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통영 소식

진주 박물관 통영 특별전을 다녀와서1 (사람과 물류가 오가는 바다)

청풍헌 2013. 7. 21. 19:32

이것 꼭 사야겠는데?

뭔단다고 살끼요?집에 있는게 통영에 관한 책인데...

그래도 아니다.이런 기회는 한번 밖에 없으며 도록도 사서 모아 놓으면 나중에 좋은 공부의 자료가 된다.

기어이 질렀습니다.

거금 삼만원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관람을 마치고 너무 더워 공북문(북문)으로 나와 편의점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중에 책!하는거 였습니다.

앗차! 그 편의점에 두고왔다.

급히 차를 돌려 편의점으로 가서 책을 찾아 왔지요.

이 책이 2013년 특별전 "통영" 입니다.

252페이지에 달하는 진주 박물관 발행 도록 입니다.

 

지난 4월말 한통의 전화가 왔다.

통영인뉴스 김상현 대표가 진주 박물관에서 박물관 대학 강의를 하는데 통영에 관하여 집중적인 강의가 있다고 했다.

그중에 통영별로에 대한 강의를 최현섭 두류문화연구소 대표가 강의를 한다고 정보를 주셨다.

통영별로라면 내가 직접 걸어서 답사를 했으니 여러 경로로 최현섭님에 대하여는 조금 알았다.

그러나 강의가 목요일이라 가고싶은 마음을 간절하나 회사에도 눈치가 보여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진주 박물관에 접속하여 확인하니 4월 18일 김일룡 소장님의 강의를 필두로  11월 21일 까지 매주 주옥 같은  강의가 있다.

그러나 어쩌랴.

 

그러나 반가운 소식이 왔다.

박물관에서 특별전을 한다고.

평소에는 진품을 좀처럼 볼 수 없는 명조 팔사품과 이운룡 통제사의 집안에서 온 공신록 및 많은 문집을 전시하고

연대도 욕지 노대도의 패총에서 발굴된 유물도 전시한다 하며 꼭 가보라고 했다.

12일 김현구 박사의 강의를 듣고 13일 토요걷기를 하고 14일 진주 박물관으로 향했다.

 

 

진주성 북문인 공북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입장권을 사러 갔다.

안내판에 자세히 살피니 진주시민은 무료라고 한다.

아니 이럴수가!

우리 통영은 어떠한가? 유료 입장하는 세병관, 충렬사, 제승당, 케이블카등등

관광객을 위하여 온갖 불편을 감수 하는데 시민들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꼴랑 케이블카 23% 할인이라니!

시에서 관리하는 문화재는 적어도 통영시민이면 무료나 반값 정도는 해줘야 할 것이다.

우리 고장에 우리 문화재를 우리가 돈주고 보는게 타당한 이치인지?

내 집에 있는 보물을 가족이 돈주고 보는 꼴이다.

 

이 공북문을 바라보면 통영성 남문 복원을 생각한다.

이렇게 근사한 이층 문루인 남문이 복원되기를 기대한다.

멋진 홍예문이다. 

 

진주 남강변의 진주성 경내에 위치한 이 박물관의 계획에는 주어진 진주성의 경관을 파괴하지 않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였다.

따라서 주변 경관보다 낮게 보이도록 규모를 낮추고,

기본적 처리에 필요한 조형도 하나의 지붕에 의해 느껴지는 거대한 스케일감을 피하도록 분절하였으며,

주변과의 조화를 도모하도록 접지되는 부분에 대하여는 진주석을 주재료로 하여 건물 자체가 하나의 조경요소로 느껴지도록 처리하였다.

 내부동선은 관람객을 두 홀에서 2층으로 유입시킨 후 1층으로 연결시키고 있다.(진주 박물관 건물 소개에서)

 

진주 박물관은 진주성 내에 위치한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이다.

석실 고분을 모티브로 설계하여 진주성과 잘 어울리게 지어진 박물관이라 한다.

 

공북문에서 박물관 가는 언덕에 각종 비석을 모아 놓았다.

유독 눈에 뛰는 철비가 있어 살펴보니 병마절도사 정기택이면 통제사를 역임한 분인데...

정기택 鄭騏澤 1890년 3월~1891년 12월 전근을 간 통제사이다.

 

 

1882년(고종 19) 경기도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지낸 뒤, 남병사(南兵使 : 함경도 북청소재의 병마절도사), 이듬해에 평안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1884년 어영중군(御營中軍)에 제수되었고, 1886년 황해도병마절도사,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를 지냈다.
이어 1890년(고종27)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가 되었고 1897년(광무1)중추원(中樞院) 일등의관(一等議官), 1898년 경무사(警務使)를 지냈다. 다시 1902년 평리원(平理院) 재판장(裁判長), 1903년 육군참장(陸軍參將), 육군법원장, 원수부(元帥府) 기록국장(記錄局長), 의정부(議政府) 찬정(贊政) 등을 역임하였다. 1904년에 다시 경무사를 지냈으며, 같은 해에 함경북도 관찰사를 지냈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기택 불망비는 고성 남산에도 있음)

이 포스트 한장에 통영의 모든것이 다 들어있다.

이 특별전은 다섯편의 챕터로 구성 되었다.

 

1.통영의 인문 지리적 환경

2.사람과 물류가 오가는 바다

3.삼도수군 통제영

4.삶과 함게한 문화

5.예향에 빠지다

 

1.통영의 인문 지리적 환경

통영이라는 이름은 삼도수군 통제영에서 따온 지명으로 임진왜란이후 한산도에 통제영을 설치한 이래  

여러곳을 전전 하다가 이곳 고성반도 끝부분에 자리하여 고종 32년 1895년 폐영때가지 존재한다.

 

▲ 통영지도

 

 2.사람과 물류가 오가는 바다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 연대도와 욕지,상노대도에서 조개무지가 많이 발굴되어 각종 뮤물이 나왔다.

남평리 고인돌 유적에서는 석검,석촉등 청동기 유물이 출토 되었으며

삼국시대에는 소가야의 영역으로 남명리에서 각종 철기가 발견 되었다.

고려시대의 유적으로 안정 강골산에서 출토된 제사유적이 있다.

 

발찌!

너무나 황홀한 자태로 5,00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연대도 7호묘에서 발굴된 발찌는 돌고래,수달,너구리의 이빨로 만들어진 신석기 시대의 남자 인골의 발에서 출토 되었다.

그외 꾸미개와 각종 토기,조가비 팔찌,낚시,작살등도 있다.

 

한편 산양면 남평리 고인돌 유적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의  유물은 마제석검,석촉,적색 마연 토기등이 나왔다.

또한 이곳에서 고인돌과 함께 삼국시대의 유구가 발견 되었는데 목곽묘에서 고배(굽 높은 가야토기)와 호,완,철기등이 출토 되었다.

 

안정리 성우 오스타 아파트 건립지에서 발굴된 석실묘에서는 고배,개,단경호,장경호,철기 뮤물을 발굴하여 이곳이 신라에 편입됨을 알았다.

 

고려시대의 유적인 안정리 강골 유적과 달골산은  LNG GAS공사 자리다.

이곳에는 고려시대의 건물지가 나왔으며(춘원역으로 비정) 달골산 제사유적에서는 철마와 진단구(의장물을 넣은 항아리)가 나왔다.

 ▲ 5,000년의 세월을 뚫고나온 발찌

  

 

 

 

▲ 철마유물

 

2013.7.14 진주 박물관에서 백세청풍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