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행사, 축제

박경리 선생 6주기 추모제

청풍헌 2014. 5. 7. 12:05

옛날의 그 집

                                                         박경리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그루가 

어느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횡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어르렁 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늟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통영에서 문인장을 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흘러 6주기가 되었다. 

작품의 배경이 된 통영을 하나하나 알아가며 소설속의 주인공이 되어 보기도 하며 

선생의 채취를 느끼며 이곳 저곳을 누볐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통영을 떠난지 50여년 만에 돌아와서 세병관 기둥을 잡고 울었다는 선생은

마지막 유택을 이곳 고향으로 정하셨다.

유년의 추억이 있는곳! 친구가 살아 있는곳!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달관의 말씀은 

우리 인생 종착역이 무었인지를 보여주셨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성스레 치러진 추모제는 유족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더불어 세월호의 젊은 영혼들도 하늘나라로 훨훨 날아 가도록 추모풍선을 뛰웠다.























2014.5.5 박경리 6주기 추모제에서 백세청풍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