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난중일기를 조망하다(제53회 통영한산대첩축제기념 학술 세미나)

청풍헌 2014. 8. 18. 21:42

통영에서 난중일기에 대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배사(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의 막강 필진이 참여한 학술대회라 기대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이순신에 관한 한 최 고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순천향대학교 이순신 연구소에서 주관을 한 학술 세미나다.


개회사에서 임원빈 순천향대 이순신 연구소 소장은 명량 영화를 보고 "슬펐다"라고 했다.

이순신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우리 국민의  역사 수준이 이렇게 밖에 안 되는지 하고...

하지만 영화 명량이 이순신의 정을 알리고 선양 하는데 지대한 공로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한산대첩의 현장인 통영에서 난중일기로 세미나를 여는 것에 대하여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개회사를 하시는 임원빈 교수님(통영인뉴스 사진)

▲사회를 맡은 이민웅 교수님(통영인뉴스 사진)


발제1.이순신의 난중일기

-교감, 판본, 번역본을 통해 본 『난중일기』

-김경수(청운대학교 교수)

일기란 개인이 직접 경험하고 일어났던 일을 기록한 개인 기록물이다. 

그러면 개인 일기인 난중일기가 왜 이렇게 주목을 받고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제 되었을까?

그것은 이 일기를 통하여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과 의식, 전쟁 중에 느낀 경험과 과정, 

정치와 사회, 군사, 외교, 병법과 무기체계, 다양한 정치적 인물 등 당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알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난중일기의 판본과 교감본, 번역본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판본은 인쇄본을 의미하며 교감본은 여러 판본을 비교 분석한 것이며 번역본은 이것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이러한 것의 기본은 난중일기 초고본(이순신이 초서로 직접 쓴 일기본)과 이충무공전서(활자본), 난중일기초(전사본: 초고본을 옮겨 적은 것)이다.

이외에도 많은 번역본이 있으며 문화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다.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 명나 와의 동북아 전쟁이었다. 

그런데 당시의 상황이 난중일기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남아 있다.

이 일기는 개인의 일기를 넘어 당시의 정치, 군사, 무기 등등 공적인 상황이 자세히 쓰여 있다.

물론 개인적인 인간 이순신의 고뇌와 심정, 가족에 대한 사랑과 백성을 위한 애민사상 등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것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가치보다는 사료적인 가치가 우수하여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된 것이다.

그러나 난중일기에 대한 과제도 많이 남았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교감작업이 필요하며 여러 연구 분야들이 협업하여 사업을 진행해야한다.

향토사학자와 지명에 대한 역학자까지 동원하여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협업하여 

좀 더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역작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첫번째 발제자 김경수 교수님(KBS 그날 출연진)(통영인뉴스 사진)


발제2 『난중일기를 통해 본 한산도와 이순신

임원빈(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장)

임원빈 교수는 이번이 세 번 째 만남이다.

현충사에서  처음 강연을 들었으며 통영인뉴스 창간 3주년 기념 강연 때 통영을 방문 했었다.

한산도는 무었인가?

우리는 한산도를 최초의 통제영이라 알고 있다.

일명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개념을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전라좌수사로 임진란을 참전한 이순신은 조정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제수된다.

즉 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이다.

그래서 본영은 전라좌수영이고 한산도는 전진기지였다. 

난중일기에 좌수영을 본영이라 칭하고 한산도를 본진 혹은 해영이라 칭했다.


그러면 한산도 해영에는 어떤 건물이 있었을까?

최초로 사정을 만들어 그곳에서 활도 쏘고 여러 장수들과 이야기를 하는 공간 이었다.

이후 누각을 지어 이곳에서 술도 마시고 작전토론을 했으며 공무집행을 했다.

그러면 누각이 한산도가에 나오는 수루인지는 알 수 없다.

이후 이순신의 집무공간인 대청이 나온다. 

대청에서 모든 집무를 보고 각종 공식 인사를 받았다.

그러나 녹도 하인의 실화로 대청 및 누각의 방이 불타 다시 대청 및 누각의 방을 짓는다.

이어 사청을 확장 운영하여 이곳에서 무과 시험을 치른다.


이순신과 인간관계에서 유성룡과 원균, 이영남에 대한 고찰이다. 

유성룡은 이순신을 발탁한 인물로 이순신과 더불어 전란을 극복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다 이순신이 노량해전으로 죽는 날 파직되어 낙향한다.(1598년 11월 19일) 

원균과는 계속적인 갈등을 겪는다.  난중일기에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부분이 많다.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문상 편지를 받고 원흉이라 칭한다.

이영남은 경상우수사 원균의 소속인 소비포 권관이다.

아들 같은 이영남이 이순신을 잘 따라 여러 이야기를 나눈다.

노량해전 때 운명같이 이순신과 함께 전사했다.

유성룡과 이순신, 이영남은 같은 날 운명처럼 조선의 역사에서 사라진다.

▲두번째 발제자 임원빈 교수(통영인뉴스 사진)


발제3.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서의 『난중일기』

제장명(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

이번 세미나를 주최하면서 임원빈 교수 에게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발표자 중에 유네스코 등록에 관계한 분의 주제발표가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제장명 교수가 보고서를 쓴 인연으로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난중일기의 세계유산으로서의 당위성과 가치에 대한 보고서가 작성되어 등제신청서와 사진, 영상물, 동의서, 권리양도서 등을 제출 하여 승인 되었다.



▲세번째 발제자 제장명 교수(통영인뉴스 사진)


종합토론에서는 함선 숫자의 정의와 해전횟수에 대한 문의가 있었으며 

통제영을 문화유산으로 등제하기 위한 조언을 요청 했는데 가장 최근에 등제된 남한산성을 모델로 삼으면 될 것이라 했다.

그외 자살설, 세계4대 해전설 등을 질문 했으며 그것은 근거 없는 허구 라고 정의했다.


▲종합 토론자 김경수, 임원빈, 장명 , 이민웅, 정진술, 노기욱, 류태수

▲이배사 단체사진


통영 명가다찌로 이동하여 뒤풀이를 했다.

이배사의 일원으로 참가 했는데 인상적인 것은 정진술 노교수님의 해맑은 웃음이며 

면면이 화려한 교수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 영광 이었다.


2014.8.14 통영에서 백세청풍 김용재

▲정진술 교수님

▲축제 평가단장인 정병웅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