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가족 이야기

갑오년 설날 용왕님께 찹쌀떡을 바치다.

청풍헌 2014. 2. 4. 16:19

갑오년 청말띠해 설날이다.

해마다 맞이하는 설날이지만 언제까지 부모님이 건강하게 계실지 걱정은 되지만 지금까지는 큰 축복이다.

아버지가 1924년생으로 91세 어머니는 89세이다. 지금가지는 두분이 아웅다웅 싸우기도 하지만 잘 버티고 계신다.

올해는 친척집 선물을 찹살떡을 주문하여 맞추었다. 통영 꿀빵집인데 케익 박스포장을 하여 갖고왔다.

 

작은 설날에 모여 고성 월평리 국수집에 가서 참치 2kg을 사와 맛있게 먹었다. 2kg에 12만원 이라 하는데 안다고 만원 깍아주어 11만원 주었다.

형님이 참치를 잘 요리 함으로 형님을 기다려 요리하여 먹었다. 설날 아침에 새배를 드리고 나니 할말이 있다며 식구 전부를 불러 모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실려고 그런지 무척 궁금했다. 안그래도 몇 달전 형수님과 다툼이 있어 바짝 긴장했다.

아버지 께서 하시는 말씀이 만약에 둘중에 한사람이 먼저 죽고 요양원에 가게 될 형편이 생기면 자식들이 그 비용을 부담 해야 하는데

그게 걱정이라고 말씀 하시며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아서 그 비용을 충당 하라고 하신다.

주위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다며 자식에게 부담주기 싫은 눈치다. 그때되면 형편대로 의논하여 하겠다고 했다.

 

형님은 시위원 출마 문제로 김의원과 이야기를 했는데 본인이나 주위에서 출마를 권유하여 뜻을 두고 있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형님은 공무원으로 방점을 찍지 못하신것에 대하여 항상 아쉬워 했다고 한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마지막 봉사 할 시위원 출마를 저울질 하고 계셨다.

김한표 의원은 본인도 야인으로 12년간 고생했는데 비록 국회의원에 당선 되었지만 집안은 말이 아니게 기울어졌다.

김실장(62)이 나이도 있는데 떨어지면 가족에 큰 데메지가 있다며 걱정이 된다.

본인선거(국회의원)도 2년반 남았는데 차기 선거까지 좀 도와주면 않되겠나 하셨단다.

형님은 고민을 해보마고 했다한다.

 

동생은 막내가 부산외국어대학교 국제학과 1학년인데 전공과 적성이 맞지 않아 고민중이라고 했다.

또한 개인적인 신상을 이야기 했다.큰 애는 인도로 배낭여행 중이라 이번 설에는 참석을 못했다.

나 또한 여러 이야기를 했다.뭐가 적합한지 어떠한  일을 해야할지 열심히 찾고 있다고...

 

 

▲세배를 받고 계신 부모님

▲형님 내외

▲본인과 아내

▲막내

▲아들

▲아들에게 덕담을(집안의 모든것을 지고 가야 할 책임이 크다)

 

성포 작은아버지 식구들이 왔다. 세배를 하고 세병관을 관람하기 위하여 길을 나섰다.

세병관은 2월 20일경이면 입장료 3,000원을 징수 한다. 통영의 중심 세병관을 보고자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라왔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까지 세병관에 꼭 가봐야 한다며 따라 나섰다. 세병관은 볼때마다 멋진 곳이다.

현판을  비롯하여 두룡포 기사비며 지과문, 망일루, 수항루 등등...

 

세병관 경내로 올라왔다.조선 수군의 블랙박스 세병관 46개의 현판이 있다는 사실에 다들 놀란다.

전폐단의 기운을 받고 전부 드러 누우라고 했다. 국보 305호에 와서 누워 봐야 한다고 하며 천정을 관람했다.

단청 작업이 완료되어 그림이 뚜렸햇다.옛날에는 단청이 낧아 희미하여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 좀 아쉽다.

세병관 현판 앞에서 기념 사진을 남기고 성포로 출발했다.

 

▲망일루 앞에서

▲세병관경내 전폐단에서

▲모름지기 세병관 천정은 누워서 봐야 한다며...

▲세병관 앞에서~~~~~(은하수를 끌어와 병장기를 씻었다)

 

성포에는 큰집과 작은 집이 있다.

내가 기억을 할 때 부터 명절날에는 성포로 다녔다.먼저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가 성포에 계셔 항상 인사를 드리려 다녔다.

성포는 한때 번영의 상징 이었다. 부산에서 여수 목포로 이어지는 뱃길의 중간 기항지로 거제로 오는 모든 물산이 지나는 곳이었다.

거제대교가 놓여지고 육지로의 차량 통행이 원할해지고 연안 여객선의 폐지되며 쇠락의 길을 걷고있다.

지금은 거가대교의 개통으로 사통팔달 교통이 원활해져 여전히 초라한 항구로 전락했다.

 

성포에 도착하여 차를 주차하고 트렁크에 실린 찹쌀떡을 내리기 위하여 트렁크를 열었다.

아내가 트렁크에서 떡을 내리며 케익 포장용 박스의 손잡이를 들고 내려 돌아서는 순간 손잡이가 찢어지며 찹싹떡은 바다로 풍덩 빠졌다.

이크! 큰일났다. 비닐 포장덕분에 즉시 가라 앉지는 않아 옆에 배가 있어 올랐다.

그러나 떡 상자는 야속하게 가라앉고 말았다.갈구리로 바다에 가라앉은 떡 상자를 살포시 건져 올렸는데 상자가 풀리며 이내 찹쌀떡은 바다로 스르르 풀렸다.

아! 이런일이!... 

그래! 생각을 바꾸자. 정월 초하룻날 용왕님에게 선물을 했다 생각하자. 그래서 올 한해는 용왕님이 보우하사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 릴 것이다.

 

작은집에서 식사를 하고 큰집의 형님댁에 갔다.큰집은 성포에서 유일하게 남은 일제 강점기의 건물이다.

1935년 성포수혐장 관사로 지어진 건물인데 지금까지 살고 계신다.

큰집 형님은 거제시의회 의원을 두번이나 하시고 사근 문중의 문장을 하고 계신다. 집안 일의 대소사를 항상 의논하고 결정한다.

조카들이 모여  세배를 하고 가조도로 향했다. 가조도에는 올해 101세가 되신 고모님이 계신다.

1세기를 넘기신 고모님은 작년에 백수잔치를 했다. 우리 집안은 장수 집안임에 틀림없다.

할머니는 92세에 졸 하시고 큰아버지는 95세 작은 아버지는 87세에 졸 하셨다.

지금 아버지는 91세이며 고모님은 101세이다.

아무리 장수 집안 이라도 본인 건강 관리가 중요하다. 그만큼 관리를 잘 했다는 이야기.

 

2014년 갑오년 음력 정월 초 하룻날 성포 바다에서 용왕님에게 찹쌀떡을 바친날 백세청풍 김용재

▲성포항

▲손잡이만 남았다

▲용왕님께 바친 찹쌀떡  

▲성포에서 유일하게 남은 일제 강점기때 지는 집(큰집)  

▲올해 101세인 고모님(지난해 백수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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