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난중일기 필사

난중일기 필사 46~54일차

청풍헌 2017. 3. 29. 21:13

46일차 

21일,경술. 맑음. 성위에 군사를 줄지어 세우는 일로 과녁터에 앉아서 명령을 내렸다. 오후에 순천부사가 와서 약속을 듣고 갔다. 들을 청, 맺을 약 


47일차 

22일 신해. 새벽에 정찰하고  부정 사실을 조사할 일로 군관을 내보냈다. 배응록은 절갑도(고흥 거금도)로 가고 송일성은 금오도(여수 남면)로 갔다. 또 두산도(돌산도)의 적대목을 실어 내릴 일로 이경복, 송한련, 김인문 등에게 각기 군사 50명씩 데리고 가라고 하고 나머지 군사들은 품방에서 일을 시켰다.(이후 23일부터 30일 까지 빠져있음) 

5월 1일 경오, 수군들이 모두 앞바다에 모였다. 이날은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고 남풍이 세게 불었다. 진해루에 앉아서 방답첨사(이순신), 흥양현감(배흥립), 녹도만호(정운)등을 불러 들였다. 모두 격분하여 제 한 몸을 생각하지 않으니 실로 의사들이라 할 만하다. 


48일차

49일차 

2일 신미, 맑음. 삼도 순변사 이일과 우수사 원균의 공문이 도착했다. 송한련이 남해에서 돌아와서 하는 말이 "남해현령(기효근), 미조항 첨사(김응룡), 상주포, 곡포, 평산포 만호(김축) 등이 왜적의 소식을 한번 듣고는 벌써 달아났고 군기 등의 물자가 모두 흩어져 남은것이 없다" 고 했다. 참으로 놀랄 일이다. 오시(정오경)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진을 치고 여러 장수들과 약속을 하니 모두 기꺼이 나가 싸울 뜻을 가졌으나 낙인군수(신호)만은 피하려는 뜻을 가진것 같아 한탄스럽다. 그러나 군법이 있으니 비록 물러나 피하려 한들 그게 될 법한 일인가. 저녁에 방답의 첩입선 세 척이 돌아와 앞바다에 정착했다. 비변사에서 세 장의 공문이 내려왔다. 창평현령이 부임 하였다는 공문이 와서 바쳤다. 이날 저녁의 군호(암호)는 용호라 하고 복병은 산수라 하였다. 


50일차.

51일차. 

3일 임신,아침 내내 가랑비가 내렸다. 경상 우수사의 답장이 새벽에 왔다. 오후에 광양 현감과 흥양 현감을 불러 왔는데 함께 이야기 하던 중에 모두 분한 마음을 나타냈다. 본도 우수사(이억기)가 수군을 끌고 오기로 약속 했는데 방답의 판옥선이 첩입군을 싣고 오는 것을 우수사가 오는 것으로 보고 기쁘하였다. 그러나 군관을 보내 알아보니 방답의 배였다. 놀라움을 참지 못했다. 조금뒤에 녹도 만호가 알현을 청하기에 불러들여 물은 즉 "우수사는 오지 않고 왜적이 점점 서울 가까이 다가가니 통분한 마음을 참을 수 없으며 만약 기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없다." 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바로 중위장(이순신)을 불러 내일 새벽에 떠날것을 약속하고 장계를 써서 보냈다. 이날 여도수군 황옥천이 왜적의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도망 갔는데 잡아다가 목을 베어 효시 하였다. 

4일 계유, 맑음. 먼동이 트자 배를 출발시켜 곧장 이조항 앞바다에 이르러 다시 약속했다. 우척후 김인영, 우부장 김득광, 중부장 어영담, 후부장 정운 등은 오른편에서 개이도로 들어가 수색 토벌케 하고 나머지 대장선들은 평산포, 곡포, 상주포를 아울러 지나 미조항에 가도록 하였다. (이후 5일부터 28일까지 빠져 있음). 


52일차 

53일차. 

29일 무술,우수사(이억기)가 오지 않으므로 홀로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새벽에 떠나 곧장 노량에 이르니 경상 우수사 원균이 미리 만나기로 약속한 곳에 와 있어서 함께 상의했다. 왜적이 정박한 곳을 물으니 "왜적들은 지금 사천선창('사천 용현 선진리)에 있다."고 했다. 바로 그곳에 가 보았더니 왜인들은 이미 뭍으로 올라가서 산봉우리 위에 진을 치고 배는 그 산봉우리 밑에 줄지어 매어 놓았는데  항전하는 태세가 재빠르고  견고했다. 나는 여러 장수들을 독촉해서 일제히 달려들며 화살을 비 퍼붓듯 쏘고 각종 총통을 바람과 우뢰같이  어지러이 쏘아대니 적들은 무서워서 물러났다. 화살에 맞은자가 몇 백명인지 알 수 없고 왜적의 머리도 많이 베었다. 군관 나대용이 탄환에 맞고 나도 왼쪽 어께 위에 탄환을 맞아 등을 관통 하였으나 중상에 이르지 않았다. 활꾼과 격군중에 탄환에 맞은 사람이 또한 많았다. 전선 13척을 불태우고 물러 나왔다. 


54일차 

6월1일 기해, 맑음. 사량 뒷바다에서 진을 치고 밤을 지샜다. 2일 경자, 맑음. 아침에 출발하여 곧장 당포앞 선창에 이르니 적선 20여 척이 줄지어 정박해 있었다. 우리 배가 둘러싸고 싸우는데 적선중에 큰 배 한 척은 우리나라의 판옥선만 하였다. 배위에 누각을 꾸몄는데 높이가 두길은 되겠고 누각위에 왜장이 우뚝 앉아서 끄덕도 하지 않았다. 편전과 크고 작은 승자총통을 비오듯 마구 쏘아댔더니 왜장이 화살에 맞고 떨어졌다. 그러자 모든 왜적이 놀라 흩어졌다. 여러 장졸이 일제히 모여들어 쏘아대니 화살에 맞아 거꾸러지는 자가 얼마인지 그 수를 알 수 없고 모조리 섬멸하여 남겨두지 않았다. 얼마 후 큰 왜선 20여 척이 부산에서 부터 바다에 줄지어 들어 오다가 우리 군사들을 바라보고서는 도망쳐서 개도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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