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난중일기 필사

난중일기 필사 55일차~60일차

청풍헌 2017. 4. 4. 23:47

55일차

3일 신축 맑음. 아침에 여러 장수들을 격려하여 개도를 협공 했으나 이미 달아나 버려 사방에는 남은 무리가 하나도 없었다. 고성 등지로 가고자 하여 가보니 우리 군사의 형세가 외롭고 약하여 울분을 느끼며 하룻밤 머물러 자고 왔다.

 

56일차

4일 임인 맑음. 우수사(이억기)가 오기를 고대하여 주위를 배회하여 바라보고 있는데 정오에 우수사가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돛을 올리고 왔다. 온 진영의 장병들이 기뻐서 날뛰지 않는 이가 없었다. 군사를 합치기로 거듭 약속한 뒤에 착포량(통영 당동)에서 잤다.

 

57일차

5일 계묘. 아침에 출발하여 고성 당항포에 도착하니 왜적의 큰 배 한 척이 크기가 판옥선과 같았는데 배위의 누각이 높고 그 위에서 적장이란 자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중간배가 12척이고 작은 배가 20척 이었다. 한꺼번에 쳐서 깨트리고 비 내리듯 화살을 쏘아대니 화살에 맞아 죽은 자가 얼마인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왜장의 머리를 벤 것이 모두 7급이고 나머지 왜병들은 육지로 올라가 달아나니 남은 수가 매우 적었다. 우리 군사의 기세를 크게 떨쳤다. 6일 갑진, 맑음. 적을 정탐하는 배로 거기서 잤다.

 

58일차

7일 을미, 맑음. 아침에 출발하여 영등포 앞바다에 이르러 적선이 율포에 있다는 말을 듣고 복병 선으로 하여금 그곳에 가보게 했더니 적선 5척이 먼저 우리 군사를 알아채고 남쪽 넓은 바다로 달아났다. 우리의 여러 배들이 추격하여 사도첨사 김완이 1척을 퉁채로 잡고 우후(이몽구)1첩을 통째로 잡고 녹도만호 정운도 1첩을 통째로 잡았다. 왜적의 머리를 합해보니 모두 36급 이었다.

8일 병오, 맑음. 우수사와 함께 의논 하면서 바다에 머물렀다.

9일 정미, 맑음. 곧장 천성(부산 가덕 천성동)에 가보니 왜적의 배가 하나도 없었다. 두세 번 수색해 보고 군사를 돌려 당포로 돌아와 밤을 지냈다. 새벽이 되기 전에 배를 출발시켜 미조 앞바다에 이르러 우수사(이억기)와 이야기 하였다.

10일 무신, 맑음. (이후 611일 부터 823일 까지 빠져있음)

 

59일차 네 번째 출동

824, 맑음. 아침을 객사 동헌에서 대접을 받고 곧바로 침벽정으로 옮겨와서 정영공(정 걸)한테 대접 받았다. 우수사(이억기)와 함께 점심을 먹었는데 정조방장도 함께했다. 신시에 배를 출발 시켜 노질을 재촉하여 노량 뒷바다에 이른서 닻을 내렸다. 상경(자정 무렵)에 달빛 아래 배를 몰아 사천 모사량포(사천시 용견 주문리)에 이르니 동녘은 벌써 밝아 왔지만 새벽안개가 사방에 끼어서 지척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60일차

25일 맑음. 진시(오전 8시경)에 안개가 걷혔다. 삼천포 앞바다에 이르니 평산포 만호가 공장을 바쳤다. 당포에 거의 이르러 경상우수사(원균)와 서로 배를 매고 이야기 했다. 신시(오후 4시경)에 당포에 정박하여 잤다. 삼경에 잠깐 비가 왔다.

26일 맑음. 견내량(거제 덕호리)에 이르러 배를 멈추고 우수사와 함께 이야기 했다. 순천부사(권준)도 왔다. 저녁에 배를 옮겨 각호사(거제 오량 신광사) 앞바다에 이르러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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