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伸救箚신구차 [ 伸아뢰다. 救(목숨을)구하다. 箚상소문]

청풍헌 2015. 2. 11. 15:09

1. 국어 교과서에 실려야 할 글

사람의 목숨을 구해 준 글이라면 아무리 못 썼더라도 명문장이다. 목숨을 구한 사람이 다름 아닌 이순신이라면 더욱 그렇다. 상소 올린 사람은 우의정이라는 높은 벼슬의 사나이인데 왕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무척이나 고심을 많이 했다. 이순신의 목숨을 구하려면 어떤 글을 써야 하나? 임진년에 한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가 체면을 구긴 왕의 심정을 살펴 글을 써야 한다. 자존심을 크게 상한 왕은 조금이나마 무시하거나 능멸하는 기미만 보여도 참지 못한다. 그런 왕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이런 소극적인 생각에서 더 나아가 왕이 이 순신을 사형시켜야 한다고 한 결정이 매우 정당하다고 일단 찬동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왕이 자비로운 사람임을 드러내야 한다. 나라를 책임진 왕의 고뇌를 공감하면서 죽을 죄인에게 마저 숨은 인정을 베푸는 덕을 칭송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죄를 지은 장수를 용서하여 큰 공을 세우게 한 중국의 고사를 조사해서 왕을 설득해야 한다. 중국이 아니라 바로 현재의 왕도 죄 지은 장수를 살려주어 공을 이루게 한 적이 있음을 찾을 수 있으면 더 좋다.

만일 이 순신을 죽이면 현재 복무중인 장수들이 어찌 생각할 것인지도 말해야 한다. 이순신과 대립하며 감정 품은 원균도 불안하고 마음이 편안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환기 시키면 좋겠다. 대승을 해도 상을 주지 않고 대패를 당해도 벌하지 않는 대선불상 대패부주(大善不賞 大敗不誅)의 사례를 찾아야 한다. 이 방침은 나라의 안위를 염두에 둔 조치다.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후유증이 크다. 대선불상을 행하지 않으면 공신들이 방자하고 반란을 일으킬 수 있고, 대패부주를 행하지 않으면 수하의 장수들이 패전의 처벌을 두려워 도리어 반란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

우의정 정탁(鄭琢)의 이러한 착상은 얼마나 탁월한가? 그는 상소를 올려서 이순신 개인의 죽음은 아깝지 않으나, 나라의 안위와 관계되는 중대한 일임을 일깨웠다. 이순신이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로워지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고 왕의 이성을 밝게 했다. 그는 논리적으로 글을 전개함과 아울러 왕의 감성에 동조하는 수사법을 상소문에 구현했다. 신구차는 만고의 명문장이다. 기미독립선언문 못지않은 명문이며 국어 교과서에 실려야 할 글이다.

이 순신 장군이 국문 받는 처지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철군했던 왜군 14만이 3년 만에 다시 바다를 건너왔다. 정유재란인데 당시에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 지금으로 말하면 해군 참모총장이었으므로 바다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요시라의 간계, 원 균의 모함, 반대 당파의 탁핵으로 아무 죄 없는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의 직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라고 배웠다면 이는 식민사관이라고 생각된다. ‘너희 조선의 지배계층은 이순신과 같이 훌륭한 인재를 죽이려고 한 무능하고 부패한 나쁜 놈들이다.’라고 역사를 왜곡해 가르친 일제의 식민사관이다. 바다를 지켜야 할 이순신이 직무태만을 했느냐 안했느냐를 따져봐야 할 상황인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왕은 일본군이 또 침공한데 대해 의주로 피난갔던 끔찍한 일이 또 발생한 책임을 묻고 싶었다. 바다에서 막았으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통제사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정 대신들도 왕의 뜻에 거의 동조했다. 가장 큰 후원자인 유성룡도 이순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조선이 일본군의 대규모 상륙을 저지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임진년에는 방비가 소홀해 대규모 일본군이 소수의 경상좌수영과 우수영을 제압했다고 치자. 일본이 철군하고 3년이 지나 재침할 때는 왜 조선 수군이 일본군의 상륙을 저지하지 못했을까? 강력한 이순신 함대가 있었는데 왜 못 막았을까? 그 이유는 조선의 지상군이 허약했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철수하면서 수 만명을 왜성에 남겨두었다. 그들은 경남지역에 견고한 왜성을 쌓고 대마도의 일본군이 언제든지 상륙할 수 있도록 확실한 교두보를 유지하고 있었다. 권율의 육군은 왜성을 탈환하지 못했다. 일본육군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이므로 조선 수군은 경상 좌수영을 재건하지 못했다. 경상 우수영의 원균도 거제도 서쪽 해역에서 겨우 활동했다. 일본군은 조선 수군의 저항 없이 대마도와 부산을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었다. 통제사 이순신도 함대를 부산에 정박시킬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부산, 울산 일대를 일본육군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수군이 일본군의 부산상륙을 저지하려면 경남 해안 포구에 정박할 수 있고 조선육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하는데 그런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우의정 정 탁은 이 순신을 살려서 나중에 나라를 위해 쓰고 싶었다. 그만한 장수감이 조정에 없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순신 구명 방안을 고민했다. 반대 의견을 냈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면 자기도 같은 죄로 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정탁은 며칠 밤을 새우며 중국의 고사를 찾았다. 조선의 사대부는 대부분 춘추 시대 진(秦)나라 맹명시의 고사를 안다. 물론 왕도 알고 있을 것이다. 춘추좌씨전, 사기 등에 나오는 일화다. 맹명(孟明)은 자이고, 이름이 시(視)다. 그는 백리해(百里奚)의 아들이므로 백리맹명시(百里孟明視)라고도 부른다. 《史記》 秦世家에 “목공(穆公)이 패전했던 맹명 등을 후대한 후 진(晉)을 다시 공격하게 했다. 목공은 비장한 결의를 보이려고 타고 온 배들은 불살라버렸다. 맹명시가 분발하여 진나라를 크게 물리쳤다.

죽을 죄인이라도 한 번의 기회를 주어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로워지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는 정탁의 상소문은 매우 정교하고 감성적 수사를 동원한 명문장이다. 이제 그 원문을 읽어 보자.

2. 정탁의 상소문 원문 읽기

1.

伏以李某身犯大罪。律名甚嚴。而聖明不卽加誅。原招之後。又許嚴推。非但按獄體段爲然。抑豈非聖上體仁一念。期於究得其實。冀有以或示可生之道也。我聖上好生之德。亦及於有罪必死之地。臣不勝感激之至。(복이리모신범대죄。률명심엄。이성명불즉가주。원초지후。우허엄추。비단안옥체단위연。억기비성상체인일념。기어구득기실。기유이혹시가생지도야。아성상호생지덕。역급어유죄필사지지。신불승감격지지。)

* 신구차=목숨을 구하는 것을 아뢰는 상소문: 伸아뢰다. 救(목숨을)구하다. 箚상소문

우의정 정탁(鄭琢)은 엎드려 아룁니다. 이모(李某:이순신)는 몸소 큰 죄를 지었습니다. 죄명이 무겁건마는 성상(聖上)께서 얼른 극형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가두어 두다 그 뒤에야 엄격히 추궁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다만 감옥 일 다스리는 체모와 순서에 따라 그러함이 아니십니다. 실상은 성상께서 인(仁)을 베푸는 한 생각이십니다. 기어이 그 진상을 밝혀서 혹시나 살게 할 길을 찾는 바람으로 하심입니다. 성상의 호생(好生)하는 뜻이 죄 지어 죽을 자리에 놓인 자에게까지 미치십니다. 신은 이에 감격함을 이길 길이 없습니다.

2.

臣嘗承乏命官。推鞫按囚。固非一再。凡罪人一次經訊。或多傷斃。其間雖或有可論之情。徑自隕命。已無所及。臣嘗竊憫焉。今某旣經一次刑訊。若又加刑。則嚴鞫之下。難保其必生。恐或傷聖上好生之本意也。(신상승핍명관。추국안수。고비일재。범죄인일차경신。혹다상폐。기간수혹유가론지정。경자운명。이무소급。신상절민언。금모기경일차형신。약우가형。즉엄국지하。난보기필생。공혹상성상호생지본의야。)

*竊절, 적지 않게

신이 일찍 벼슬을 받아, 죄수 문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대개 죄인들은 한번 심문을 받으면, 그대로 상하여 쓰러지는 자가 많습니다. 설사 좀 더 밝혀 줄 마음이 있어도, 이미 목숨이 끊어진 뒤라 어찌할 길이 없었습니다. 신은 늘 이를 적지 않게 민망히 여겨왔습니다. 이제 이모가 이미 한 번 형을 겪었는데, 만일 또 형을 가하면, 무서운 문초로 목숨을 보전하지 못하여 혹시 성상의 호생하시는 본의를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바입니다.

3.

當壬辰倭艘蔽海。賊勢滔天之日。守土之臣。棄城者多。專閫之將。全師者少。朝廷命令。幾乎不及於四方。某倡率舟師。乃與元均。頓挫兇鋒。國內人心。稍有生意。倡義者增氣。附賊者回心。厥功鉅萬。朝廷嘉甚。至加崇秩。賜以統制使之號。非不宜也。(당임진왜소폐해。적세도천지일。수토지신。기성자다。전곤지장。전사자소。조정명령。기호불급어사방。모창솔주사。내여원균。돈좌흉봉。국내인심。초유생의。창의자증기。부적자회심。궐공거만。조정가심。지가숭질。사이통제사지호。비불의야。)

*閫곤, 문지방

저 임진년에 왜적선이 바다를 덮어, 적세가 하늘을 찌르던 그 날에, 국토를 지키던 신하들로서 성을 버린 자가 많았습니다. 국방을 맡은 장수들도 군사를 그대로 보전한 자가 적었습니다. 조정의 명령조차 사방에 거의 미치지 못할 적에, 이모는 일어나 수군을 거느리고 원균과 더불어 적의 예봉을 꺾었습니다. 나라 안 민심이 겨우 얼마쯤 생기를 얻게 되고, 의사(義士)들도 기운을 돋우고, 적에게 붙었던 자들도 마음을 돌렸습니다. 그의 공로야말로 참으로 컸습니다. 조정에서는 이를 아름답게 여기고 높은 작위를 주면서, 통제사의 이름까지 내렸던 것이 실로 당연한 것입니다.

4.

當進兵討賊之初。突戰先登之勇。不及元均。人或致疑。是固然矣。元均所領船隻。適於其時。謬承朝廷指揮。多數燒沈。不有某之全師。則無以做出形勢。克辦奇功矣。某爲大將。見可以進。不失時機。能擧舟師。大振聲勢。(당진병토적지초。돌전선등지용。불급원균。인혹치의。시고연의。원균소령선척。적어기시。류승조정지휘。다수소침。불유모지전사。즉무이주출형세。극판기공의。모위대장。견가이진。불실시기。능거주사。대진성세。)

그런데 군사를 이끌고 나가 적을 무찌르던 첫 무렵에, 뛰쳐나가 앞장서는 용기로는 원균에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더러 의심하기도 한 바는 그렇다고 하겠습니다. 원균이 거느린 배들은 마침 그 때에 조정의 지휘를 그릇되게 받들어 많이 침몰된 것입니다. 만일 이모의 온전한 군사가 없었더라면 장한 형세를 갖추어 공로를 세울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모는 대장이라 나갈만함을 보고서야, 비로소 시기를 잃지 않고, 수군의 이름을 크게 떨쳤던 것입니다.

5.

則臨亂不避之勇。元均固有之。而畢竟摧陷之功。某亦不多讓於元均矣。但於其時。元均不無如許大功。而朝廷恩典。全及於某。於元均則還以大損。中外至今稱寃。此則最可惜也。(즉림란불피지용。원균고유지。이필경최함지공。모역불다양어원균의。단어기시。원균불무여허대공。이조정은전。전급어모。어원균즉환이대손。중외지금칭원。차즉최가석야。

그러니 전쟁에 임하여 피하지 않은 용기는 원균이 가진 바라 하겠지만, 끝내 적세를 꺾어버린 공로는 원균에게 양보할 것이 많지 않습니다. 다만 그 때에 원균에게도 그만한 큰 공로가 없지 않았는데, 조정의 은전은 온통 이모에게만 미치고 있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6.

元均於舟師之事。才有偏長。天性忠實。當事不避。善於衝突。兩將協心勠力。則賊不難退。臣每於榻前。啓達此事。朝廷以兩將不相能故。不復用元均。而獨留某以專舟師之事。某諳鍊備禦。手下才勇。咸樂爲用。未嘗喪師。威聲如舊。倭奴之最怕舟師者。未或不在於此。其有功於鎭壓邊陲。大段如此。(원균어주사지사。재유편장。천성충실。당사불피。선어충돌。량장협심류력。즉적불난퇴。신매어탑전。계달차사。조정이량장불상능고。불부용원균。이독류모이전주사지사。모암련비어。수하재용。함악위용。미상상사。위성여구。왜노지최파주사자。미혹불재어차。기유공어진압변수。대단여차。)

원균은 수군을 다루는 재주에 장점이 있습니다. 천성이 충실하며, 일을 당해도 피하지 않고, 마구 찌르기를 잘합니다. 두 장군이 힘을 합치기만 하면, 적을 물리치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라, 신이 매양 어전에서, 이런 말씀을 올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두 장군이 서로 맞지 않기 때문에, 원균을 다시 쓰지 않고, 오로지 이모만 머물러 두어 수군을 맡아보게 하였습니다.

이모는 과연 적을 방어하는 일에 능란하여, 휘하 용사들이 모두 즐겁게 쓰입니다. 군사들을 잃지 않고 그 당당한 위세가 옛날과 같으므로, 왜적들이 우리 수군을 겁내는 까닭도, 혹시 거기에 있지 않나 하거니와, 그가 변방을 진압함에 공로가 있음이, 대강 이와 같습니다.

7.

或者以爲某一度建功之後。更無可記之功。以此少之。臣則竊以爲不然。四五年來。天將主和。皇朝東封之事又起。我國大小將士。不許措手於其間。某不復宣力者。非其罪也。近日倭奴之再擧入寇也。某之不及周旋者。其間情勢亦或有可論。(혹자이위모일도건공지후。경무가기지공。이차소지。신즉절이위불연。사오년래。천장주화。황조동봉지사우기。아국대소장사。불허조수어기간。모불부선력자。비기죄야。근일왜노지재거입구야。모지불급주선자。기간정세역혹유가론。)

어떤 이는 이모가 한번 공로를 세운 뒤에, 다시는 내세울만한 공로가 별로 없다고 하여 대수로이 여기지 않는 이도 있으나, 신은 적지 아니하게 그렇게는 생각지 않습니다.

너 댓 해 동안 명나라 장수들은 화친을 주장하고, 일본을 신하국으로 봉하려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우리나라 장수들은 그 틈에서 어찌할 길이 없으므로, 이모가 다시 더 힘쓰지 못한 것도 실상은 그의 죄가 아니었습니다.

요즘 왜적들이 또 다시 쳐들어옴에 있어, 이모가 미처 손쓰지 못한 것도, 무슨 그럴만한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8.

盖凡當今邊將之一番動作。必待朝廷之成命。無復有將軍專閫之事。倭奴未過海之前。朝廷秘密下敎。登時傳致與否。未可知也。海上風勢之順逆。舵之便否。亦未可知也。而舟師分番。不得已之事。昭載於都體察使自劾狀啓中。則舟師之臨急不得致力者。事勢亦然。似不可以此全歸於某也。(개범당금변장지일번동작。필대조정지성명。무부유장군전곤지사。왜노미과해지전。조정비밀하교。등시전치여부。미가지야。해상풍세지순역。타지편부。역미가지야。이주사분번。불득이지사。소재어도체찰사자핵상계중。즉주사지림급불득치력자。사세역연。사불가이차전귀어모야。)

대개 변방의 장수들이 한번 움직이려고 하면, 반드시 조정의 명령을 기다려야 되고, 장군 스스로는 제 마음대로 못하는 바입니다. 왜적들이 바다를 건너오기 전에, 조정에서 비밀히 내린 분부가, 그 때 전해졌는지 아닌지도 모를 일입니다. 또 바다의 풍세가 좋았는지 아닌지, 뱃길도 편했는지 어쨌는지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수군들이 각기 담당한 구역이 있어, 어쩔 수 없었던 사정은, 이미 도체찰사의 장계에도 밝혀진 바도 있습니다. 군사들이 힘을 쓰지 못했던 것도 사정이 또한 그랬던 것인 만큼, 모든 책임을 이모에게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9.

往日馳啓之中。其所陳之事。涉於虛妄。極可怪駭。而此說如或得於下輩之誇張。則恐亦容有中間不察之理。不然。某亦非病風之人。敢爲如是。臣竊未解。(왕일치계지중。기소진지사。섭어허망。극가괴해。이차설여혹득어하배지과장。즉역용유중간불찰지리。불연。모역비병풍지인。감위여시。신절미해。)

지난 장계 가운데, 쓰인 사실이 허망함에 가까우며, 매우 괴상합니다. 아마 그것은 아랫사람들의 과장한 말을 얻어들은 것 같습니다. 그 속에 정확하지 못한 것들이 들어있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모가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감히 그럴 수 있으리라고, 신은 자못 풀어 볼 길이 없습니다.

10.

若夫亂初軍功馳啓之中。不爲一一從實。貪人之功。以爲己功。委涉誣罔。以此而問罪。則某亦何辭焉。然而除非全德之人。則於物我相形之際。能無欲上人之心者盖寡。因循苟且之間。鮮不做錯。特上之人。察其所犯之大小而有所輕重之耳。(약부란초군공치계지중。불위일일종실。탐인지공。이위기공。위섭무망。이차이문죄。즉모역하사언。연이제비전덕지인。즉어물아상형지제。능무욕상인지심자개과。인순구차지간。선불주착。특상지인。찰기소범지대소이유소경중지이。)

만약에 난리가 일어났던 첫 무렵에 공로를 적어 올린 장계가, 낱낱이 사실대로 쓰지 않고, 남의 공로를 탐내서 제 공로로 만들어 속였기 때문에, 그로써 죄를 다스린다 하면, 이모인들 또한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에 완전무결한 사람을 빼고는, 저와 남이 상대할 적에 남보다 높고자 하는 마음을 품지 않은 자가 적고, 어름어름하는 동안에 잘못되는 일이 많습니다. 윗사람이 그 저지른 일의 크고 작음을 자세히 살펴서 경중을 따져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11.

夫將臣者軍民之司命。國家安危之所係。其重如此。故古之帝王。委任閫寄。別示恩信。非有大何。則曲護而全安之。以盡其用。厥意有在。大抵人才國家之利器。雖至於譯官筭士之類。苟有才藝。則皆當愛惜。况如將臣之有才者。最關於敵愾禦侮之用。其可一任用法而不爲之饒貸耶。(부장신자군민지사명。국가안위지소계。기중여차。고고지제왕。위임곤기。별시은신。비유대하。즉곡호이전안지。이진기용。궐의유재。대저인재국가지리기。수지어역관산사지류。구유재예。즉개당애석。황여장신지유재자。최관어적개어모지용。기가일임용법이불위지요대야。)

대개 장수된 자는 군사와 백성들의 운명을 맡은 이와, 국가의 안위에 관계된 사람이라, 그들의 소중함이 이와 같습니다. 예로부터 제왕들이, 국방의 책임을 맡기고, 은전과 성의를 특별히 보였습니다. 무슨 큰 일이 없는 한 간곡히 보호하고 안전케 하여 그 임무를 다하게 하니, 큰 뜻이 거기에 있습니다.

무릇 인재란 나라의 보배이므로, 비록 저 통역관이나 주판셈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재주와 기술이 있기만 하면, 모두 다 마땅히 사랑하고 아껴야 합니다. 하물며 장수의 재질을 가진 자로서, 적을 막아내는 것과 가장 관계가 깊은 사람을, 오직 법률에만 맡기고 조금도 용서 못함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12.

某實有將才。才兼水陸。無或不可。如此之人。未易可得。邊民之所屬望。敵人之所嚴憚。若以律名之甚嚴而不暇容貸。不問功罪之相準。不念功能之有無。不爲徐究其情勢。而終致大譴之地。則有功者無以自勸。有能者無以自勵。雖至挾憾如元均者。恐亦未能自安。中外人心。一㨾解體。此實憂危之象。而徒爲敵人之幸。一某之死。固不足惜。於國家所關非輕。豈不重可爲之慮乎。(모실유장재。재겸수륙。무혹불가。여차지인。미역가득。변민지소속망。적인지소엄탄。약이률명지심엄이불가용대。불문공죄지상준。불념공능지유무。불위서구기정세。이종치대견지지。즉공자무이자권。유능자무이자려。수지협감여원균자。공역미능자안。중외인심。일㨾해체。차실우위지상。이도위적인지행。일모지사。고불족석。어국가소관비경。기불중가위지려호。)

이모는 참으로 장수의 재질이 있으며, 수륙전에도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런 인물은 과연 쉽게 얻지 못합니다. 변방 백성들의 촉망하는 바요, 왜적들이 무서워하고 있는데, 만일 죄명이 엄중하다는 이유로 조금도 용서해 줄 수가 없다 하고, 공로와 죄를 비겨볼 것도 묻지도 않고, 또 능력이 있고 없음도 생각지 않고, 게다가 사리를 살펴 줄 겨를도 없이, 끝내 큰 벌을 내리기까지 한다면, 공이 있는 자도 스스로 더 내키지 않을 것이요, 능력이 있는 자도 스스로 더 애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저 감정을 품은 원균 같은 사람까지도, 편안하지 못할 것입니다. 안팎의 인심이, 이로 말미암아 해이해질까 봐, 그게 실상 걱정스럽고 위태한 일이며, 부질없이 적들만 다행스럽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일개 이모의 죽음은 실로 아깝지 않으나, 나라에 관계되는 것은 가볍지 않은 만큼, 어찌 걱정할만한 중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13.

古者。不遞將臣。終收大功。秦穆之於孟明者。固非一二。臣不暇遠引。只以聖上近日之事啓之。朴名賢亦一時之猛將也。嘗觸邦憲。朝廷特原其罪。未幾。有湖右之變。變過己丑。而名賢一擧戡定。功在宗祊。其棄瑕責效之意至矣。今某罪陷大辟。幾犯十惡。律名甚嚴。誠如聖敎。某亦知公論之至嚴。常刑之可畏。無望自全。(고자。불체장신。종수대공。진목지어맹명자。고비일이。신불가원인。지이성상근일지사계지。박명현역일시지맹장야。상촉방헌。조정특원기죄。미기。유호우지변。변과기축。이명현일거감정。공재종팽。기기하책효지의지의。금모죄함대벽。기범십악。률명심엄。성여성교。모역지공론지지엄。상형지가외。무망자전。)

그러므로 옛날에도, 장수는 갈지 않고 마침내 큰 공을 세우게 했습니다. 진나라 목공(穆公)이 맹명 장군에게 한 일과 같은 것이 실로 한둘이 아닙니다. 신은 구태여 먼데 사실을 따오고자 아니하고, 다만 성상께서 하신 가까운 사실로써 말씀드립니다. 박명실이 한때의 명장인데, 일찍 국법에 위촉되었습니다. 조정이 특별히 그 죄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얼마 안 되어 충청도에 사변이 일어나, 기축년 때보다 더한 바 있었습니다. 이에 명실이 나가 큰 변을 평정시켜, 나라에 공로를 세운 것이야말로, 허물을 용서하고 일을 할 수 있게 한 보람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제 이모는 사형을 받을 중죄를 지었으므로, 죄명조차 극히 엄중함은 진실로 성상의 말씀과 같습니다. 이모도 또한 공론이 지극히 엄중하고, 형벌 또한 무서워 생명을 보전할 가망이 없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14.

乞以恩命特减訊次。使之立功自效。其感戴聖恩。如天地父母。隕首圖報之志。必不居名賢之下。而我聖主中興圖閣之勳。臣安知不起於今日胥靡乎。然則聖主禦將用才之道。議功議能之典。許人改過自新之路。一擧而俱得。其有補於聖主撥亂之政。豈淺淺哉。(걸이은명특감신차。사지립공자효。기감대성은。여천지부모。운수도보지지。필불거명현지하。이아성주중흥도각지훈。신안지불기어금일서미호。연즉성주어장용재지도。의공의능지전。허인개과자신지로。일거이구득。기유보어성주발란지정。기천천재。)

바라옵건대 은혜로운 하명으로써 문초를 덜어주셔서, 그로 하여금 공로를 세워 스스로 보람있게 하시면, 성상의 은혜를 천지부모와 같이 받들어, 목숨을 걸고 갚으려는 마음이, 반드시 저 명실 장군만 못지않을 것입니다.

성상 앞에서 나라를 다시 일으켜 공신각에 초상이 걸릴만한 일을 하는 신하들이 어찌 죄수 속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성상께서 장수를 거느리고 인재를 쓰는 길과, 공로와 재능을 헤아려보는 법제와,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로워지는 길을 열어 주심이, 한꺼번에 이루어진다면, 성상의 난리를 평정하는 정치에 도움 됨이, 어찌 옅다고만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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