 정도의 품계는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다만 장목진영의 무관 중에 간부급(9품별장,기패관 등등)이었을 것으로 판단되네요...

1868년 태어나, 이 집안에서 음관(음서)으로 임명되어, 조선말기 약 20~27세의 나이로 장목진에서(1894년 이전) 근무하신 분이, 1920년 전후에 돌아가셔서 이 비문을 만든 것으로 판단 됩니다.

 

장군묘 뒷쪽에 친구집안 선대의 묘가 있어 벌초할때 같이 했다고 하나 6년전 이장을 하여 그때부터

벌초를 하지 않아 묵은 묘지가 되었다.

동네어른을 만나 물어보니 어릴때는 시사를 지낸다고 떡을 해 오곤 했단다.

묵은지는 5~6년 되었다고 하니 친구의 제보와 일치한다.

거제도 이야기 카페에 제보하여 고영화님의 해석을 받아서 여기 기록 한다.

차후 고영화님이 방문하여 정확한 해석을 해주신다니 그때 다시 기록 할련2011년 7월 18일 장목에서 百世淸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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