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통영 소식

4월 통영성길 걷기

청풍헌 2014. 4. 8. 04:37

김상현 기자의 "통영섬 부엌 단디 탐사기" 출판 기념회가 어제 있었다. 많은 손님들이 와서 출판을 축하해 주었다. 나 또한 내 일 같이 기쁘다.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고...혼자만 잘하면 뭔가요? 더불어 살아야 하고 뭔가 가시적인 결과물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면에서는 김상현 기자가 능력이 출충한 인물이다. 올바른 방향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다. 각설하고 세병관洗兵館 안내소로 올라가니 어렵쇼? 달랑 4명이다. 송국장, 김일룡 소장님, 김순성씨, 그리고 나. 그러나 어쩌랴? 힘차게 출발했다. 김기자가 리딩인데 어제 출판 기념회 인사차 오늘은 송국장이 리딩이다. 소장님 참석으로 한편으로 어려우면서 은근히 힘이 되는 이치는 무었인가? 송국장님 도사 앞에 떠들 수 없다며 오늘은 걷기 위주로 간다고 선언을 했다.  남문터-중앙시장- 동피랑 올라가는 곳의 시구문 까지 확인하고 일본절日本寺의 도리를 볼려는데 어렵쇼? 공사 안내판과 천막이 쳐져있다. 송국장 왈 몇일전에 왔었는데 공사를 하며 도리이 기둥이 없어졌다고 한다. 소장님 뒷쪽 글짜를 확인 해야 하는데 하시며 기둥을 찾았으나 흔적도 없다. 이렇게 또 하나의 통영성 흔적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사라져가는 것은 다 아름답다는 김순철님의 수필이 생각나는것은 왜일까?  소장님의 머리에는 무궁무진한 지식이 들어 있는데 시시때때로 나온다.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살아있는 교육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동포루를 올라 시원한 전망을 감상했다. 포루鋪樓는 장대將臺라고도 하며 산성중군의 파수하던 곳이다. 마루는 잘못된 복원이다. 여기에 마루가 생긴 연유는 북포루를 복원하며 문화재 의원이란 사람이 와서 마루를 깔자 했으나 정자가 아닌 포루는 마루가 없다고 했으나 차후 활용방안을 마련 하던중 접점을 찾아 마루를 만들었는데 북포루를 원용하여 동포루에도 마루를 깔았다. 원칙적으로 포루나 장대는 마루가 있을 수 없으며 산성 중군들의 초병이 근무를 섰던 곳으로 특별한 교대 의식은 없었다고 하셨다. 임금이 기거하는 왕궁이나 특별한 곳에는 있었는지 몰라도 현재 재연하는것은 대부분 이벤트성이라고 하셨다. 성가퀴와 여장女墻은 같은 말이며 성벽위에 올라온 은폐시설이다. 조선시대의 성벽을 재대로된 복원이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진주성이나. 수원화성의 모습을 상상 하시라. 동포루를 내려와 이태규 생가터에 왔다. 일전에 시에서 증보 발간한 예향 통영이라는 책자에 이태규의 생가터 사진이 있는데 방향이 틀려 다른집을 이태규의 집으로 착각 하도록 사진을 실었다. 마지막 살아 계실때까지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고 했다. 소장님께서 보유하고있는 그림과 유품을 이번 이태규 유작전에 출품 하실거라고 했다. 5월 2일 유작전을 연다고 하니 꼭 가봐야할 것이다. 몇 십년후 아니 백년후 어디 어디에서 유작전을  열었다는 기록이될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중섭의 성림다방이나 복자네 집을 찾는것처럼... 


동문터를 지나 산먼당을 오르다 정동당산쪽으로 갔다. 정동당산지신위 이곳이 성황당 터라고 하신다. 성을 지켜 주시는 성황당이 정동의 당터로 바뀌었으며 이곳이 등룡정登龍亭의 사대射臺였다고 한다. 등룡정은 이곳이 좌청룡의 등에 해당 한다 하여 등룡정이라 한다. 登龍亭 원래의 성터는 주영라이프 서쪽끝을 포함하여 휘돌아 나가는 곳이라 하셨다. 김용식,김용익 기념관에 왔다. 내부를 둘러보니 통영 마지막 읍장邑長 김채호라는 문구에 마지막 이란  글귀가 지워졌다. 뭔가 착오가 생긴것일까? 가장 한국적인 표현으로 소설을 쓴 김용익을 어느 순간 좋아하게 되었다. 기념관을 나오니 근용 회장님과 귀선씨가 왔다. 회장님의 특유의 폼으로 오셔서 활기를 불러 일으켰다. 고개마루를 지나 북문터에 왔다. 북문터, 묵문지, 배수구 미나리깡, 술 도가집 등을 확인하고 북포루로 오른다. 성끝에 한참동안 서서 북신만을 내려보며 어디서 부터 바다였고 어디에 조개가 많았고 등등을 헤아렸다. 북포루를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통영항을 바라보니 언제나 아름다운 풍경이라 감탄한다. 토성을 내려오면 우측에 보이는 골짜기가 도둑골이라 깊은 골짜기에 도둑이 살았는가 그래서 도둑골이 되었고 고랑이 도둑고랑이며 서답고락, 가죽고랑으로 내려오며 이름을 달고있다. 통영의 바다가 보이지 않는 깊은 내륙같은 곳이다. 예나 지금이나 골이 깊어 탐방하기가 곤란하다. 원래 토성은 계속 내려가다 대밭으로 나 있는데 지금은 대나무가 우거져 갈 수 없다고 한다. 대밭 사이로 희미하게 토성의 흔적이 보였다. 향토사 1기 교육때는 대밭 사이로 토성의 흔적을 따라 가다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지고 찔리고 하여 다음부터는 그냥 등산로로 다녔다고 하셨다. 김약국의 딸에 나오는 굿당에는 깨끗히 청소가 되어있다.  "김약국의 딸"이란  책을 사 놓고 다 읽지를 못했다. 이런 일이???  언제 읽어보나? 언젠가는 다 읽어 그 길을 따라 가 볼련다. 호주 선교사터에서 보는 통영항의 뷰가 매우 좋았다고 기억 하신다. 선교사 집터에는 개犬 두마리가 집을지키고 사납게짓어댄다. 잘생겼네 하니 말을 알아 들었는지 좀 조용해 진다. 그 아래는 교회가 들어 섰는데 그 자리가 진명 유치원터라고 한다. 통영의 명사들이 이 유치원에서 직 간접으로 영향을 받은 곳이다. 서포루 주위는 도로 공사중이라 서문고개에서 일정을 마쳤다. 매월 첫째주 금요일 하는 통영성길 걷기는 걸을 때마다 새로움이 있다. 사람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말이 바뀐다. 때로는 사람이 너무 많이 꼬리가 길며 오늘같은 날은 조촐하게 4명이 출발 하여 뒤에 2명이 합류하였다. 작으나 많으나 꾸준한 것이 중요하다. 통영성 걷기는 계속 영속적으로 연결될 것이다. 

2014.4.4 통영성에서 백세청풍 김용재



▲3D 지도를 보며 설명중

▲사라진 일본절터

▲동피랑의 통영성 흔적(황룡에게 빌어볼까?)

▲복원된 동포루

▲동피랑 뷰~

▲이태규의 생가터

▲정동 당산터(원래는 통영성의 성황당터)

▲등룡정을 말씀 하셨다.

▲김용식,용익 기념관

▲사라진 문구 마지막(?)

▲사라진 문구"마지막" 왜???

▲가장 한국적인 세계적인 작가

▲북신만 뷰

▲통영항 뷰~

▲도둑골

▲굿당터

▲서포루

▲도대체 이것이 무었일까???

▲알고보니 등나무 꽃이었네...


날씨가 쌀쌀하다. 

강원도에는 흰눈이 온다고 한다.

날씨가 미쳤는 갑다.

내일은 미륵산길 걷기와 봉수골 벗꽃축제, 익산에서 손님이 온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