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행사, 축제

두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이중섭 아내)

청풍헌 2015. 10. 10. 23:48


사카이 감독과의  대담


두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 

이중섭의 아내 이남덕(마사코)의 회상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사카이 감독을 모시고 시민회관 소극장에서 상영했다. 

김순철 동장의 주선으로 다큐 이중섭의 아내를 촬영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감독과 접촉하여 통영에서 촬영이 이루어 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드디어 2015통영예술제 기간에 상영이 된다 하여 시민회관에 왔다. 

시간이 남아 기다리는데 김순철 동장이 왔다. 

다큐영화의 촬영 주선과 촬영, 편집 과정 등등 이야기를 들었다. 

통영 부분이 너무 적어 실망스럽다는 이야기를 이중섭의 아내에  촛점이 있다는 말로 이야기 했다. 

기대반 우려반 영화가 시작 되었다. 


이남덕은 도쿄의 유복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미술에 소질이 있어 자유로운 도쿄문화학부에서 공부를 하였다. 

그 때 유학온 이중섭을 붓을 씻으러 갔다가 만난 계기가 평생의 인연이 되었다. 

잘생긴 얼굴에 운동도 잘하여 인기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아고리』 라는 애칭을 부르며 연애를 했는데 이중섭이 원산 고향으로 돌아간 후 

일본의 패망 직전이라 인연이 끊어질까봐 원산으로 가 결혼식을 올리고 같이 살았다. 

두 아들을 놓고 살았는데 한국전쟁으로 집이 불타고 부산으로  다시 제주로 피난 생활을 했다. 

제주에서의 짧은 생활이지만 지독하게 가난하며 두어평 남짓 좁은 방에서 산에서 캔 정구지와 바다에서 잡은 게로 연명을 했다. 

다시 부산으로 와 지독한 가난 때문에 부인과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부두 노무자로 생활 하던 중 

유강렬의 권유로 통영 생활이 시작 된다.


친정집에서 시작된 생활은 소질이 있는 디자인을 살려 양장점에서 열심히 생활하여 두 아들을 키웠다. 

이후 단 일주일 간의 짧은 만남 후 이중섭은 서울에서 객사했다. 

영화는 이남덕 여사가 제주 서귀포를 방문하여 살던곳을 바라보며 당시를 회상했고 이중섭이 살았던 통영은 수 초만 방영 되었다. 

여기서 말못할 스토리가 생겼다. 

통영에서 도움을 받은 김용주 화백의 부인인 이경연 여사와의 인터뷰가 문제가 되어 통영 부분이 많이  편집 되었다고 했다. 

다큐 영화도 영상 촬영 및  편집은 전적으로 감독의 권한이다. 

이 부분도 분명 시의 예산도 들었을건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날카로운 비판이 이어졌다. 

이중섭의 체류 기간도 정확히 비정 안되었다는 내용과 다시 한번 더 조명 할 용의는 없는지 질의가 이어졌다. 

누군가의 노력으로 다큐에 통영이 포함되었으며  분량이 적다고 투덜 될  일은 아닌것 같다. 

이 작품을 끝까지 유치하고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 김순철님에게  힘을 보탠다. 

통영은 살아 있다. 

끊임없이 비판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모범적인 사례다. 


페북에 올려진 김순철 동장님의 심정을 싣는다.


첫날 50명

이튿날, 30명,

영화 두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 - 이중섭의 아내 관람객 숫자입니다.

그래도 우리(예술인들 포함)는 통영을 예향이라고 빡빡 우깁니다.

당초 제작 계획에는 통영 촬영이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이중섭의 통영생활은 그의 르네상스였다며 감독에게 사정사정하여 통영 촬영이 이루어졌고 우여곡절 광주,

제주에 이어 통영 상영이 결정되었습니다.

민간 외교관이라는 생각으로 내돈 내시간 들여 일했건만 나에게 돌아온 것은 관객들의 가시 돋친 비난이었습니다.

통영과 이중섭이 영화에 조금 나왔다는 이유로 나는 공개 석상에서 인민재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나는 감독도 아니요 시나리오 작가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시청 관계자도 아닙니다. 통영과 이중섭이라는 책을 쓴 개인입니다. 

그러한 영화를 유치한 내가 왜 그렇고 그런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야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영화는 일본 감독이 일본 돈으로 제작한 이중섭의 아내 마사꼬의 국경을 초월한 순애보적인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중섭에 대한 세미나, 토론, 포럼, 작품평론, 이중섭  조명  쯤으로 알았나 보지요. 

영화 제작의 모든 권한은 영화감독에게 있습니다. 

통영시나 개인이 스폰서를 하지 않은 이상 그 감독이나 나를 비난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첫날 무지한 관객들에게 얼마나 당했던지 다음날 다시 영화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가 아니라서 정말 죄송합니다.


2015.10.4 시민문회회관 소극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