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30회 토요걷기(구국의 해안길2) 야생 동물에게 동달습지를 분양하다

청풍헌 2014. 3. 11. 11:46

마술의 펜이란 칭호를 얻은 김용익 묘소와

한산대첩의 시발점인 간섬까지 "구국의 해안길2"을 걷습니다. 

 

일시:2014년 3월 8일(토) 09:00 용남면  법원앞

코스: 법원-동달습지-오촌-김용익 묘소-삼화두레-해간도(7.8km 4h)

기타:편한신발,물,간식. 중식은 매식

연락처:차미옥 010-9248-**** 김용재 010-4585-****

전화,문자,댓글로 신청 바랍니다.

주의사항

* 도보 중 일어나는 어떠한 안전사고에 대해서도 진행자는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 개인의 안전은 각자에게 있으며 참가신청한 분은 이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 토요걷기 진행자는 모두 자원봉사자입니다. 늘 예의를 갖춰주시기 바랍니다.

 

 

법원 앞에서 출발하여 내려 오면 동달 습지가 나온다.

통영은 반도 지형이라 농지가 부족하여 습지를 메워 토지로 전용을 많이 했다.

습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정도로 중요한데 당시에는 그 중요성을 간과 했었다.

그래도 유일하게 남은 동달습지에는 각종 야생 조류와 어류 포유류들이 산다.

이곳이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의 시발점이라 습지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사람들에게는  높은 빌딩의 아파트를 분양 했지만 야생 동물에게는 동달습지를 분양했다.

한칸은 청동오리, 또 다른 칸은 백로에게, 다른 한칸은 해달에게...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도록 진정한 배려가 필요하다.

 

▲법원 앞에서 간단하게 몸을 풀고

▲야생동물에게 분양된 습지 아파트와 인간 아파트

▲행복해 하는 길벗님들

▲캠핑식 야외 바베큐장(걸어니 이런것도 보이네...)

 

약 10여년전 어느날 이곳 동암 바닷가에 한쌍의 거위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사이 좋았던 부부 거위는 어느날 암놈이 누군가에게 해꼬지를 당해 사라지자 암컷을 찾아 온 바다를 헤메다 이곳에 정착 하게 되었다.

그 사이 어민들에게 정이 들어 동암의 마스코트로 변함없이 갯벌을 지켜주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꽥괙 거리며 위협을 한다나???

한시 바삐 새 장가를 들도록 중매를 해 달라고 주민들은 요청했다.ㅎㅎ

 

▲동암의 명물 거위

 

▲도란 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면서...

▲오촌앞 바다에서 실파래를 채취하는 어머니

 

김용익은 누구인가?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알려진 작가.

가형 김용식은 초대 외무부 장관으로 나는 가난한 신생국의 대변인인데 반해 내 동생 김용익은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정서를 세계무대에 소개하여 훗날 나보다는 김용익을 더욱 알아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학교에서 알퐁스도데의 '' '마지막 수업'을 교과서에서 배울 때

그가 쓴 주옥같은 단편을 미국,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이태리, 덴마크의 청소년들이 배웠다고 한다.

그의 첫 작품 꽃신은 미국의 하퍼스바자에 기재된 이후 '가장 아름다운 소설'로 선정되어 세계 각국에 19번이나 소개되었으며

TV,영화, 발레작품으로도 소개 되었다.

그 외 단편은 해녀 종자돈 변천 막걸리 등이 있으며 단행본으로 한국의 달, 행복의 계절, 뒤웅박, 푸른 씨앗, 겨울의 사랑 양산골에서 온 신발 등이 있다.

마술의 펜이라 칭호를 얻고 노벨 문학상 후보에 까지 오른 김용익 그는 창작 이외에는 자유인이었다.

작품으로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지만 인생 특히 가정의 범주에는 회한도 남는다고 했다.

작품은 외로워서 썼고 외로워야 쓸 수 있다고 한다.

"문학이란 바람이나 공기와 같다.

고정적인 형태가 없는 것이어서 그에 대한 정의를 내릴려면 벌써 자유로운 창작 분위기는 훼손된다." 고 했다.

 

 

소설가 김용익선생은 외국에서는 많이 알려진 소설가지만 국내서는 덜 알려지고 고향에서 조차 조명되지 못하여 안타까웠다.

통영예술의향기에서 묘소찾기와 추모제등을 꾸준히 하여 선양작업에 힘쓴 결과 생가터를 기부채납 받아

기념관도 꾸미고 김용익 문학상도 제정하게 되었으며 묘소가는 길도 정비 했었다.

꽃신 단행본을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수 없지만 이지연 통영예술의향기 회장겸 통영시의원께서

유족들과 협의하여 출판 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추모제 참석 포스팅:http://blog.daum.net/backsekim/256

▲김용익 묘소 가는길

▲묘소 안내 입간판

▲데크로 오르는 길벗님들

▲선생의 작품세계와 가장 통영스런 에피소드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벌작업으로 조망이 트여 가슴이 후련하다. 후배들이 이곳에 문학 기행을 와서 바다를 보며 좋은 작품을 구상해도 될 만큼 탁월한 조망이다.

▲계단에서 파이팅도 외치고...

▲바람이 좀 불지만 우리는 간다.

▲다시 만난 습지는 청둥오리 아파트

▲뚝방길을 ...

 

이곳이 한때 세상을 떠들썩 했던 곳이다.

노건평씨는 통영시 장평지구 를 매립하려는 S해양산업의 사업자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고 통영시장을 만나 협조를 부탁한 것이다.

이 청탁의 대가로 S업체의 지분을 사돈을 통해 넘겨받아 9억4000만원을 챙겼다.

▲동달리와 장평리를 연결하는 둑방이 궁금하다. 궁금하면 500원! 그래서 가 본다. 건너갈 수 있는지 확인해 본다.

▲크레바스 이동용 알미늄 사다리가 있으면 건너 가겠는데...

 

장평언은 어디에?

장평언長坪堰 영의 동쪽 15리 유방의 경계에 있다.

옛적 전라 경상 양도가 합동으로 수조를 할때 수조에 참여한 군졸들이 흙을 메워 방죽을 막고 영의 염전으로 사용 하였다.

중년에 투송에소금 굽는 사람을 바꿈으로 해서 이를 폐지하고 군창에 속하는 둔전을 설치했다.(통영지)

 

▲장평언 이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생활 체육공원 앞에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역시다방보다는 주점이...)

 

한산대첩의 시발점 딴간섬(해간도)

"7일에는 동풍이 크게 불어 항해하기 어려웠는데 고성땅 당포에 이르자 날이 저물기로 나무하고 물 긷는 일을 하고 있는데

피난하여 산으로 올랐던 목동 김천손이 신 등의 함대를 바라보고 급히 달려와서 고하는 내용이

<적의 대중소선을 합하여  70여척이 오늘 하오 2시쯤 영등포 앞바다로부터 거제와 고성의 경계인 견내량에 머늘고 있습니다.>하였으므로

다시금 여러 장수에게 지시하고 8일 이른 아침에 적선이 머물러 있는 곳으로 배를 뛰웠습니다. (중략)

위 견내량의 지형이 좁고 또 암초가 많아서 판옥전선은 부딪치게 될 것 같아 싸우기 곤란 할 뿐 아니라

적은 만약 형세가 불리하게 되면 기슭을 타고 육지로 올라가므로 한산도 바다 가운데로 끌어내어 모조리 잡아버릴 계획을 세웠습니다.-견내량파왜병장에서-

 

해간도는 한산해전의 현장에서 묵묵히 그 광경을 목격하고 기억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해간도의 신목인 소나무는 둘레가 약 4.34m인 거목으로 최소 500년을 되었으며 그렇게 큰 소나무는 처음보았다.

 

연기미역(견내량 미역).

이곳에는 나라에 공물로 바치는 미역밭이 있다.

견내량 해협의 빠른 물살로 인하여 미역이 쫄깃하여 풀어지질 않고 맛이 있다.

특히 조선시대 임금 진상품으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언급될 만큼 명성을 얻었다

미역 채취는 옛날 방식으로 막대기로 수확을 한다.

그 막대기를 트릿대라고 하며 나무 장대 끝부분에 구멍을 뚫어 막대를 열 십자로 꽂아 사용하며

위에는 대나무 막대를 묶어 수심 5~8m 정도 되게 사용한다.

대나무 끝에는 펼쳐진 니은자 처럼 생긴 나무를 묶어 미역이 있는 해저에 담그고 돌려서 미역을 수확하는 전통 방식을 사용하고있다.

작년(2013)에는 수확이 많았으나 올해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수확량이 급감하여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연기 마을을 뭍간섬이라고 했으며 해간도를 따로 떨어져 있다하여 딴간섬이라 불리우고 음력 정월 항시때 뭍간섬과 딴간섬이 연결되었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는 논이 있어 논농사를 할 만큼 넓은 토지와 물이 있었으며 학교까지 있었던 섬이다.

 

▲견내량에 위치한 해간도다.

▲양지바른 언덕에는 토종 민들레가 꽃을 피웠다.

▲미역 채취용 트릿대 손잡이 핸들 부분

▲가로 나무 막대기를 끼우는 장대(홈은 열십자로 뚫려있음) 

▲간이 미역 채취용 기구

▲ 친절하게 창고에서 트릿대를  꺼내 보여 주신 마을 어부

▲다리 아래 물살 따라 움직이는 해초

▲간섬의 낚시하는 소나무 신목

▲강인한 생명력을 뽐내고 있는 소나무

▲폐교된 학교의 흔적들

▲학교 교정에 핀 매화

▲해간교

 

인간의 주거 공간은 집이다. 만약 집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또한 길이 없어진다면 어디를 어떻게 다닐까?

오늘 걸은 길에는 갯벌이 많았다.

그 갯벌은  다양한 생물들의 보금자리요 길이다.

집과 길을 망가트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한산대첩이란 이름은 언제 누가 했을까?

이순신 장군의 장계인 임진장초에는 견내량파왜병장이라 기록되어있다.(만력 20년(1952) 7월 17일)

조선왕조실록 선조 30권, 25년(1952 임진 / 명 만력 20년 9월 19일(병자) 6번째기사

"비변사가 공을 세운 이정암에 대해 한산대첩의 예로 상을 주자고 청하다"라고 기록되어있다.

 

2014.3.8 구국의 해안길2에서 백세청풍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