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통영 소식

착량교와 김삼주 이야기

청풍헌 2014. 2. 6. 10:25

김삼주(金三柱)1849~1925

통영 유수의 부호이며 또한 향장鄕長이기도 하다.

근면으로 치부致富에 뜻을 둠과 동시에 빈민 구조와 기타의 자선 사업에 희사도 많이 한다.

1907년 사비를 던져 통영면에서 산양면으로 통하는 착량교를  가설 하였다.

그리고 다시 1915년 7월에는 큰 비용을 들여 석교로 개조 하였는데 군근업계에서는 교반에 기념비를 세워 그의 기특한 선행을 표하고 있다.

통영군상업회의소 회두會頭와 특별위원으로 선출된 적이 있는데 현재는 통영군 지주회 회장이기도 하다. (교반:다리가 놓인 끝자리)

경남 통영군안내 제17 잡록 인물편 1915년 10월 15일 간행본

 

 

나무다리(옮긴사진)                                                                                                   돌다리(옮긴사진)

 

 

통영의 산양면은 미륵도인데 물이 들면 섬이요 썰물이 되면 연결되는 이 목을 착량포 또는 굴량포, 굴포량이라 했다.

최초의 기록으로 난중일기와 임진장초(이순신 장군의 장계)에 기록되어있다. 이후 이곳을 굴포, 굴량, 착량으라 칭하고 나무다리를 놓아 굴량교라 햿다.

이후 여러차례 이곳을 매웠다가 다리를 놓기를 반복하다 마지막으로 1896년 주민들이 힘을 모아 목을 파고 다리를 놓았다.

 

이 다리는 자주 무너져 융희1년(1907) 이 고장의 독지가 김삼주가 사재를 털어 나무다리를 놓고 보수 관리비를 마련하여 관리했다.

나무다리는 태풍이나 자연적인 재해로 자주 무너지자 통영성벽을 헐어 다시 돌다리를 1915년 7월에 준공했다.

이때 진남군 서면과 산양면민들은  다리를 놓아준 은헤를 기리기 위하여 송덕비를 세웠다.

이후 통영운하와 해저터널을 가설하면서 착량교는 헐리고 한동안 방치되어 있다 1967년 충무교가 세워지며 산양면의 짜투리 땅에 송덕비를 모아 세웠다.

 

3기의 비석과 하나의 돌장승이 있는데 전출신김공삼주송덕비前出身金公三柱頌德碑는 나무다리를 놓아준 기념으로 세웠으며

독지김삼주씨영모비篤志金三柱氏永慕碑 2기와 독지김공삼주시헤비篤志金公三柱施惠碑는 돌다리를 놓아준 기념으로 통영군수와 군민들이 세웠다. 

돌장승은 돌다리 양쪽 난간대 끝단에 있던 것인데 3기는 어디로 사라져 없어지고 1기만 남아서 그 흔적을 전하고 있다.

 

김삼주는 지금으로부터 150년전 통영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모진 가난과 싸우며 열심히 재산을 모아 나이 50이 되기전에 3천석의 큰 부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재산 불리기를 멈추고 불우이웃 돕기와지역 사회의 공익 사업에 자기 재산을 쏫아 부었다.

예를 들면 흉년이 들어 굶는 사람이 있으면 큰 가마솥을 여러개 걸어놓고 끼니마다 무료급식을 하였으며 태풍으로 이재민이 많이 생기는 해는

곳간을 열고 돈과 곡식을 풀어 이들을 구제 하였다.가난한 노동자에게 옷가지와 양식을 나누어 주는가 하면 영세 상인들의 세금을 대신 내주기도 하고 각 동리 마다 기금을 만들어 가난한 병자들의 치료비로 쓰게 하였다. 통영 시내의 공동 우물을 모두 고치는가 하면 견내량에 무료로 나룻배를 운항 시키기도 했다.이러한 온갖 사회사업으로 봉사하던 그분은 1907년 판데목에 역시 사재를 털어 나무다리를 놓고 양쪽면에 많은 돈을 맡겨 다리를 손보게 했으나 그래도 오래 견디지 못하자 1915년 나무다리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다 무지개 돌다리를 놓았으니 이것이 착량교다. 그후 일제가 해저 터널을 건설 하느라 착량교를 헐어버리지만 이 다리는 12년 동안 미륵도를 시내 육지부와 잇는 하나뿐인 길이요 다리였다. 가운데 송덕비는 김삼주 어른이 처음 나무다리를 놓아준 공덕을 다리 양쪽의 면민들이 고마워서 세운것이고 나머지 2기의 영모비와 아까 봉평동에서 본 시혜비는 돌다리 착량교를 세워준 은혜를 당시 통영군수와 통영군민 그리고 시내에서 양태갓을 팔던 상인들이 각각 세운 것이다.

영수의 통영 찾아보기 아하, 그래서 이렇구나!  정갑섭 2002년 통영문화원

 

99년전 통영의 거부가 노블레스오블리제를 시행한 흔적을 살펴 보았다.

진정한 부자는 돈을 잘 쓰는것이라 한다.

온갓 사회사업을 하며 섬으로 건너 다니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재를 털어 나룻배를 운항 시키고 다리를 놓아 사람들이 편리하게 다니도록 했다.

현재의 거부들은 이 사회를 위하여 무슨 일을 했을까?

거부가 아닌 졸부???

 

2014.2.6 통영에서 백세청풍 김용재

▲충무교 쌈지공원에 있는 김삼주 공덕비

▲1907년 나무다리를 세워준 고마움으로 향리들이 세운 비

▲1915년 돌다리를 세우고 군수와 군민등이 세운 비

▲석교 준공 기념 영모비

▲봉평동 비석군에 있는 석교 건설 시혜비

▲석교石橋 양쪽에 있던 난간 받침용 돌장승

▲난간용 석장승

 

 

▲충무교 산양면 쪽에 있는 김삼주 송덕비군

 

▲거제 견내량 비석거리 당산나무 아래에 있는 김삼주 영세불망비

▲충무교 원경

▲충무교의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