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통영별로

통영별로 8일차 밥좀 주세요!

청풍헌 2012. 1. 8. 21:15

11시 55분에 여원치를 넘고 계속 내려가도 식당이 없다.

14시 20분경 효기리에서 할아버지를 한분 만나 여기 식당이 어디에 있습니까?

저쪽에 보이는 대나무 밭에 있는 식당이 잘해준께 그리가라고 하신다.

허기진 배를 움켜지고 터덜터덜 걸어서 가니 오늘이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네.

옆에 있는 마을 회관을 무조건 들어갔다.

밥좀 주세요!

할머니 여덟분이 계신다.

사정을 이야기 하니 밥은 없고 국수와 호박죽을  주신다.

혼자 통영에서 왔다하니 통영? 앵 그가 워디여?

통제영과 통제사에 대하여 설명했으나 알아들으셨는지는???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고맙습니다 하고 큰절 올리고 나왔다. 

숙소에 오면 무조건 배낭에 있는걸 꺼낸다.

최우선 밧데리 충전이 급하다.

그리고 목욕탕을 직행 더운물에 몸을 담그고~ 

지금까지 잘 견뎌준 발이다.

히 아직 멀쩡하네?

시래기국 인데 반찬이 12가지에 계란 후라이 

전라도 음식의 특징이 난다. 

시락국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커피 한잔 먹고 길을 나섰다.

희뿌연 찬기운이 감도는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신도비가 있다.

약 2.5~3m 정도의 괭장히 큰 비다.

 

숭지(崇之)
시호 정평(靖平)
생년 1364(공민왕 13)
졸년 1444(세종 26)
시대 조선 전기
본관 동복(同福)

오승(吳陞)에 대하여

1364년(공민왕 13)∼1444년(세종 26).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숭지(崇之). 아버지는 오중화(吳仲和)이다.
처음에는 음보로 벼슬에 올랐으나 1382년(우왕 8) 진사‧생원시에 연이어 합격하고,

다음해 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합격하였다.

사간원 좌헌납을 역임하고 곧 전교부령에 승진하였으며, 사간원 우사간대부를 거쳐 1407년(태종 7) 형조참의,

다음해 병조이조참의를 지냈다.
그뒤 충청도관찰사한성부윤판한성부사 등을 지냈으며,

성절사(聖節使)북경(北京)을 다녀온 뒤 개성부유후에 임명되었다.

다시 공조판서예문관대제학함길도감사 등을 역임하고, 1430년(세종 12) 의정부참찬에 임명되고 다음해 대사헌이 되었다.

그뒤 중추원사예문관대제학지중추원사판중추원사 등을 역임하였다.
1436년 안석과 지팡이를 받았으며, 1443년 종을 때려 죽여 경기도 죽산현(竹山縣)에 안치되었다가 방환되기도 하였다.
천성이 온화하고 선량하며, 풍도와 절개가 있었으며, 승정원사헌부사간원에 있으면서 임금과 신하들을 깨우쳤다.

시호는 정평(靖平)이다.

                                                 -한국역대인물종합시스템에서-

여원치를 넘기전에 있는 피바위 

바위는 ‘황산대첩비지’에서 인월 방면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남천내에 있는 바위 이름이다.

당시 이성계 장군이 아지발도가 이끄는 3천여 명의 왜구를 맞아 이곳에서 화살로 그의 목을 쐈는데,

이때 왜구가 흘린 피가 바위를 물들여 지금껏 붉다는 전설이다.
                          남원 문화원

 

굴뚝에서 나는 하얀 연기는 뉘집 할배의 조반을 짓는가?  

아침을 여는 참새 소리는 청명함을 더한다.

운봉으로 넘어오니 길가 나무에 상고대가 피었다.

황산대첩비

황산대첩비는 이성계가 왜구를 무찌른 내용을 기록한 비인데 일제시대 일인들에 의하여 홰손되었다.

 

 

동편제 휴계소이다.

서편제,동편제가 궁금 하였다.

마을 동네 어머니들이 휴게소에 있다.

전촌마을에 국악의 성지가 있으며 서편제와 동편제는 서쪽과 동쪽을 대표하는 소리의 성지란다. 

버스 정류소가 휴식 장소이다

호랑이도 무서워하는 곶감을 먹으니 힘이난다.

 

 한국경마축산고등학교도 있다.

여원재를 넘어간다.

여기서 부터는 계속 내리막 길이다.

한양에서 임지로 가는 통제사 식솔들은 이 여원재를 넘을려면 매우 힘들었겠다.

여원재 인증샷

마애불상 가는길은 눈이 덮여 내려갈 수 없다.

여원재의 전설이다.

걸음중에 수시로 오는 댓글과 응원의 문자는 수신은 하는데 답글을 달 수가 없다.

여원재 꼬부랑길을 내려오니 여원정이 보인다.

이곳에서 배낭을 벗고 간식도 먹고 물도 먹고 댓글도 달았다.

 

 

 배가고파 물어 물어 찾아간 대나무밭 건네편

동네 할아버지에게 물어 잘 해주는 식당이라 추천 받아 찾아간 식당은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다.

 

먹을걸 주신 마을 할머니들.

어짤거나?하고 걱정을 하신다.할머니 걱정 마세요.내 힘닫는데까지 갈거예요.

고마워서 인사하고 나왔다.

남원시내에 진입했다.

 숙소가는 길목에 창주서원이 있다.

창주서원은 조선중기 노전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재향을 지내는 곳으로 선조12년(1579)에 고룡서원으로 건립되고

선조33년(1600)에 창주서원으로 사액되어 300여년간 전향 되었다.

이후 폐철되었다가 1964년 이곳에 복원 되었다.

 

 

아침에는 피곤해도 좀 걸으면 풀린다.

걷는게 체질인가?

이동중에 격려문자나 댓글이 오면 답신이나 답글을 달수가 없다.

널리 이해를 바란다.

숙소에 오면 제일 먼저 욕조에 물을받고 몸을 푼다.

그리고 나면 저녁을 먹고 빨래를 하고 사진 업로드하고 사진을 보며 하루일정을 복기한다.

필요사진을 블로그에 옮기고 포스팅을 완료한다. 

오늘도 무사함을 감사히 여기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코스:인월-운봉-이백-남원

거리:28.02km                                                                    누적거리:193.02km

시간;7h 48m                                                                      누적시간:54h 55m

비용:아침 지리산 기사식당 시락국 5,000원                            누적경비;355,700

       저녁 시골한우촌 갈비탕        8,000원

       숙소 우성장 모텔                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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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                                     48,000원

 

2012.1.8 백세청풍 김용재